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광화 표준硏원장 |
후배들 기틀마련·지적성장 위해 최선 연구성과 상품화로 국가발전 도움 기대
정부출연연구기관 가운데 처음으로 여성 기관장이 탄생했다. 무려 30여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수많은 여성 과학자들은 물론 과학기술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 온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정광화(57) 신임 원장은 주위의 큰 관심 속에 출연연의 한 수장으로 원대한 포부를 갖고 첫발을 내디뎠다. 지금까지 정 신임 원장의 걸어온 길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 등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 주>
-출연연 사상 최초로 여성기관장의 자리에 올라섰는데, 소감은.
▲내 자신이 놀랄 정도로 담담하다. 여성과학자들의 대표주자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여성과학자 첫 번째로 출연연 기관장을 맡아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내가 잘못하면 후배들이 지장 받을 수 있고 잘하면 길을 열어줄 수 있어 이런 점에서는 적지 않은 부담이 있는 게 사실이다.
-3년이란 임기 동안 어떻게 표준연을 이끌어갈 계획인지.
▲우리 연구원은 30주년을 맞았다. 과학기술은 어느 분야보다 발전이 더디다. 내 임기 중에 뭔가 성과가 나왔다는 것은 모두 전임원장들의 노력의 결과이다.
내 임기가 끝난 뒤 성과가 나왔다면 그건 내가 한 일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많은 분들이 임기 중에 성과가 나오도록 노력하는데 나는 여기가 첫 직장이고 정년퇴직도 여기서 할 것이고, 일생을 바쳐야 할 기관이기에 명예에 연연하지 않겠다.
점프의 기틀을 마련하겠다. 사람도 30살 정도되면 점프를 해야 하지 않는가. 그러기 위해 내가 각광받고 칭찬받는데 신경 쓰기보다는 기틀마련에 노력하겠다. 후배들이 왔을 때 ‘세계 1등이다’, ‘최고다’라는 평판을 받기 위해 노력하겠다.
인적자원이 중요하니까 기존인력은 본인자질향상을 위해 치중하겠다. 연구원들은 그동안 좁고 깊게만 들어갔는데 연구원의 지적인 성장도 필요할 것이다. 이제는 폭넓게 갈 자료들을 제공함으로써 기회를 주고 내·외부 인적 자원 확보를 위해 발로 뛰겠다.
-여성과학자들이 활동하는데 어려움이 많이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후배들에게 당부의 말씀이 있다면.
▲슈퍼우먼은 포기하는 게 좋을 것이다. 가족의 협조가 너무 중요하다. 일해주고 덜어주고 한 정도가 아니다. 정신적인 문제가 중요하다. 혼자서는 힘들다, 그동안 여성이 차별을 받아왔다는 것은 주변에서 여건과 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 여성들은 특히 가정에 충실해야 한다, 가정의 도움을 받듯 여성도 가정에 도움이 돼야 한다.
-여성과학자들의 경우 다른 여러 가지 문제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자녀교육문제가 가장 큰 걱정일 것이다.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 말해 달라.
▲여성과학기술인회 회장을 하면서 대통령께 여성과학자들의 보육을 위해 지원을 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다. 이에 특구에 특수보육센터가 생길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사실 여성들에게는 보육문제만 해결되면 된다. 보육문제하면 젊은 사람들은 보육을 위한 시설만 생각하는데 사실 가정적인 보육문제, 즉 전인교육이 필요하다. 나의 경우도 할머니가 키워주셨다. 전업주부는 최근에 생겼다. 지금도 노인분들을 뵈면 거부감이 없고 시장을 가더라도 할머니가 판매하는 물건을 구입하곤 한다.
-연구원으로서의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자기일은 당연히 충실히 해야 한다. 항상 직원과의 교류에 충실해야 하고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말아야 된다. 암세포와 정상세포는 여러 가지가 차이가 있다. 정상세포는 각종 교류를 통해 발전해 나가지만 암세포는 일방적으로 자란다. 내가 하는 일에 전문가로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주변상황과의 연관성을 염두에 두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과학자들도 전쟁에 참여한 사람도 있고 사회참여를 많이 하는 과학자도 있다. 뉴턴도 조폐공사사장을 했었고, 신학도 열심히 했다. 과학자의 본 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동안 왕성한 활동을 해 오신 남다른 이유가 있는지.
