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일남 한말글사랑 한밭모임 으뜸일꾼 |
국어순화 깨달음과 실천이 가장 중요 일본어 잔재 청산. 고유말 찾기 ‘혼신’
올해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지 559년이 되는 해다. 또 민족말살정책으로 우리말과 글을 없애려 했던 일제식민지로부터 광복한지 60주년이 된다. 세계에는 수없이 많은 민족들이 있다.
동서양에 사상 유례없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던 칭기즈칸의 후예인 몽골족처럼 말과 글을 잃어버린 민족 또한 적지 않다. 엄격한 의미에서 말과 글을 상실한 민족은 ‘독립된’ 민족이라 볼 수 없다.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온 우리말과 글 역시 한자어, 외래어에 이어 인터넷 시대에 따른 언어파괴 현상으로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광복 60주년, 우리말과 글을 지키고 있는 ‘한말글사랑 한밭모임’ 조일남(62) 으뜸일꾼을 만나 559해째를 맞이하는 한글날, 우리말과 글의 소중함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 주>
-올해는 한글 탄생 559 해째다. 우리말과 글이 지닌 의미를 되짚어본다면.
▲우리말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우리의 역사와 얼이 담긴 소중한 그릇이다. 음성언어인 입말은 우리 민족과 함께 생겨나고 우리 민족과 함께 자라며 민족의 모든 것을 알맞게 담아왔다. 다른 나라 말로는 도저히 담을 수 없는 우리의 얼과 정서를 담아온 것이다. 아무리 한문을 잘해도,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그것은 남의 나라 말일뿐 수만 년 같이 살면서 이룬 우리 문화의 정수를 담아낼 수는 없다.
-우리말에 맞는 우리글을 만드는 과정이 상당히 어려웠고 지키는 과정도 어려웠다고 하는데.
▲세종대왕은 우리 음성언어에 맞는 우리 언어문자를 창제했다. 당시 한문에 중독된 양반계급의 지식 독점욕 때문에 우리글이 많은 시련을 겪어왔다. 모든 백성이 누구나 쉽게 익혀 날로 씀에 편하게 하려는 세종의 뜻은 갖은 천대와 학대 속에서도 양식 있는 몇몇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완성됐다. 우리글의 탄생과정은 당시 백성의 지지를 받은 세종과 일부 양심있는 지식인들과 기득권층의 처절한 투쟁이었다.
결국 오늘날 우리는 세종과 양심적 지식인들의 선견지명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일제 강점기는 우리말 자체를 송두리째 말살하려는 최대의 위기였다. 말을 잃으면 민족 문화는 절로 사라진다는 걸 식민주의자들도 잘 알고 있었다. 우리말 사전을 만들다 감옥에서 고초를 겪고 목숨까지 잃은 선조들이 없었더라면 일제 35년이란 세월을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사회 곳곳에서 우리말과 글만 중요시하는 것에 대해 국수주의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말을 마구 쓰고 학대해도 우리 얼이 온전하리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채용시험에서 국어와 국사가 빠지고 영어만 강조하다 보니 우리 국어보다 영어를 더 잘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사실이 기막히다.
태어나자마자 외국으로 이민을 가거나 외국에서 태어난 이들이 영어를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대접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물론 외국어는 세계화 추세 속에서 소중한 도구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도구일 뿐, 우리 국민의 소중한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는 핵심은 아니다. 선조들이 넘겨준 우리말과 글은 후세에게 넘겨줄 최대의 보물이다.
-10대와 20대들의 언어파괴 현상이 심각한 실정인데.
▲요즘 청소년들이나 20대들에게 우상처럼 군림하며 많은 영향을 끼치는 연예인들 대부분이 영어나 뿌리를 알 수 없는 이름을 사용한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사용하는 생활용품이나 학용품, 휴대전화 등 대부분의 상품들 역시 마찬가지다. 인터넷 사용으로 인한 언어파괴는 심각한 수준이다.
