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오 대전시 무형문화재 협회장 |
전국 최초 무형문화재 축제 열어 대중화 기여
대전 지원금 최저, 전수관건립 수년째 미뤄
개인전수관 지어 시민들과 작품 향유하고파
50여년간 지역에서 우리 고유의 단청의 이름을 알리며 장인정신으로 살아온 이가 있다. 대전시 무형문화재 제11호 단청장 보유자인 이정오씨(59)가 그 주인공. 지난 1974년 지정문화재 수리기술자(단청 기술자) 선발 시험에 26세의 나이로 최연소 합격한 이후로 전통문양 기법 계승과 복원에 힘써왔다.
대전이 고향이 아니지만 제2의 고향으로 여기고 대전시 무형문화재를 지정받고 전통계승에 힘쓰고 있는 그는 신념과 장인정신이 대단하다. 대전지역 무형문화재 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지역의 문화발전에도 열정을 쏟고 있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무형문화재 축제를 만드는가하면 각종 아이디어로 고루하기만 한 무형문화재를 시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도록 노력하고 있다. 단청장으로서 장인정신과 지역의 문화발전에 기여하는 그의 노력을 들어봤다.
이정오씨는 누구?
이정오씨는 김일섭의 특장인 금문양 및 주위문양을 전수받아 이를 계승하고 있다. 중국 건축의장인 지침서격인 ‘이명중 영조법식’의 채화작도 문양을 참고한 새로운 문양 개발에서 심혈을 기울여 남다른 기능을 지녔다.
작품으로는 합천 해인사 대웅전, 온양 현충사, 대구 영남루, 직지사 대웅전, 대전 덕수암 대웅전 등이 있다.
-단청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단청은 광물성 안료인 진채(眞彩)로 건조물이나 공예품 등에 채색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
단청을 하면 목재 보존에 유리하고 또 목재부분의 조악한 것을 가릴 수 있으며, 건물을 장엄하는데 도움이 된다.
특히 불교미술의 한 분야로 불교의 교리와 이념을 표현하는 작업이며 오랜 우리 역사 속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예전에는 단청에 종사하는 사람을 화사, 화원, 화공 등으로 불렀으며 승려인 경우에는 금어 또는 화승이라고 불렀다.
단청은 배우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많은 시간이 필요한 만큼 전수자가 많지 않다.
-주변에서 흔히 접하기 쉽지 않은 것이 단청인데, 어떤 계기로 단청예술을 접하게 됐는가?
▲아주 어릴적 조부께서 대구에 ‘장수사’라는 절을 창건하셨다. 그 당시 객승 한 분이 장수사라는 절에 기거하게 됐는데 그 분이 바로 우리나라 단청의 최고원로 김일섭(전 중요무형 문화재 기능보유자) 스님이시다.
김일섭 스님 밑에서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인 아주 어린시절부터 단청을 배우게 됐다.
어릴적 환경 자체가 단청이라는 것을 접하기 쉬웠고 불경공부도 하면서 불교에 대한 마음도 키우게 됐다.
26세의 젊은 나이에 단청 기술사 자격에 합격했을 당시에도 워낙 큰 선생님 밑에서 공부한 덕분에 주변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불교 미술이 세계적으로 정립이 잘 돼있고 화려한 단청예술을 자랑한다. 한옥과 단청의 조화된 매력에 빠져 단청예술을 지속적으로 하게 됐다.
-고향이 대전이 아닌데 대전지역에 정착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앞으로 지역에서 활동 계획은 무엇인가?
▲고향은 대구이고 대구와 서울에서 40살까지 살았다. 절친한 친구가 대전의 동춘당과 우암사적 공원을 보수하는 일을 맡게 됐다. 그 친구를 돕기 위해 대전을 찾았으며 그 이후로 20여년간 지금까지 대전에서 살고 있다.
대전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이곳에서 무형문화재 지정을 받게 됐고 편안하고 살기 좋은 도시라는 생각에 앞으로 대전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고 지낼 계획이다.
대전에 개인전수회관을 짓고 작품전시를 통해 대전시민과 향유하는 것이 작은 바람이다.
-현재 대전의 무형문화재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전지역의 무형문화재 전수 여건은 어떠한가?
▲대전지역은 좋은 지리적 위치와 여건에도 불구하고 문화가 발달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무형문화재 분야 역시 대전이 불모지이다.
지난 2000년 협회를 만들기 이전까지 문화재 전수자들이 한데 입을 모으지 못했던 것도 현실이다. 타 시도의 경우 전통계승 지원금이 평균 100만원가량 이지만, 대전의 경우 60만원으로 전국에서 가장 낮은 지원금을 받고 있다. 무형문화재 축제예산역시 타 시도에 비하면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무형문화재의 경우 대부분 비용이 많이 들고 계승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시의 지원이 없으면 사라지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대전시가 무형문화재 전수회관을 짓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으나 최근 또다시 무산돼 안타깝다.
무형문화재 전수회관은 홍선기 시장 시절부터 추진돼 온 사업이었지만 지금까지 계획만 세우고 있는 형편이다.
빠른 시간안에 무형문화재 전수회관이 건립 되고 사라져가는 전통을 지역민들에게 전수하고 싶은 욕심이 크다.
-삶의 철학이 있다면?
▲어떤 경우도 안된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생각하고 노력하면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일 앞에서도 안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작은 건설회사의 말단 사원으로 입사해 30여년의 노력 끝에 건설회사 5개를 보유한 왕 회장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재력과 함께 노력을 통한 인간문화재 지정을 받은 이후 2가지 소원을 이루게 됐다.
물론 살면서 시련도 겪었다. 보증을 서면서 20억원이 넘는 돈을 한 순간에 잃기도 했다.
하지만 절대 낙담하지도 실망하지도 않는다. 그게 삶의 철학이고 즐겁게 살아가는 노하우다.
-러시아의 문화 사절단 역할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가?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러시아의 라스코프라 지역의 고려인을 우연한 기회에 알게됐다.
그 고려인은 알타스카이 부지사면서 고려인 총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초청으로 러시아를 처음 방문하게 됐다. 러시아에는 많은 고려인이 살고있지만 한국문화는 전혀 보급이 돼있지 않다. 모스크바 대사관에 한국정자 하나가 설립돼 있을뿐 어디에서도 한국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고려인의 도움으로 라스코프라에 한국단청을 알리기 위한 ‘한국정’을 건립하고 한국의 단청을 러시아에 남기고 왔다. 민요전수자와 함께 러시아를 방문해 공연도 하면서 민간외교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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