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詩聖 타고르 한국의 영원한 친구

인도의 詩聖 타고르 한국의 영원한 친구

⑨조선과 타고르의 인연

  • 승인 2005-06-02 00:00
  • 前 중도일보 주필前 중도일보 주필
▲  오른쪽은 타고르예술대학의 라빈드 라바라티 부총장과 만나 타고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 오른쪽은 타고르예술대학의 라빈드 라바라티 부총장과 만나 타고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日방문 환대불구 일본인 위선 격렬히 비난
조선 애국단체의 간청 ‘아시아 등불’ 집필
1923년 이후 한용운 등 한국문단에 큰 영향



<아시아의 등불>

일찍이 아시아(亞細亞)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燈燭)이 하나였던 조선.
그 등불 한번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캘커타의 1월은 용광로
한증막을 방불케 하는 캘커타의 1월.
한국은 한창 눈보라 철인데 인도 캘커타에선 찜통더위에 시달려야 했다. 내리꽂는 직사광선이 아스팔트를 눅진하게 녹여 신발 밑창에선 콜타르가 엿가래처럼 눌어붙는다. 거리엔 파리 떼가 윙윙거리고 잠자리에 들면 바퀴벌레가 체면 없이 기어들어 그 놈과 한바탕 토닥거리다 보면 정작 잠은 저만치 도망쳐 버린다.

누구나 인도엘 가면 겪는 일이지만 교통수단에서부터 전화사용, 밥 사먹는 일, 화장실 출입에 이르기까지 뭐하나 수월한 게 없다. 택시나 인력거를 이용하고 나선 예외 없이 운전사와 아귀다툼을 하기 마련인데 ‘미터기’라는 게 붙어 있지만 그것은 액세서리일 뿐 요금과는 아무 상관없는 부속품이다.

전화를 이용할 때도 사정은 다를 게 없다. 요금이 올랐다거나 계산기가 고장이라는 등 온갖 구실을 붙여 더 내란다. 이렇듯 억지와 무경우, 뚜쟁이 짓을 하는데 이골이 난 인도인들이다. 식당엘 가도 마음은 편치 않다. 그들 음식엔 향(香)이 들어 있어 처음 당하는 여행자는 비위가 뒤틀려 제대로 먹을 수가 없다.

또 한 가지 웃기는 일은 화장실 문화다.고급호텔을 제외한 일반 숙박업소 화장실엔 휴지라는 게 없다. 인도인은 용변을 보고 나서 휴지를 쓰지 않는다. 화장실 안엔 양동이에 물을 가득 채워놓고 그 옆에 물바가지를 매달아 놓는다. 용변 후 맨손으로 밑을 닦고 바가지로 물을 퍼서 손가락을 헹구면 일은 끝난다.

반면 밑을 닦는 손은 식사 때 사용하지 않는다. 수저나 젓가락은 일체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오른손 세 손가락으로 오밀조밀 음식물을 모아 입안으로 운반한다. 이런 풍습에 대해 원시적이니 비위생적이니 지적을 하면 그들은 되레 화를 낸다. 휴지와 지푸라기 따위를 쓰지 않는 인도인들은 그래서 평생 치질을 모른다고 큰 소리다.

풍습이 서로 다른 지구촌을 여행하는 재미란 이런 것인가. 필자는 테레사 수녀를 만난 데 이어 곧장 ‘타고르’ 취재에 들어갔다.





타고르대학교 부총장 會見



▶시성(詩聖) 타고르의 발자취를 취재하러 왔습니다. 서울 코리아에서.
▷환영합니다. 아는 대로 소개를 하지요.


▶타고르가 부호였다는 건 알려진 사실입니다만, 이처럼 호화로운 생활을 한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이게 궁전이지 어디 주택입니까? (웃음)
▷그래서 그가 거처하던 곳은 박물관이고 나머지는 강의실입니다. 이 건물은 예술대학이고 그가 세운 대학은 좀 떨어진 지방에 따로 있지요. 여기선 문학, 음악, 희곡, 미술 등 예술분야만을 교육시키고 있지요.


