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과밖]추석에 섹시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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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밖]추석에 섹시한 남자

  • 승인 2008-09-11 00:00
  • 신문게재 2008-09-12 21면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남자가 섹시해 보일 때는 이럴 때라니 참조하시길. 스킨 향기 아련히 풍길 때, 소매 걷고 뭐든 열중할 때, 능숙하게 운전할 때, 키스할 때, 땀 흘리며 운동할 때, 팔뚝 근육에 핏줄이 설 때, 깔끔하게 정장을 한 모습을 볼 때, 특히 요리할 때.


감정에는 공식이 없다. 운수 좋은 날, 집에 가면 섹시하다 소리를 듣는다. 쑥스럽지만 그뿐 아니라, 전시회에서 만난 아줌마 팬(?)들은 나를 ‘훈남’이라 놀려댄다. 섹시하다고 느끼면 섹시한 것이다. 남편 요리하는 모습이 제일 섹시하다는 여자도 있다.

뒤집어서 이 말엔 “섹시하다 할게 제발 요리 좀”이라는 뉘앙스가 덫처럼 숨어 있다. 사회가 빨리 변하고 새 가치관으로 무장하지만 성 역할에서만은 진행이 느리다. 대표적인 예가 부엌일. 남성적이고 여성적인 특성이 섞여 가사에 적극적인 엠니스(M-ness)족을 빼고는 그렇다. 아내에게 밥 얻어먹으면 간 큰 남자, 밥하는 아내에게 시비 걸면 가장 간 큰 남자란 것은 우스개일 뿐이다.

‘아내가 세 명이라면?’이라는 가상 유머가 있다. 음식 잘하는 여자는 부엌일을, 힘센 여자는 밭일을, 귀여운 여자는 밤일을 맡긴다는 게 유머의 대답이다. 사람들은 연속극 <엄마가 뿔났다>에서 한자가 집 떠난 걸 두고 자신을 찾아나선 휴가라고 주석을 단다. 고상한 해석인데, 손끝 하나 까딱 안 하는 가족에 대한 배신감이 진짜 이유 아닐까 싶다.

알다시피 성리학은 남자가 부엌일하면 일날 줄 알았던 학문이다. 그런 학문이 도도한 조선 사대부에 의해 쓰인 수운잡방이나 임원십육지 같은 음식 관련 옛책을 보면 신기하고 놀랍다. 허균이 귀양살며 음식의 추억을 쓴 도문대작은 팔도음식 백과다. 눈길을 끈 것은 책 서문, ‘색식(色食)은 성품이고 더욱이 먹는 것은 생명에 관계되므로 선현들도 음식 갖고 말하기를 천히 여겼다’는 부분이다.

정신적인 이(理)를 다루는 사대부들이 경계 너머 이(利)의 영역인 음식에 일부러 무관했다는 의미다. 바로 이것, 대장부는 ‘좀스러운’ 일보다 큰일을 도모해야 한다는 관념이 사내의 부엌 출입을 막는 철조망이었다. 그래서 늘 “남자가 부엌에 들어오면 고추 떨어진다”는 금기어를 귀에 달고 살았다.

지금도 남자들 속마음은 몸만 평등, 마음은 여전히 따로 아닐까? 마음이 굴뚝같으나 어른들 눈치에 샌드위치 신세라는 건 순전 허풍이다. 이제는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가족 이벤트’다. 특별할 것 없는 가족애의 기술이다. 고추는 떨어지지 않는다.

한 마리 말을 같이 타려면 한 사람은 뒤에 타는 게 권력의 속성이다. 밥상권력도 권력이라면 그 유혹에서 벗어나기는 남자 의지에 달렸다. 난 한국남자야, 설거지 못해, 요리는 더 못해, 이러지 말고, 여자가 무수리 되고 남자가 상감마마 되는 현실을 올 추석엔 재연하지 않았으면 한다. 부부금슬도 음식 간도 명절증후군이 없어야 잘 맞는다. 어렵다면 마늘 한 쪽이라도 까고, 물 한 컵 정도야 내 손으로 떠먹자. 평등보다는 사랑으로…. 추석에 요리하는 남자는 얼마나 섹시할 것인가!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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