▲여성과학기술인회를 만들자고 92~93년에 제안을 했었다. 당시에 과기부 및 여성부에서 불러들이고 했었다. 그렇다고 나서서 한 일은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 미국에 간 것은 별난 것 일수도 있다. 다른 분들은 대학으로 많이 갔는데 나는 출연연을 선택했다.
-출연연과 대학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표준연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는지.
▲직업을 얻기 위해 들어왔다. 대전지역에서 직업을 얻으려고 노력했다. 사실 대학을 시도했었는데 자리가 없었다. 처음 소립자이론을 했는데 계속할 수 없어 표준연구로 돌렸다.
남편이 대덕의 한 연구소에 있는 것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앞으로 표준연과 정부가 어떻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표준연은 전 세계적으로 국가가 거의 모든 예산을 지원해준다. 우리의 경우 예산지원이 50%이기 때문에 앞으로 70~80%가량 예산지원이 돼야 한다. 표준이란 제품이 나오는 게 아니라 제품을 만들기 위한 기반이다.
우리 표준연도 표준을 하되 우리나라 산업, 국민 삶의 질 등의 향상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 항상 신경 써야한다.
그동안 세계적 표준에 집중해왔으나 이제는 현장과 연결돼야 한다. 또한 ‘표준을 위한 표준’이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홍보가 중요하다. 전임원장님도 홍보에 많이 투자했고 그 기조는 계속돼야 한다. 상대방에게 알려 우리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
내 자신이 여성 1호 기관장이라는 개성 때문에 조금이나마 홍보가 되고 있다고들 말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앞으로는 향기도 표준을 세워야한다. 얼마 전 외국에 갔을 때 과일을 수출하는 나라였는데 냄새를 분석해 숙성도를 측정하는 연구를 본 적이 있었다.
-과학자로서 힘들 때가 많을 텐데, 힘들 때마다 어떤 식으로 대처해왔는지.
▲힘든 적은 많이 있었는데, 지혜롭게 헤쳐나간 것은 아니지만 잘 넘어왔다. 어차피 인생이 힘든 일도 있고 좋은 일도 있는데 최근에 와서 기본적으로 ‘잘 될 것이다’라는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생활하고 있다. 항상 ‘왜 나만’, ‘왜 내가’, ‘왜 나를’ 등의 생각을 탈피하면 여성들은 위기가 있을 때 더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대덕연구단지 태동과 함께 지금까지 함께 해 오셨다. 이제 대덕특구가 태동했는데 특구에 대한 바람이 무엇인지.
▲특구가 생긴 것은 결국 출연연의 성과를 상업화 하겠다는 것이다. 특구에서도 상용화할 수 있는 테크니컬(Technical)한 면에서도 많이 지원해줬으면 좋겠다. 또한 특구가 잘 돼 출연연 성과들이 우리나라 발전에 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광화 원장은 누구?>
학력
▲1996 경기여자 고등학교 졸 ▲1979 서울대 문리대졸(물리학 전공) ▲1977 미국 핏츠버그대학, 대학원 졸(물리학 박사)
주요경력
▲1978.7.1~현재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진공기술센터, 진공기술기반구축 사업단장, 부장대우 ▲2000.1.1~2001.10 역학표준부장, 물리표준부장 ▲1993.5.15~1999.12.31 압력진공그룹 책임연구원 ▲1980.5.1~1993.5.15 질량표준연구실장, 압력진공연구실장, 진공연구실장
대외활동 경력
▲1999.8~2003.8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2대 역임) ▲2001.6~2003.6 여성부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2003.1 인수위원회 경제2분과위원회 자문단 자문위원 ▲2004.7~2005.8 BK21 후속사업 자문위원회 위원 ▲2005.10~2006.10 국가과학기술 자문위원회 자문위원 ▲2005.9~현재 한국진공학회 회장 ▲1999.1~2003.12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3, 4대 회장 ▲2001.1~2004.12 한국물리학회 이사 ▲2003.6~현재 한국핵융합협의회 부회장
정리=정문영 기자 /사진=박갑순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