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 유형 이야기에는 아일랜드의 삼색 신발, 노르웨이의 황금 덧신, 콩쥐팥쥐의 꽃신과 같이 꼭 작고 예쁜 신발이 등장한다. 신은 ‘신체 일부가 미끄러져 들어가 꼭 맞는 질’(브루노 베텔하임)의 상징이기도 하다.
구두 살 일이 있어(주: 도망갈 여자는 신발 안 사줘도 도망감) 방송을 봤더니 “모래 위나 양탄자 위를 걷는” 감촉을 선전하고 있다. 오리털같이 가볍고 돌 위에서 소리 나지 않는다는 금구두(전족)를 허공에 그려지게 하는 입담이다.
사실, 전족은 여성을 규방에 가두려는 남근적 억압이었다. 한나라의 머릿결, 초나라의 허리처럼 작은 발은 관능미의 요소였다. 명대 소소생(笑笑生)이 쓴 『금병매』의 금은 반금련, 병은 이병아다. 전족을 일컫는 ‘금련(金蓮)’을 음기 1등 여주인공에 갖다 붙였다. 치마를 슬쩍 들추자 드러나는 전족에 좋아라 하는 서문경이 기억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구두 재료가 아니고 그녀가 뿌려댄 환상이 인간 가치를 물질 가치로, 인격 가치를 외모지상주의(루키즘)의 상품 가치로 탈바꿈시킨 그 사실이다. 뮤지컬 <신데룰라>에서는 미모를 무기로 신분 상승을 노리지 않고 자기 앞의 삶을 개척하는 신데델라가 나온다. 서인영 유행가의 신데렐라는 12시부터 ‘어택’(공격)하는, ‘이때다 싶어 덤비지 말라’는 자급형 알파걸이다. 또 유럽 최초 신데렐라 속의 왕자님은 싹수가 놀놀하다. “(신데렐라를 못 찾으면) 네놈에게 몽둥이 찜질을 하고 네놈의 수염 숫자만큼 발로 걷어찰 테다.” 이 말본새를 보라.
같은 판본엔 유리구두말고 구두 위에 신는 덧신 ‘피아넬라’가 나온다. 여성들이 아무튼 예쁜 구두로 인해 고통의 나날을 지새지 않기를 바란다. 생각하니 무쇠 신 신고 신부감을 찾아 떠도는 총각 전설도 있었다. 남성들 역시 천근만근의 신발 무게에서 해방되기를 원한다. ‘발’과 ‘신’으로 하여 누구든 고통당하지 않기를 바라고 원한다. /최충식 논설위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