▶타고르를 모르는 한국인은 없습니다. 저도 문학소년 시절 ‘아시아의 등불’을 낭랑하게 애송했고, 시집 ‘초승달’을 옆구리에 끼고 다녔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두루 살펴보십시오.


▶‘아시아의 등불’이라는 시를 쓰게 된 동기를 말씀해 주십시오.
▷타고르가 세 번째 일본을 건너갔을 적에 조선의 애국단체와 도쿄 유학생들의 간청에 따라 쓴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타고르가 일본사람들로부터 크게 환대를 받고 각지를 돌며 강연까지 한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맞아요. 처음엔 일인들의 친절미와 근면성, 투철한 위생관념, 섬나라 고유의 문화적 특성에 감동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2, 3차례 방문을 하면서 그들의 위선과 침략 근성을 간파하고는 격렬하게 일본을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틈이 벌어진 것이지요.


▶그의 시가 동아일보(1929. 4. 2.)에 게재되면서 실의에 빠졌던 조선 사람들에겐 큰 힘이 되었지요. 불심지에 불을 당겼다고나 할까요.
▷그때 인도도 영국식민지로 있을 때이니 일본으로부터 압박받는 코리아가 아마도 남의 일 같지가 않았겠죠.


▶일본이 타고르를 초청해서 융숭한 대접을 하며 떠받든 것은 그 나름의 계산이 있었을 것입니다. 서양 앞에 자랑할 게 없는 일본으로선 타고르를 내세워 간접효과를 노렸을 게 분명합니다. 이를테면 대리(代理)만족 같은 것.
▷능히 그럴 수 있을 겁니다. 당시 일본은 대동아 공영권(大東亞 共榮圈)을 내세우며 아시아의 맹주, 대표성 운운, 오만을 떨 때였으니까요.


▶타고르의 문학세계에 대해 한 말씀하신다면.
▷그의 시와 소설, 희곡 미술 등은 시대사조나 유행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작품들은 하나같이 자연과 인생을 노래하면서 세속(世俗)적인 언어가 아닌 보다 중후한 철학과 신의 세계를 세련된 솜씨로 다듬어냈습니다. 사상과 서정, 종교, 철학이라는 올(絲)을 갖고 세로 가로 짜낸 고품질 작품이라면 속된 표현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종교, 理神敎에 심취

▶타고르의 신앙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그는 람 모한 로이(Ram Mohan Roy)가 창시한 이신교(理神敎)에 심취했던 관계로 기조엔 그 사상이 깔려 있지요. 이신교는 일명 브라마라 부르기도 하는데 모든 중생의 아버지 또는 범천(梵天)이라 표현합니다. 회교, 기독교, 불교 등 모든 종파를 망라한 합일(合一) 그 자체라는 거죠.


▶여담 같습니다만 예술가가 너무 잘살면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고들 합니다. 토마스 만도 아랫배가 나오면 작품을 쓸 수 없게 된다고.
▷일반적으로 그 말에 동조하는 것 같습니다.


▶잣대를 댄다면 타고르는 예외가 아닐까요?
▷매사엔 예외라는 게 있기 마련이지요. 4대 시성의 한사람. 괴테는 백만장자였으나 ‘파우스트’ 같은 불후의 대작을 남겼지요.


▶타고르는 학교 졸업장이 없다면서요? 와전인지 모르지만.
▷캘커타 제일가는 부호가 돈이 없어 학교엘 못 갔겠습니까? 또 공부가 싫어 그런 것도 아닐 것이고 런던 유학도 대학 1년 수료 후 도중하차 했습니다. 졸업장이 없는 건만은 틀림없습니다.


▶타고르의 가족사항을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15남매 중 14번째입니다. 그 형제들은 거의 예술가로 음악, 미술, 연극, 문학 그리고 철학자였지요. 모두 당대를 주름잡는 지성들이었으니까요. 그의 생가는 당시 인도 르네상스의 요람이었다고나 할까요. 바로 예술대학이 그의 자택이었으니까요. 저 유명한 간디도 가끔 이곳을 들렀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하트마 간디와도 교분을 가졌군요.
▷외부에선 타고르하면 시인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소설도 썼고 그림(油畵)도 프로급이었고요. 극본(劇本)을 쓰고 몸소 주연을 맡기도 했습니다. 이따가 안내하겠습니다만 연극무대도 집안에 갖춰놓고 있었습니다.


