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목월 시인이 가끔 돼지고기를 한두 근 들고 나타났던 호서문학의 산실 대전 오류동 149의 12번지 시인의 집이 헐리고 공용주차장이 들어선다니 그가 환생한다면 꺼이꺼이 곡할 일이다. 작취미성의 아침에 잔이란 잔, 그릇이란 그릇을 담벼락에 대던진 오류동 집에 목원대 홍희표 선생이 찾아가자 내왔다는 ‘고추장접시 술잔’ 전설까지 묻히게 생겼다. 세상 참 황막하다.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술잔을 작, 고, 치, 각, 산으로 소개하고 있다. 앞에서부터 차례로 한 되에서 다섯 되들이 잔이다. 또 요즘과 양이 다르지만, 닷 되들이 벌주 잔인 ‘굉’과 열 되들이 ‘두’가 있다. 취하면 천 일만에 깬다는 중산주가 있는가 하면 마시고 천리 길을 가야 취한다는 정향주도 있으니 잔은 오죽 많을까?
술을 가득 부은 잔을 상(觴)이라고도 했다. 가수 남진은 ‘그대여 나머지 설움은 나의 빈 잔에 채워주’라고 호소한다. 저 생각해서 술을 알맞게 따르면 속으로 우는 호주가도 있지만 술은 7할만 채우라고 했다. 실제로 그런 잔이 있다. 70% 이상만 부으면 ∩자 관을 통해 마술처럼 술이 밑으로 허망하게 빠지는 계영배(戒盈杯)가 그것이다.
넘침과 지나침을 경계하는 술잔, 바로 이 계영배를 금산에서 곧 볼 수 있게 됐다. 금산군에서 제28회 금산인삼축제(8.29∼9.7) 때 계영배 체험관 운영으로 임상옥의 정신을 기리겠다는 것이다.
戒盈祈願 與爾同死(계영기원 여이동사).
가득 참을 경계하기를 빌며 너와 더불어 죽으리라.
인삼무역으로 거상(巨商)이 된 임상옥의 계영배에 새겨진 문구였다.
꽃 꺾어 술잔 세며 술 마시자던 송강 정철은 억새풀 우거진 숲에 한번 죽어지면 뉘라서 한 잔 먹자 하겠는가고 물었다. 그러나 인생 일생춘몽이라 해도 술이든 욕심이든 지나침보다 모자람이 낫다. 술의 신 바쿠스는 바다의 신 넵튠보다 훨씬 많이 사람을 익사시켰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임상옥의 상도(商道)도 배우며 절주(또는 금주)도 실천할 겸, 마음속에 계영배 하나씩 품어 절제하고 과욕을 다스릴 만하다 하겠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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