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대전서 감독 첫승… 남다른 인연”

“1984년 대전서 감독 첫승… 남다른 인연”

[중도초대석]프로축구 최초 200승 김호 대전시티즌 감독

  • 승인 2008-05-19 00:00
  • 신문게재 2008-05-20 12면
  • 대담.정리=권은남.사진=지영철 기자대담.정리=권은남.사진=지영철 기자
200승 기회 준 대전구단.박 시장에 감사
시티즌 올시즌 최우선 목표는 ‘4강 진출’
축구는 사회 건전하게 변화시키는 도구
기록은 숫자에 불과… 즐기는 축구할 것


한국프로축구 감독 가운데 최초로 200승을 달성한 대전시티즌 김호 감독. 1984년 한일은행 감독으로 지휘봉을 잡고 첫 승을 거둔 뒤 꼭 25년 만에 통산 200승 감독의 고지에 올랐다.

감독 통산 200승은 K리그의 역사이며 한국프로축구의 역사이기도 하다. 60~70년대 국가대표 부동의 수비수로 한 시대를 풍미하고 지도자로 변신해 수많은 대회 우승을 거머졌지만 그는 아직도 수준 높은 축구와 축구의 미래의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20대 청년보다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는 영원한 축구 기술자 김호 감독을 만나, 선수로써 지도자로써, 대전시티즌의 감독으로 비전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


-국내 프로축구 감독 가운데 200승이란 역사적인 대기록을 달성했다. 남 다른 느낌이 있을 텐데?

▲기록은 개인에게 영광이며, 좋은 것이지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200승이란 기록은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축구 선수가 축구를 잘하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 기록도 그런 것 같다. 기록과 성적을 목표로 뛰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충실히 하면 기록도 성적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200승이란 기록을 달성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대전시티즌과 구단주인 박성효시장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200승이란 대기록이 어떤 것이라 생각하는지?

▲한 방울의 물이라 생각한다. 거대한 호수나 댐도 결국은 물 한 방울로 시작되는 것이다. 물 한 방울이 거대한 호수가 되고 바다가 된다는 것을 잃고 사는 것 같다.
200승 기록도 물 한 방울에서 시작된 것이다. 욕심내지 않고 차근차근하다 보니 어느덧 200승이라는 기록을 달성한 것 같다.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어린이에게 꿈을 주고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축구를 하겠다.


-오래전 일이지만 프로축구에서 첫 승을 언제 거뒀는지 기억하는지?

▲25년 전 일이라 가물가물 하다. 하도 많은 경기를 해서 프로 첫 승을 언제 거뒀는지...(이때 옆에 있던 왕선재 수석코치가 거들었다) ‘감독님 프로 첫 승은 1984년 4월 28일 대전 한밭운동장에서 열린 K리그 전신인 슈퍼리그 럭키금성을 3-1로 이긴 것이 프로 첫 승이다. 프로 첫 승을 대전에서 거두고 200승을 대전시티즌 감독으로 달성하고 그때부터 감독님이 대전과 인연이 있었던 것 같다.` 고 소개했다.

(당시 경기기록부를 찾아봤다. 상대팀인 럭키금성에는 정해성 현 국가대표 코치,박항서 전남 드래곤 감독, 조영증 국제축구연맹 기술위원, 김현태 국가대표 골키퍼코치 등 스타 선수들로 구성됐다. 하지만 한일은행에는 왕선재 대전시티즌 코치와 황석근 등이 낯익은 이름일 뿐 나머지 선수는 무명에 가까웠다.)


- 한일은행 감독 시절은 어땠나?

▲1982년께 실업팀인 한일은행 감독으로 취임했다. 당시 한일은행은 창단 11년 동안 실업리그에서 단 한차례 우승을 하지 못했다. 감독으로 취임하고 보니 말이 아니었다. 한일은행 선수단 숙소 앞에 상점이 2곳이 있었는데 선수들 모두 외상을 깔아 놓고 월급날이면 외상값 갚기에 정신이 없었다. 아침 훈련에는 선수 5~6명만 나오고 정말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외상을 주지 말라고 상점 주인에게 부탁하는 등 정신교육부터 시작한 것 같다. 1년 반 동안 혹독한 훈련과 더불어 정신교육도 빼놓지 않았던 것 같다. 결국 감독 취임 후 1년 반에 실업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그 자격으로 프로무대인 슈퍼리그에 진출했다.