▶그가 런던 유학시절엔 영문학을 공부한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런던 대학에서 영문학을 배웠지요. 1년간. 그리고는 곧 중퇴를 했습니다.


▶그때 누구의 영향을 받았습니까?
▷아버지는 그에게 변호사가 되길 권유했지만 이를 마다하고 영문학에 심취하게 됩니다. 19세기 낭만파 시인 셀리, 자연주의 시인 워즈워드, 이밖에도 바이런의 시를 연구하며 창작에 몰두, 훗날 대성하기에 이릅니다.


▶인도 국민들이 존경하는 인물들을 꼽는다면?
▷많은 인걸들이 있습니다만 ‘석가(부처)’와 무저항주의로 유명한 ‘간디’와 후계자인 ‘네루’, ‘아쇼카’왕, 이신교 창시자 ‘람 모한 로이’, ‘타고르’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인도는 종교천국

▶한국을 종교천국이라 하지만 인도에 와보니 더한 것 같습니다.혹자는 인도의 빈곤을 종교 탓이라 파악하는 경향이 있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인도엔 ‘힌두’, ‘이슬람’, ‘자이나’, ‘시크’, ‘크리스트’, ‘불교’ 등이 공존을 하는데 이중 83%가 힌두교입니다. 10억의 인구 중 83%라면 굉장한 거지요. 그러나 힌두교는 딴 종교처럼 중앙집권의 교권조직이나 일정한 교리 조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 형태 또한 다양해서 토속신앙에서부터 의식(樣式)주의, 고행(苦行)주의, 신비주의 등 다양합니다.


▶일각에선 힌두교가 배불(排佛)을 한 걸로 생각합니다만.
▷불교를 몰아낸 게 아니고 불교가 힌두교에 동화(同化)됐다는 게 바른 해석이 될 줄 압니다. 역설 같습니다만.


▶한국과 인도는 역사적으로 끈끈한 정을 나눠온 사이입니다. 불교전수는 물론 ‘타고르’와의 관계, 또 6·25 전쟁 때는 인도가 군사적으로 우리를 도와줬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더욱 밀접한 교류를 해야 할 줄 압니다만. 한국유학생을 이곳에 보내면 받아 주시겠습니까?
▷먹이고 재우는 건 몰라도 가르치는 일엔 최선을 다해야겠지요.


▶한국대학과 자매결연할 생각은 없습니까?
▷기회가 닿으면 이를 추진할 생각입니다.


▶서울에 오실 기회는.
▷한번쯤 가보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부총장은 대학 내부를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타고르가 기거하던 침실과 화려한 응접실, 연극무대와 집필실 등은 당시 호화로웠던 발자취를 그대로 말해주고 있었다. ‘아시아의 등불’이라는 시가 동아일보에 실리면서 타고르는 우리에게 선뜻 다가섰으며 다음해 ‘진문학’이 그의 인물소개를 했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가탄자리’, ‘원정’, ‘시월’ 등이 소개된 건 1923년 김안서(金岸曙)에 의해서였다. 타고르는 이렇듯 한국문단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한용운(韓龍雲)의 ‘님의 침묵’, 김소월(金素月)의 ‘진달래 꽃’, 이상화(李相和)의 시가 닮았다는 이유도 이런데 있다. 이밖에도 그의 시집 ‘시월’은 백기남(白基萬)이, 소설 ‘승리’는 박태원(朴泰遠)에 의해, ‘초생달’은 임학수(林學洙)가, 타고르 전집(全集)은 유령(柳玲). ‘기탄자리’와 희곡 ‘우체국’은 감양식이 각각 번역(飜譯)을 해냈다. 타고르, 그는 아사이의 크나큰 등대(燈臺)요, 자존심인 동시에 특히 한국민에겐 영원한 친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前 중도일보 주필>
▲  사진은 동아일보 1929년 4월 2일자에 실린 타고르의 ‘아시아의 등불’의 지면.
▲ 사진은 동아일보 1929년 4월 2일자에 실린 타고르의 ‘아시아의 등불’의 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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