맞춤법은 물론이고 그들만의 은어, 문자, 한글 자모만으로 표현하는 외계어 등 우리말과 글은 찾아 볼 수 없다. 인터넷의 운영체계 개편과 통신언어 순화운동을 비롯해 대중매체 등에서도 바른 언어사용을 유도해야 하고 무엇보다 학교에서 적극적인 우리말과 글쓰기 교육에 대한 비중을 높여야 한다.
-우리말과 글을 지키자는 움직임이 활발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무엇이 문제인가.
▲광복 이후 국어순화 운동을 벌여 지금껏 그치지 않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가 쓰는 말에 일본어의 잔재가 많다. 각 기관이나 각계각층의 분야에서 일본어 잔재를 털어내려고 하지만 효과가 크지 않았다.
일본어 잔재는 물론 서양 말 또한 우리말을 상처 내고 있다. 그 주역들이 바로 잘 배웠다는 사람, 똑똑하다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지혜롭지 못한 행동이 민족의 정체성을 훼손시키고 있다. 과연 광복 60주년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를 되새겨봐야 한다.
-한말글사랑 한밭모임에 대해 설명해달라. 어떤 활동을 하는가.
▲한말글은 우리말과 우리글을 뜻한다. 우리말과 글을 지키자는 목적으로 창립한지 14년이 지났고 현재 회원은 50여명으로 30∼70대까지의 교수와 교사들, 문학인, 언론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우리말과 글을 잘못 사용하고 있는 공공기관과 언론을 감시하고 외래어로 넘쳐나는 지역명과 아파트 이름과 각종 시설물, 외래어 간판 등을 우리말과 글로 바꾸는 일을 한다.
일제 잔재어 청산과 우리 고유말 찾기, 청소년 대상 특강 등의 교육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선비마을’, ‘열매마을’, ‘샘머리’, ‘버드내’ 등 우리말로 아파트 이름을 바꿨지만 자치단체에서 건설회사가 원하는 대로 승인해 주다 보니 외래어가 쓰이는 아파트가 범람하고 있다. 광고간판 역시 마찬가지다. 자치단체의 의지만 있다면 해결이 가능한데 잘 안되고 있다.
-정부는 물론 자치단체나 교육청 등에서의 지원은 어느 정도인가.
▲실질적인 지원은 없다. 자생적인 민간단체다 보니 책자발간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지원 받는 건 거의 없다. 우리말과 글에 대한 공익적 사업을 많이 해야 하는데 여력이 부족하다. 공익적인 사업으로 진행할 경우 지역명, 아파트와 시설물 이름을 우리말로 바꾸기도 쉬운데 지금은 한번 바꾸려면 민원서류를 제출하는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사실상 우리말과 글을 쓰자는 의견을 하나의 민원으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자치단체, 교육청 등 역시 우리말과 글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는 만큼 보다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인가.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깨달음과 실천이다. 우리말은 언제나 우리 곁에 절로 있는 것 같지만 공기가 흐려지면 금방 숨쉬기 어렵듯이 우리말이 흐려지면 우리 얼이 흐려지고 얼이 흐려지면 민족정체성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정리=윤희진 기자 / 사진=박갑순 기자
조일남씨는 누구
조일남 한말글사랑 한밭모임 으뜸일꾼은 1943년 금산 출생으로 금산농고와 고려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 지난 67년 교직에 첫발을 내딛었다. 버드내중학교 교감과 교장, 대전시교육청 중등교육과장, 충남여자중학교 교장 등 무려 38년 동안 교육계에 몸담고 지난 8월 정년퇴임했다. 현재 우리말, 우리글 사랑에 앞장서고 있으며 가람문학회장과 시조문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동문학가 송근영, 홍재헌 전 대전·충남문학회장이 고문인 ‘한말글사랑 한밭모임’은 시조문학가 유동삼 대전시교육청 교명제정 위원, 이정구 전 동아일보 기자가 명예으뜸일꾼을, 안태승 노은고 교장, 백용덕씨가 버금으뜸일꾼을 맡아 우리말과 글 보존에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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