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아버지 때부터 100여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가업으로 이어온 북 제작은 이제 김관식 악기장의 아들인 태호(26)씨까지 4대에 걸쳐 이어지고 있다. |
88올림픽.대전엑스포 월드컵 용고 제작
지름 2.7m 세계 최대 북 기네스북 등재
전통방식 계승 대전문화 발전 계기 마련
‘둥~둥~둥~둥~’월드컵 붉은 악마들이 치는 큰북의 울림은 우리 민족성을 울리게하는 힘의 원천이 된다. 예부터 북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악기로 88올림픽과 월드컵 등 국제대회에는 어김없이 큰북이 등장한다.
이러한 ‘큰북’을 만드는 김관식(대전시 유성구 원촌동 대한민속국악사 대표`52) 장인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악기장. 할아버지 때부터 100여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가업으로 이어온 북 제작은 이제 김 씨의 아들인 태호(26)씨까지 4대에 걸쳐 이어지고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용고를 비롯해 대전엑스포 용고, 월드컵 필승기원 대북, 청와대 춘추관 용고 등 국내에 손꼽히는 용고와 북을 제작하는 등 명성을 날려왔다. 김 씨의 장인정신과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는 지역의 문화인들과 지역민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편집자 주>
-언제부터 북을 만들기 시작했는가?
▲3대째 집안의 가업으로 이어져 내려온 만큼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북 만들기를 해왔다.
대전시 동구 성남동이 고향으로 낮에는 북을 만드는 공방이었고 밤에는 잠자리로 24시간 북과 함께 살았다. 아버지를 도와 어머니께서도 북을 만드셨기 때문에 북은 일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격적인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졸업 후 13세 때부터였다. 일상 생활처럼 북을 만져왔기 때문에 가업을 이어 악기장이 되겠다는 결심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악기장이 되기까지 어려움은 없었나? 3대째 가업을 잇는다는 부담감이 클 것으로 보이는데
▲가업으로 이어져 내려온 만큼 제작에 있어서 전통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최근에는 복잡한 공정을 생략하고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을 가져다 북을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재료선택을 비롯한 소가죽 선별, 공정까지 모두 직접 하고 있어 많은 시간과 어려움이 따른다.
전통적인 방식을 모두 배우려면 10여년의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진정한 기술을 배우기까지 상당 시간을 소요하고 노력했다.
어릴적 북 제작을 배울 때는 1년에 추석과 구정 명절 2일만 쉬고 363일을 일했다. 새벽 4시면 북 제작을 시작해 땅거미가 질때까지 손에서 일을 놓을 수 없었다. 어렵고 고된 과정에서 일을 배워서 그런지 더욱 일이 소중하고 뿌듯하기만 하다.
-북을 제작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김 장인의 악기 제작에 있어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 있는가?
▲제대로 된 북을 만들려면 무엇보다 재료 선정이 가장 중요하다. 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재료는 소가죽이다. 과거에는 소를 가정에서 정상적으로 기르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에는 전문적으로 먹기위한 소를 키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좋은 고기를 얻고 빨리키우기 위해 소를 거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소를 거세할 경우 소가죽이 얇아 북에는 적합하지 않다.
북에 사용되는 소가죽은 황소가죽 이어야하며 가죽을 벗기는 과정에서 흠집을 내서도 안된다. 거세하지 않은 소를 찾기가 쉽지 않아 양질의 가죽을 구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소가죽은 등과 엉덩이, 꼬리까지 두께가 일정하지 않다. 일정한 두께로 가공해 북을 만드는 과정이야말로 국내에 손꼽히는 기술을 자랑한다. 소가죽 가공 기술 자체를 할 수 있는 장인이 많지 않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악기장으로 40여년이 넘게 살아왔는데 가장 큰 보람과 매력이 있다면?
▲88서울 올림픽, 청와대 춘추관, 통일 전망대, 대전시청, 대전 엑스포 등 국가 대사와 지역을 상징하는 용고를 제작하고, 설치했을때 가장 뿌듯했다. 무엇보다 매번 북을 제작할 때마다 기네스북에 올릴 세계 최대 북을 제작하는 재미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세계 최대 크기의 북을 제작하고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만들어진 가장 큰 북은 울림판 지름 2.7m, 북통 폭 3m의 월드컵 큰북으로 지난 88올림픽때 제작한 용고보다 크다.
앞으로 월드컵 큰북은 기록 경신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북의 요체는 울림판이고 울림판은소 한 마리의 가죽으로 만들어져야 하는데 앞으로 더 큰 소를 찾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대전에서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장인으로 대전의 문화적 환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문화 발전의 가능성은 어느정도로 보는가?
▲대전이 흔히 문화의 불모지라고 하지만 북의 분야에 있어서 대전이 본거지다. 과거 북이나 장구를 만드는 장인이 흔치 않았던 시절부터 대전에서는 양질의 북이 생산되는 등 북과 장구에 있어서 최고를 자랑해왔다.
전통방식을 고수하며 전통을 지켜가고 있다.
몇년전에 13대째 북을 제작하며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는 일본의 장인을 만난적이 있다. 가업을 잇는다는 것은 경제적인 뒷받침이 따라야 하는 만큼 과거 먹고살기 어려웠던 우리나라에서는 힘든 일이었지만 앞으로는 일본과 같은 가업 잇기가 순탄할 것으로 보인다.
문화적 환경은 누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문화 구성원 하나하나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전통 잇기에 매진한다면 대전이 문화의 본거지로 우뚝 설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할아버님과 아버님의 뜻을 이어 가업을 전수받고 있지만 아들과 손자까지 가업이 이어지길 바란다.
또한 현재도 기네스북 기록을 갖고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큰 북을 만드는 것이 마지막까지 지속되어야 할 계획이다.
소 한마리로 북을 만들어야 하는 만큼 큰 소를 찾는 것이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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