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향인사 모임인 백소회가 탄생하게 된 동기는.
▲1992년 12월에 백소회가 창설됐다. 백소회는 ‘백제의 미소`를 줄인 말이다. 당시 충청도 사람들이 모이면 (충청도 사람끼리)서로 끌어주지 않는다는 많았다. 그래서 동료들에게 이제는 우리도 그런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충청도 후배들을 위해 뭘 했나를 자성하는 마음으로 모임을 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었다. 처음에는 이형구 산업은행 총재 등 10명이 만나 뜻을 모았지만 점점 인원수가 많아지면서 조선호텔에서 월례회를 갖기에 이르렀다. 당시 회칙이라고 정한 것이 모임의 이름을 ‘백소회`로 하고 총무를 ‘임덕규`로 하자는 것뿐이었다. 우리 모임은 회비가 없다. 연말 송년회의 경우 기업하는 분들에게 후원을 얻어 저녁에 모임을 갖기도 했지만 1년에 12번 조찬 모임을 가질 수 있는 여건만 되면 모임을 가져왔다. 현재 회원은 100여 명 정도인데 관례적으로 1년 이상 안 나오면 명단을 빼놨다가 나오면 다시 넣기도 하고 특별한 제약을 두지 않고 있다. 사랑방 성격의 모임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형편대로 모임을 가질 수 있으면 좋다는 생각이었다.
-그동안 백소회를 이끌면서 하신 일은.
▲국회의원이나 시장, 도지사 등 당선축하연 등을 열고 있는데 대전시장과 충남도지사는 브리핑도 하고 후원도 하면서 서울에 있는 충청 명사들과 소통하고 있다. 충청 명사들은 장관이나 차관급, 대학 총장급, 언론계 사장, 논설위원, 편집국장급, 기업 회장이나 사장급, 금융계 은행장급, 법조계 대법관이나 검사장 급 이상으로 구성돼 있으며, 예술인도 오페라단장이나 무용단장 등 톱클래스에 들어가는 예술인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자동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의지에 따라 오는 경우가 많다. 안상수 인천시장처럼 서울이나 경기도에 있는 충남출신 인사도 온다. 사실 전에는 백소회의 활동을 공개하지 않았었는데 이회창 총재가 참여하면서 충청언론에 공개했다.
▲백소회 조찬 모임이 오전 7시에서 9시까지 이뤄진다. 그 자리에서 저는 참석자들 대부분을 발언을 시킨다. 우리나라가 토론풍토가 아니라 그렇지만 외국은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한 말하기 훈련이 잘 돼 있다. 쉽게 말해 무슨 얘기가 나와도 의사표시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모인 사람들이 대부분 전문가 그룹이어서 고향문제에 대한 전문적인 토론이 가능하다는 것이 백소회의 장점이다. 쉽게 말해 제목만 던지면 종합적인 토론의 장이 열리는 것이다. 박성효 대전시장이 브리핑을 했지만 대전시는 당장 첨단의료복합단지 유치가 당면과제다. 35년 동안 대덕단지가 형성돼 있고 거기에 첨단의료복합단지가 조성되면 경쟁지보다 상당히 좋은 조건이더라. 충청도가 점잖아서 그렇지 유능한 사람들이 충청 발전이 국가발전이라는 확신을 갖고 적극적으로 주장할 필요가 있다. 충청 발전의 수준을 보면 국가의 균형발전 수준을 알 수 있지 않나. 특히 행정도시의 경우 정치인의 약속인데 우물쭈물 하면 국민을 속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당이 섭섭할 수 있지만 그럴수록 잘해놔야 희망이 있는 것이다. 말로만 해선 이제 안 된다.
백소회 안에는 여당 소속 정치인도 있고 야당 소속도 있다. 충청향우회의 경우 노골적으로 의제를 이끌어가도 큰 무리가 없지만 백소회는 어느 편으로도 기울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도 어느 편을 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고향 사랑방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모른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당선에 역할을 많이 하셨다고 들었다. 배경은.
