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조적으로 남유럽의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과 중남미의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등 지역은 줄서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일본, 중국을 필두로 아시아는 줄서기 싫어하는 대표적인 동네다. 한국도 번호표 덕에 나아졌으나 여전히 그 상위 순번이다. 줄에서 열외인 특별한 대접을 즐기고, 보이지 않은 계급 같은 것이 보이는 줄 안에서 뭉개지는 걸 무엇보다 참지 못한다.
그런데 어느샌가 그도 아니었나 싶게, 서지 않아도 될 줄까지 서는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어제만 해도 오늘 있을 한나라당 청주 합동연설회를 앞두고 전쟁에 가까운 줄서기 경쟁을 벌였다. 유력 대선 주자 두 진영은 비슷한 시각에 같은 장소에서 도합 979명이 세를 과시했다. 도의원, 기초의원들은 앞서 지지 선언에 동참하기도 했다.
해바라기성 줄서기라면 범여권 서클도 왈형왈제(曰兄曰弟)할 만하다. 주요 후보 진영의 이해, 지지를 보험으로 삼으려는 인사들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문전성시를 이룬다. 대전에서도 본 사례지만, 본인하고 일언반구 상의 없이 이름만 차용하는 일까지 비일비재인 실정이고, 두 줄에 양다리 걸치기로도 모자라 소속 정당이 헷갈린다는 상황마저 연출되는 것이다.
눈치작전도 치열하다. 이곳저곳 캠프에 줄을 대다가 유리한 쪽에 붙을 채비를 하는 국회의원이 생기는 건 약과다. 대학교수, 시민사회단체의 기웃거림도 극에 이르렀다. 언젠가 동학사 입구 식당에서 번호표를 받고 대기하다 자리가 나면 홀 안으로 불려 들어간 경험이 생각난다. 마치 그 줄처럼 이런 줄에서 무슨 응집력이며 단결심을 기대하겠는가.
집단응집력이 큰 집단으로, 달나라에 가도 전우회와 동창회를 만든다는 해병대와 K대를 꼽기를 필자도 주저하지 않겠다. 이론 그대로 구성원들의 상호작용, 목표에 대한 공감, 집단의 매력이 높아서가 아닐까 한다. 지금의, 오히려 불확실성을 회피하는 역설이 펼쳐지는 줄서기는, 그리하여 쨍하고 해뜰 날만 고대하는 이상한 줄서기는 그러한 응집력과도 다르다.
더군다나 경선 파행과 분열을 배태할 수도 있는 정치적 후진성의 씨앗인 것이다. 저 줄 잘 서는 나라들에서 줄서기와 줄대기로 아귀다툼인 우리 정치판을 보면 감상이 어떨지가 불현듯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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