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휘 충남도향토문화연구소장

최문휘 충남도향토문화연구소장

“충청인의 설 문화엔 禮가 있었지”

  • 승인 2006-01-27 00:00
  • 대담=이승규 문화체육부장대담=이승규 문화체육부장
▲ 최문휘 충남도향토문화연구소장
▲ 최문휘 충남도향토문화연구소장
선조들은 새해인사를 100리라도 찾아다녔어
강직함을 엿볼 수 있는 풍습이었지
‘놀이는 광대들이나 하는 것’
충청 양반들은 설 당일엔 놀이도 금지
명절 풍속도 세월따라 변해도
원래의 마음가짐 만은 변치 말아야


죽헌(竹軒) 최문휘 선생, 대전·충남연극의 아버지.

개척자를 비롯해 시인, 극작가, 연출가, 향토사학자 등 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산수(傘壽:8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 끊임없는 연구와 집필은 물론 끝까지 해내고마는 집념, 그의 열정에는 변함이 없다. 설 명절을 앞두고 오랜만에 만난 자리에서 그는 대전. 충남지역에서 전해져오는 설 명절과 관련한 전설과 숨겨진 이야기들을 한 보따리 풀어놨다. <편집자 주>





- 설명절과 관련해 충청지방만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인지 들려달라.

▲설명절과 관련해 가장 특징적인 것은 뭐니뭐니해도 ‘미련하다는 것’이다. 미련하다는게 잘못 하면 오해도 살 수 있지만 여기서는 좋은 의미다.

충청인들은 설명절날 아침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지낸 후 반드시 지인들을 찾아나선다. 친지, 은사, 친구 등 신세를 진 이들에게 새해인사를 하기 위해 100리라도 찾아다녔다.

그래서 미련하다는 얘기가 나온 것이다. 미련하게 보이지만 예를 강조한 한편 강직함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이 새해 첫날, 충청도에서만 볼 수 있는 일종의 풍습이다.



- 예부터 양반의 고장이라 불려서 그런 것 아닌가.

▲그렇다. 하나가 더 있다. 충청도는 설날 당일에는 차례와 성묘, 세배는 하지만 절대 놀이는 하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놀이를 광대들의 것이라 여겨온 양반들이라 민속놀이는 1월 3일 이후부터 허락했다.

그래서 설날과 다음날까지는 조용히 지인들에게 인사만 다녔고 윷놀이, 연날리기, 팽이치기 등 민속놀이는 며칠 후에나 가능했다. 놀이도 어른보다는 아이들의 놀이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 대전에도 설명절에 대한 재밌는 얘기가 있는가.

▲물론 있다. 지금은 대전 송촌동이지만 예전에 송촌이라는 곳이었다. 송촌에는 양반중에서도 비중있는 양반들이 많이 거주한 곳이다. 당시 회덕에서 송촌으로 넘어가려면 ‘소릿재’를 넘어야 했다.

현재의 개념으로는 군수인 당시 회덕현감이 있었는데 그는 새로 부임했을 때와 설명절, 1년에 2번 송촌을 방문해 양반들에게 문안을 드려야 했다. 하지만 송촌에 들어오기전 항상 ‘소릿재’에서 “회덕현감 문안드립니다”라고 큰 소리로 여쭌 후 허락을 받아야 했는데 송촌 양반들이 자주 거부해 출입이 쉽지 않았다는 얘기가 있다.



- 충남의 경우 차령산맥을 기준으로 내륙과 해안지방간 차이도 많다던데.

▲충남은 차령산맥을 기준으로 해안과 내륙쪽의 놀이가 판이하게 다르다. 예전에 충청도는 공주근처가 양반의 근거지라고 알고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공주인근에는 문관보다는 무관이 많다.

조선시대에 충남의 경우 공주목사와 홍주목사가 다스렸다. 지금으로 말하면 그들이 지방의 대통령이다. 공주목사의 관할구역은 현재 당진군 일부를 시작으로 충청권 내륙지방인 공주군이고 홍주목사 관할 구역은 차령산맥을 중심으로 서해안쪽인 홍성군이다.