-타 프로구단에 비해 열악했던 아마추어팀인 한일은행에서 고생도 많이 했을 텐데

▲한일은행은 실업팀이어서 프로구단에 에 비해 지원이 열악했다. 지금처럼 연고개념이 없어 전국의 도시를 돌면서 경기를 가졌다. 그래서 유랑극단이라고 하기도 했다. 경기가 있는 날은 주방 아주머니에게 부탁해 김밥을 싸달라고 해서 경기장으로 가는 도중 길가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프로팀은 호텔에서 잤지만 우리는 여관에서 묵었다.


-전에 감독을 맡았던 울산 현대나 수원삼성 등은 대전 시티즌과는 다른 팀이다. 굳이 한일은행시절과 비교한다면?

▲대전구단이 재정적으로 넉넉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를 응원하는 열정적인 팬들이 있고 선수단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은 구단주인 박성효시장이 있다.

당시 어려움을 같이 했던 한일은행 선수들은 열심히 따라줘 대부분 프로팀으로 스카우트됐다. 우리 선수들도 열심히 해 더 좋은 팀으로 더 넓은 세계로 나갔으면 한다. 꿈이 있다면 나와 함께 했던 선수들이 모두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를 위해 뛰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국내 유명 선수들 대부분은 김호 감독의 손을 거쳐 갔다. 선수들을 보는 눈이 남다른 것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데? 훌륭한 선수의 자질은?

▲남다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공만 잘 찬다고 대형선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공을 잘 차는 기술도 있어야하지만 무엇보다 인성이 먼저다.

선수를 파악하는 것은 장인이 용광로의 쇳물 색깔만 보고 쇳물의 온도를 아는 것처럼,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김호 감독은 요즘도 선수들에게 축구이야기뿐 아니라 축구선수로서의 삶과 자세, 갖춰야 할 인성 등을 선수들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강조하고 있다)

훌륭한 선수는 수만 관중이 운집했어도 누가 왔는지, 뛰면서도 다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만큼 여유를 가져야 큰 선수가 될 수 있다. 또 팬들을 존중하는 인성을 가져야 한다.


-지난해에는 기적 같은 6강 진출을 이뤘다. 올해의 목표는?

▲동계훈련을 열심히 했다. 하지만 아직 조직력이 완벽하다고 할 수 없다. 6월 한 달간 K리그 휴식기를 통해 우리 팀은 변할 것이다. 선수들이 더 세련되고 조직력이 가미되면 후반기에는 어느 팀과 맞붙어도 그냥 쉽게 지지 않는 팀이 될 것이다. 6월 이후 우리 팀의 경기는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관중이 경기장을 뜨지 못하는 재미있는 경기를 펼칠 것이다. 올 시즌 최우선의 목표는 6강에 진입하고, 4강에 가는 것이다.


-취임 후 성공한 시민구단의 모델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대전이 모델이 될 수 있나.

▲유망한 어린 선수를 구단에서 키울 수 있는 제도가 현행 트래프트 제도로 막혀 있어 안타깝다. 수준 높은 축구를 하려면 트래프트제도가 폐지돼야 한다. 그래야 재정이 열악한 시민구단도 어린 선수들을 육성, 팀의 주축선수로 키울 수 있는 것이다. 우리 팀은 관리를 해서는 안 된다. 도전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운영을 해야 미래가 있다.


-축구가 뭐라 생각하는지 ?

▲축구는 사회를 건전하게 변화시키는 도구이다.
가족들이 축구를 응원하면서 부모와 자식간 대화의 소재가 되고 직장이나 사회에서도 이슈가 되면 사회는 지금보다 더 건전하게 될 것이다. 또 축구는 사회 환원하는 것이다. 좋은 경기를 통해 지역사회에 즐거움을 주고 축구를 통해 발생하는 이익은 지역에 다시 환원해야 하는 등 사회 공익을 위한 도구로 사용돼야 한다. 대전시티즌을 통해 대전이 건전하고 질 높은 도시가 됐으면 한다.

[김호 감독 프로필]
▲생년월일=1944년 11월24일
▲출신교=동래고
▲선수경력=제일모직(64∼68년) 국가대표(65∼73년)
▲지도자경력=동래고 감독(75년) 세계청소년대표팀코치(79년) 한일은행 감독(83∼87년) 현대호랑이축구단 감독(88∼91년) 94년 미국월드컵 대표팀감독(92∼94년) 수원삼성 블루윙즈축구단 감독(95∼2003년) 대전시티즌
▲수상경력=98, 99년 한국프로축구 감독상 수상. 아시아축구연맹이 선정하는 `이달의 감독상`(97, 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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