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어서 이 말엔 “섹시하다 할게 제발 요리 좀”이라는 뉘앙스가 덫처럼 숨어 있다. 사회가 빨리 변하고 새 가치관으로 무장하지만 성 역할에서만은 진행이 느리다. 대표적인 예가 부엌일. 남성적이고 여성적인 특성이 섞여 가사에 적극적인 엠니스(M-ness)족을 빼고는 그렇다. 아내에게 밥 얻어먹으면 간 큰 남자, 밥하는 아내에게 시비 걸면 가장 간 큰 남자란 것은 우스개일 뿐이다.
‘아내가 세 명이라면?’이라는 가상 유머가 있다. 음식 잘하는 여자는 부엌일을, 힘센 여자는 밭일을, 귀여운 여자는 밤일을 맡긴다는 게 유머의 대답이다. 사람들은 연속극 <엄마가 뿔났다>에서 한자가 집 떠난 걸 두고 자신을 찾아나선 휴가라고 주석을 단다. 고상한 해석인데, 손끝 하나 까딱 안 하는 가족에 대한 배신감이 진짜 이유 아닐까 싶다.
알다시피 성리학은 남자가 부엌일하면 일날 줄 알았던 학문이다. 그런 학문이 도도한 조선 사대부에 의해 쓰인 수운잡방이나 임원십육지 같은 음식 관련 옛책을 보면 신기하고 놀랍다. 허균이 귀양살며 음식의 추억을 쓴 도문대작은 팔도음식 백과다. 눈길을 끈 것은 책 서문, ‘색식(色食)은 성품이고 더욱이 먹는 것은 생명에 관계되므로 선현들도 음식 갖고 말하기를 천히 여겼다’는 부분이다.
지금도 남자들 속마음은 몸만 평등, 마음은 여전히 따로 아닐까? 마음이 굴뚝같으나 어른들 눈치에 샌드위치 신세라는 건 순전 허풍이다. 이제는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가족 이벤트’다. 특별할 것 없는 가족애의 기술이다. 고추는 떨어지지 않는다.
한 마리 말을 같이 타려면 한 사람은 뒤에 타는 게 권력의 속성이다. 밥상권력도 권력이라면 그 유혹에서 벗어나기는 남자 의지에 달렸다. 난 한국남자야, 설거지 못해, 요리는 더 못해, 이러지 말고, 여자가 무수리 되고 남자가 상감마마 되는 현실을 올 추석엔 재연하지 않았으면 한다. 부부금슬도 음식 간도 명절증후군이 없어야 잘 맞는다. 어렵다면 마늘 한 쪽이라도 까고, 물 한 컵 정도야 내 손으로 떠먹자. 평등보다는 사랑으로…. 추석에 요리하는 남자는 얼마나 섹시할 것인가!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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