외국인도 인정한, 구경 좋아하는 조선사람의 별난 호기심은 알아줘야 한다. 필자는 취미가 구경 다니는 거다.
10월 8일 오후 5시 19분. “쾅!∼ 우르릉!” 중앙데파트는 두세 동강이 나는가 싶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먼지 속으로 사라졌다.<사진> 폭약보다 무서운 원고 데드라인에 쫓기는 위험을 접고 철거 해체 현장에 있었다. 취재를 빙자했지만 순전히 구경이 목적이다. 하루 전 마지막으로 현장을 찾았을 때는 구조물 해체 준비로 부속은 들어내고 기둥과 보와 해골처럼 벽체만 남은 상태였다.
폭파도 안전성만 보장되면 멋진 구경거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건물 안쪽으로 붕괴시키는 내파공법(Implosion)이란 것도 폭파 현장을 하도 봐 온 탓인지 맨송맨송하여 어쩐지 싱거웠다. 흥취의 도가 약하면 글도 시들할 수밖에. 구경거리로는 아쉬우나 중앙데파트 파괴가 환경 복원 신호탄이란 의미 하나로 지그시 물러나야 했다. 그 밑 복개 구조물을 걷고 생태하천으로 변태하면서 머잖아 목척교가 들어선다.
둔산 신도심이 조성되지 않았고 유성 가는 길이 드문드문 황금물결 벼논이던 시절, 중앙데파트에 있던 중앙관광호텔은 대전의 회의 명소였다. 이 마당에 어쩔 수 없이 이곳에서 모임이 잦은 약혼녀를 근사한 데서 보려고 우연을 가장해 나타나곤 하던 개인사를 헤집게 된다. 당연히 ‘그녀’는 식구가 됐고, 대전시민치고 저 건물 조각에 소회 한 조각 품지 않은 사람 있으랴만, 발파 잔재물 속에 묻히기엔 시리고 아까운 애환이 적지 않다.
나름대로 폭파 현장을 강평하면 폭약보다 중력의 영향이 더 작용했고 기대보다 덜 환상적이었지만 시민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정신만은 가상히 여겨 ‘10점 만점에 10점’을 매길 것이다. 34년 동안 대전 근대화와 도심의 상징이던 8층 중앙데파트는 역사 속으로 폭삭 주저앉았지만 여기 서린 필부필부의 추억은 생생히 일어서서 멋진 후일담으로 환생할 것을 믿는다.
새 목척교가 서면 또 두루마기 휘날리며 늠름하던 옛 목척교 영화(榮華)를 재탕할 늙은 선배님들 모습이 그려져 불안하긴 하다. “중앙데파트라고 아시나? 폭파 장면은 보셨던가?” 하긴, 20년 뒤 어느 날 나 역시 이렇게 다그치지 않으리란 장담은 못하겠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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