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900여곳으로 성장 거듭
가족계획 사업. 결핵퇴치 등 적극
의료분쟁 딛고 양질 서비스 제공
양방 쪽의 정리된 대전지역 의료계 역사는 대전시의사회가 발족한 1945년 11월부터 시작된다.
당시 의료계는 정규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들과 검정고시 후 자격고시에 합격한 사람들이 개원을 한 부류로 크게 나뉘고 있다.
당시 대전시의사회가 발족한 때는 일제 치하에서 해방된 1945년.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50여개 안팎의 개원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말 현재 개원의는 923개소, 무려 20배 가깝게 늘어났다.
의사들의 흐름이 처음에는 ‘사회적 주요 명사’에서 이제는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공급하는 전문의 개념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한의학계와의 끊임없는 한약 분쟁과 약사들과의 ‘의료 분쟁’을 겪는 등 90년대 이후 파란만장한 역사를 겪어오고 있다. 하지만 ‘동네의원’들을 지켜온 개원의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각종 질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한국사회 의사들의 모임체는 1908년 한국의사연구회(1대 회장 김남익)가 그 시초다.
1930년 조선의사협회가 발족되나 1939년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된 뒤 1942년 ‘관제 조선의사회’가 발족된다. 의료 역사도 식민 통치하에서 고통을 겪게 된다.
대한의학협회는 1948년 발족하게 되고 이 단체의 전신은 바로 1945년 9월 19일 창립한 ‘조선의학연구회’다. 대전시의사회도 바로 이에 즈음한 같은 해 11월 의사회로 탈바꿈,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현재까지 의사회를 이끌어온 회장은 충남의사회와 통합 시절 18대와 대전이 충남과 행정구역이 분리된 후 7대에 걸쳐 19명이다.
이 가운데 1대 유동현, 2대 강오봉, 4대 장원진, 5대 신현술, 6대 조계성, 7~8대 박언서, 9대 정동규, 15대 조병득 회장은 이미 유명(幽明)을 달리했다.
현재 대전시의사회의 최고(最古) 대부격은 제 3대 회장을 역임한 박선규(88) 원장이다. 그는 고향이 홍성이고 검정고시(자격고시)를 통해 의료계에 입문했다. 박 원장은 중구 대흥동에서 ‘박외과’ 원장으로 유명세를 탔다.
박 원장은 지난 1955년 4월부터 1957년 3월까지 의사회장직을 맡았으며 이후에는 대전·충남적십자사 회장을 역임하는 등 왕성한 사회활동을 펼쳐왔다.
최근 박 원장은 박외과 문을 닫고 서구 가장동에 ‘소야 크리닉’를 개설, 현재 아들 박경진 원장(외과 전문의)이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10대와 11대 회장을 역임한 송영섭(82) 원장은 동구 중동에서 ‘삼성의원’을 운영하면서 주로 소아과와 내과 환자들을 진료해왔다. 고향은 대전이며 서울대를 나왔다. 그는 1969년 4월 1일~1973년 3월31일까지 무려 4년간 의사회를 맡아왔다.
12대 조준행(79) 회장은 1973년부터 2년간 의사회장직을 맡았으며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중구 은행동에서 ‘조외과’를 개설했다. 고향은 황해도다.
조 원장은 사회활동에서 왕성하게 나서, 대전지구 황해도민회장을 맡았고 대한의학협회 중앙대의원, 한양의대외과 외래교수, 연세대 외래교수, 대한가족계획협외 이사로 활약했다.
또 1984년 국제로타리 368지구 총재로 대전과 충남지역의 각종 봉사활동을 주도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앞서 1974년에는 국제가족계획연맹 오세아지역 세미나에 한국대표로 참석하는 등 당시 가족 계획 사업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
12대 이면상(79)회장은 서울대를 나와 중구 선화동에서 제일방사선과를 차려, 지역에서 커다란 명성을 얻었다. 이 회장은 보령 출신으로 결핵협회와 평화통일자문회의, 대전·충남 적십자사 회장 등 그 어느 의사회장보다 왕성한 지역 봉사활동을 펼쳐왔다.
이 회장은 지난 1997년 선화동 의원을 둔산으로 옮겨 진료활동을 계속하다가 지금은 아들 이항영 원장에게 방사선과를 물려주었다.
이 회장은 대전의사회장 임기를 마치고 바로 1975년 충남의사회장을 맡는 등 대전과 충남의사회를 대표하는 역할을 수년간 해왔다.
14대 김영적 회장은 경북의대를 졸업한 뒤 대전도립병원에서 전문의로 일을 하다가 중구 은행동에서 ‘김이비인후과’를 운영하면서 대전과 인연을 맺게 됐다.
부산시립병원과 일본국립히로사키 대학에서도 근무한 적이 있다.
16대 방두헌(73) 회장은 충북 부강 출신으로 서울대를 나와 중구 은행동에서 ‘방소아과 의원’을 개원, 대전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1982년부터 3년간 대전 의사회의 수장으로 양방 의료계를 이끌어 왔다.
17대 김기홍(73) 회장은 전남대 의대를 나와 중구 대흥동에서 ‘김외과’를 개원했다.
김 원장은 고령의 나이에도 경찰공제회 대전의원 원장으로 아직 현직을 지키고 있다.
18대 유지문(70) 회장은 역대 대전시의사회장 가운데 4번이나 의사회장을 맡은 유일한 개원의다. 그 만큼 지역사회에 잘 알려져 있는 의사회장이다. 그는 대전시와 충남도가 분리된 후 첫 대전광역시의사회장을 초대부터 3대에 걸쳐 역임한 최장수 의사회장이다.
그는 1988년부터 1997년까지 무려 9년간이나 대전시의사회를 맡아왔다.
서울대를 나와 중구 대흥동에서 ‘유지문 외과’ 원장으로 진료를 해왔다. 지금은 유성구 장대동에서 ‘장대유명의원’을 차려 진료를 직접 하는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유 원장은 가족계획협회 대전·충남지부장을 비롯, 민주평통 상임위원, 대한법의학회 평의원, 대한적십자사 대전·충남지부 상임위원 등 의료계 안팎의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홍승원(59) 원장은 4~5대 회장을 6년간 맡아왔다. 천안이 고향이고 충남대 의대 3회 출신으로 1985년 대동외과를 개원한 뒤 지난 1996년 이를 확대해 기독병원을 차려, 현재까지 원장으로 재임중이다.
지난 1990년에는 충남대의대동창회장을 맡아 의대 동문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홍 원장이 의사회장 재직시절시, 전국을 뒤흔든 ‘한약분쟁’과 ‘의약분쟁’이 벌어져 이를 수습하고 의사회의 힘을 모으는데 주력하는 등 역대 의사회장 가운데 가장 어렵고 중요한 시기를 보낸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6대 회장인 현 장선문 회장은 지난 2003년 취임해 현재 대전시의사회의 수장직을 맡고 있다.
충남대 의대 1회 졸업생으로 지역 개원의를 대표하는 동시에 충남대 의대 졸업생들의 실질적인 리더격으로 평가 받고 있다.
동구 중동에서 ‘장이비인후과’를 개원, 현재까지 진료를 하고 있으며 동구의사회장과 의사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장 회장은 철도의사회 대전지회장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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