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로도 나오긴 했지만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한 것이 선화공주와 서동의 러브스토리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온달설화도 그러한데, 이 모두 오늘 우리가 보는 드라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백제의 미천한 서동이 신라의 고귀한 선화공주를 얻고 백제 무왕이 된 이야기를 완벽하게 입증하기는 곤란하다. 정사에는 백제 성왕의 뒤를 이어 왕자 장이 무왕이 된다고만 나와 있다.
대신에 설화는 역사의 꼭대기에서 노는 까닭에 무한대의 상상력을 허용한다. 인간적으로는 역사책 냄새 감도는 삼국사기에 비해 이야기책에 가까운 삼국유사에 더 끌린다. 그 둘도 없는 공간이 부여 궁남지다. 용을 품고 서동을 낳았다는 고사 또한 그윽하다. 거기 걸린 포룡정(抱龍亭) 현판은 김종필이 총리 시절 쓴 것이다.
▲ 송인순 '연' |
설화로서 서동설화는 막내딸이 주인공인 일종의 ‘내 복에 산다`계 설화의 단단한 이미지를 갖췄다. 혹, 지귀라는 젊은이가 여왕을 사모하다 뜨거운 정념의 불길을 가누지 못해 자신을 태우고 도읍을 태운 이야기를 기억할지 모르겠다. 그 상대역인 신라 선덕여왕이 진평왕의 맏딸이자 선화공주의 큰언니라는 사실까지 챙기고 궁남지 서동연꽃축제(∼8월 3일)를 관상한다면 흥미는 배가된다.
지금 김제 하소백련축제, 무안 회산 연산업축제, 일산 호수공원 연꽃축제가 동시다발로 열리지만 사랑의 테마를 품은 연꽃 명소는 궁남지가 유일무이하다. 나제간 격돌 시기에 뚱딴지같이 촌사람 서동이 튀어나와 언제 그런 로맨스를 꽃피웠겠느냐는 역사적 추리야 말릴 재간은 없다.
그래도 사랑 이야기라면 어쩐지 역사 아닌 설화를 취하는 편이 설렌다. 여행지에서 낯선 일탈을 꿈꾸며 들뜨는 이치 같다 할까? 궁남지 연꽃에서 사랑 이야기를 퍼담는 거야 얼마든 자유지만 “나도 내 복에 살자”며 과감한 모험을 감행하는 건 때로 위험하다. 노파심에 아버지의 일원으로서 딸들에게 고한다. /최충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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