공주군의 경우 무관이 3분의 2나 되는 반면 홍성군에는 문관이 3분의 2를 차지했다. 때문에 설명절과 관련, 공주군의 경우 연날리기 등 투쟁적인 놀이가 많은 편이었고 홍성군에는 양반들이 주로하는 팽이치기 등의 놀이가 주를 이뤘다.



- 충청지역에 단체놀이가 없다는 얘기가 있다. 무슨 말인가.

▲맞는 말이다. 충청도에는 다같이 할 수 있는 단체 놀이가 거의 없다. 지금도 영남과 호남 등 일부 지역에 비해 충청도는 응집력이 상당히 약하다. 흙보다는 모래의 성질과 유사했다.

오늘만의 특징이 아니라 예전부터 그랬던 것이다. 유일한 단체놀이는 줄다리기다. 지난 82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당진군 송악면 기지시리 줄다리기보다는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장날마다 열린 아우내 줄다리기가 더 오래됐다.



- 요즘처럼 예전에도 해맞이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해맞이는 뜻깊은 행사다. 하지만 장소는 판이하게 다르다. 요즘에는 당진 왜목마을과 계룡산, 보문산 등에서 해마다 해맞이 행사를 하고 있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계룡산의 경우 산맥이 없는데다 ‘상신리의 할배신령’, ‘신도안의 할매신령’과 ‘신라 박재상을 모신 동계사’ 등 신령이 3명이나 있어 좋은 산이 아니다. 한마디로 계룡산은 운이 없는 산이다. 보문산 역시 악산이다. 때문에 예전에 가장 큰 해맞이 행사는 부여 축응봉에서 열렸다. 구름 한 점 없이 해가 올라오면 풍년이었고 흐리거나 비가 오면 액운이 많았다.



- 매년 설명절 풍속도가 달라지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당연히 변해야 한다. 나 역시 선조들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간소화되는 경향이 있다. 변화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예전 세대로서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현상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고 옛날처럼 통일된 방법만을 고수하는건 옳지 않다. 다양함을 인정하면서도 원래의 정신과 마음가짐을 잃지 않는 자세가 중요한 것이지, 변화를 수용하는게 틀린 일은 아니다.



- 충청지방의 온갖 전설과 인물, 향토문화를 총정리했다면 고생도 많았을것 같다.

▲1968년부터 1998년, 30년동안 자동차 7대를 폐차시켰다. 수십번도 고쳤지만 결국 모두 폐차시킬 정도로 돌아다녔다. ‘충청남도 토속지명 사전’도 이 덕분에 만들어졌다.

전국에서 최초로 토속지명 사전을 발간해 당시 인기를 받았고 그 이후 제주도와 전라도쪽에서도 그런 유형의 책들이 나왔다. 현재 ‘여기가 충청도다’라는 책을 집필중이다. 모두 3만매 분량인데 1만7000매정도 썼다. 이것만 완성하면 그간 나의 일과 인생을 모두 정리하는 것이다.





최문휘 선생은

대전. 충남 연극 개척 향토문화연구 ‘열정’

대전. 충남지역 연극의 아버지로 칭송받고 있다. 세상이 다 아는 대전·충남연극의 개척자이자 터줏대감이다. 보령 오천 출생인 최 소장은 대전 신흥초, 보문중(1회),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1회)를 졸업했다.

졸업과 함께 장항농고 교사를 지냈고 이후 홍성문화원장, 국제극예술협회(ITI) 상임위원, 충남민족보존회 감사, 한국연극인협회 이사 및 충남지부장, 현재 충남도향토문화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모두 77편의 연극을 연출하거나 대본을 썼고 문화재와 전설, 대전의 전통과 유래 등 49권의 충남향토문화연구서와 시집과 방송극작, 전기집, 충남연극사 등의 작품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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