▲백소회 모임과는 별도의 얘기다. 기본적으로 반 총장이 자격이 있어 된 것이지만 능력 있는 사람들이 세계무대로 진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사실이다. 한마디로 애국심이 없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독립운동을 했던 초대 외무장관 임병직 박사나 철기 이범석 선생 등으로부터 국가를 사랑하는 것을 배웠다.
1972년 제가 한국-인도 친선협회 간사로 활동하고 있을 당시 반 총장이 인도 대사관 사무관으로 부임하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그 때 그분의 청렴성과 애국심, 능력을 보게 됐고 이런 분 같으면 유엔사무총장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장관에 임명되자마자 유엔사무총장 출마를 권유했는데 2005년 10월5일 반사모(반기문사랑모임)를 조직해 선거운동에 착수했다. 주한 외교관이나 외국의 외무장관, 왕 수상 할 것 없이 지지세력을 만들어 갔다.
예비투표 직전에는 15명의 안보리 이사국 대사들한테 전화를 해 어차피 반 장관이 될 것인데 자국 대사들에게 반 장관을 밀어주라는 말을 전하게 했다. 1차 투표에서 12표 얻은 뒤 신나게 일했다. 그가 충청도 사람이기도 했고 내 신념이기도 했다. 사실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자리가 앞으로 1000년 안에는 다시 출마할 기회가 없는 자리 아닌가. 하지만 선거운동에 있어서 돌을 다이아몬드로 만드는 사람은 없다. 다이아몬드로 갖춰진 사람을 잘 다듬는 과정이었을 뿐이다.
-월간 디플로머시를 34년째 이끌어오고 있는데 특별한 비결이 있나.
▲초대 외무장관이었던 임병직 박사를 1967년부터 10여 년 동안 직접 모셨다. 70년대 초에 그분께서 “밥만 먹고 살 생각 하지 말고 나라를 위해 영어로 잡지를 만들어서 미국 사람들을 설득하면 나라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조언을 하셨다. 당시 세계 60억 인구를 다 상대할 수 없으니 대표적 인물을 상대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왕이나 수상, 대통령만 다룰 생각을 했다. 세계에서 왕이나 수상, 대통령만을 고집하는 월간지는 디플로머시밖에 없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인터뷰 대상 중에 친한 분들이 많이 생겼고 정상급 사이에서는 우리 잡지가 인기도 좋다. 세계를 다녀보면 조국이 위대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우선 터가 좋고 역사도 우등 역사요 지난 3~40년 동안 눈부신 경제발전 이뤘는데 세계인들은 ‘기적`에 가깝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이 잘못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많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하는데 아프던 배도 사촌이 땅을 사면 낫는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즉 세계가 잘 살아야 한국도 잘 살 수 있다는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그것이 비결이다.
-고향사람들이나 출향인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충청도가 양반과 선비의 고장이라는 말을 듣는 것은 선조의 덕이다. 특히 충청도는 선조들의 효 사상과 경로사상을 영원히 보존하고 운동하는 인성교육의 핵심인데 그런 선조의 덕을 많이 빛냈으면 좋겠다. /
대담=최상수 이사 정리= 강순욱 기자 정리=강순욱 기자
-임덕규 발행인은?-
호는 명산(明山). 1936년 7월4일. 논산 출생.
동국대 법대 졸업(1960), 동대학원 석·박사 수료(국제법). 신아일보 논설위원(1968~69). 동화통신사 논설위원(1971). 영문월간 Diplomacy 창간발행인(1975~80), 동 회장(1980~현). 11대 국회의원(논산·공주.1981~85). 한·인도 친선협회 회장(1982~현). 세계국제법협회 세계회장, 세계평생부회장·한국본부 명예회장(1988~현). 한국국제정치학회 명예이사(1981~현). 대건장학회 회장(1995~01). 동국대 법과대 겸임교수(1999~06). 2012여수세계박람회·2014평창동계올림픽·2014인천아시안게임 유치위원(20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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