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1월 1일 유등천을 경계로 중구와 서구로 분구됐으며 1989년 1월 1일에는 대전직할시로 승격되면서 대덕군 기성면 전역을 서구에 편입시켜 현재의 자치구(自治區)로 발전했다. 서구는 마치 산삼뿌리가 튼 모습으로 막 햇빛을 보려 대지 위에 모습을 나타내는 형국으로 예로부터 명당자리가 많은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22명 ‘토박이 일꾼’ 의정활동 왕성
주민 복지 증진 저소득층 구제 온힘
1991년 4월 15일 개원한 초대 서구의회 의원은 15명, 2대에는 27명, 3·4대에는 각각 21명이 주민 손에 의해 선출됐다. 이 가운데 22명(작고 의원 제외)은 ‘토박이 의원’들이다.
이들 토박이 의원들은 집행부에 대한 살림살이는 물론 행정업무 전반을 직접 챙기며 서구발전과 주민의 복리증진, 어려운 이웃을 보살피는데 ‘지역일꾼’으로서 소임을 다했다.
송태영씨(40년생·도마2동)는 1·2·3대 3선 의원으로, 대신고 육성회장과 민주평통자문회의 위원 등을 거쳐 서구의회에 진출했다. 그는 초대 서구의회 제2기 부의장을, 제3기에는 운영위원으로 활발한 의정활동을 펼쳤으며, 저소득층 구제대책 등에 높은 관심을 쏟았다.
새마을지도자 변동협의회장과 변동·가장동 농협영농회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 등을 거쳐 초대의원에 당선된 손중락씨(39년생·변동). 제3기 사회건설위원회 간사를 맡았던 그는 주민화합과 지역 발전에 심혈을 기울였다.
김학원씨(54년생·용문동)는 1·3·4대 서구의회에 진출한 3선 중진의원. 범시민 대전엑스포추진 서구협의회 사무국장, 흥사단 대전지부장 등을 두루 역임했다. 제1기 때에는 운영위원장을, 3대 후반기 의장, 4대 의원시절에는 지방분권 연구특위 위원장과 대전시 기초의회 의장단협의회장, 제2대 대전시의회 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1·2대 의원에 당선된 이영규씨(36년생·용문동). 국제로타리 대전보문클럽 회장과 서구개발협의회 위원, 대전문화원 운영위원, 대한곡물협회 중앙회 이사 등을 거쳐 서구의회에 진출한 그는 제3기 부의장을 맡아 서구현안을 꼼곰히 챙겼다.
김형식씨(53년생·가장동)는 1·3·4대 서구의회에 진출한 3선의 중진의원. 가장동 새마을금고 부이사장과 충남대 농과대학 총동창회 이사를 역임하는 등 왕성한 사회활동을 벌였다. 초대 서구의회 제1기 내무위원장과 제3대 예산결산특별위원장, 제4대 운영위원장과 후반기 의장을 거쳤으며 현재 녹색봉사회 회장과 가장동 방위협의회 위원장, 가장동 주민자치위원회 고문을 맡고 있다.
‘갈마동 토박이’ 임헌성씨(45년생·갈마동). 그는 1·2·3대 서구의회 의원을 거쳐 제4대 대전시의회 의원에 당선되는 등 기초 및 광역 의원을 두루 거쳤다. 서구의회 의장과 대전시의회 후반기 부의장을 지낸 그는 서부농협 조합장 선거에서 당선돼 대전시 의원을 중도 하차했다.
노창남씨(30년생·가수원동)는 교사출신의 지방의원. 대덕군 정책자문위원과 유성중 총동창회장, 진잠중 총동창회장 등을 거쳐 서구의회에 진출했다. 제1기 사회건설위원장을 지냈으며 지방자치 실현에 정열을 쏟았다.
도마동 토박이인 이덕규씨(51년생·도마2동)는 2대 서구의회 의원을 거쳐 자민련 후보로 3대 대전시의회 의원에 출마해 당선됐다. 서구의원 시절 내무위원장을 거친 그는 지역 내에서 ‘뚝심과 의리의 사나이’로 정평이 나 있다. 도마2동 새마을금고 이사장과 학교폭력범죄예방 서구협의회부회장을 지내기도 한 그는 중부권 신당 창당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김경시씨(55년생·복수동)는 2·3·4대 내리 서구의회에 진출한 3선의 중진의원. 대전시 4-H연합회장과 복수동 주민자치위원장, 바르게살기운동 서구협의회 위원을 거쳐 현재 서구 생활체조연합회장을 맡고 있다. 제2대 서구의회 후반기 사회건설위원장, 3대 전반기 운영위원장, 4대 전반기 의장을 지낸 그는 지역 내 어려운 이웃을 챙기는 ‘복수동 머슴’으로 소문났다.
교사 출신의 송기재씨(33년생·정림동). 경기도 광주농업고 교사와 도시 새마을지도자, 도마동 마을금고 이사장, 바르게살기운동 정림동추진위원회 위원장 등을 거쳐 2대 서구의회 의원에 당선됐다. 내무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낙후된 정림동 지역개발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임영빈씨(37년생·삼천동)는 유천초와 대전중·고를 졸업한 후 공직사회를 거쳐 제2대 서구의회 의원에 당선된 대전 토박이. 도마동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그는 가수원동장과 가장동장, 삼천동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17회 청백봉사상 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3대 의원에 당선된 박옥근씨(36년생·괴정동). 그는 괴정동 새마을금고이사장과 괴정동 주민자치위원장, 민주평통자문회의 서구협의회 자문위원을 역임한 뒤 의회에 입성했다. 3대 전반기 사회건설위원장을 지냈고, 지역발전과 지방자치 실현에 헌신봉사하는 등 모범된 의정활동을 펼쳤다.
윤용대씨(54년생·갈마동)는 지역 내에서 ‘갈마동 황소일꾼’으로 정평이 나 있다. 2·3·4대 의원으로 당선된 3선 중진의원의 그는 대전상고 출신으로 갈마초등학교 총동문회장, 2대 후반기 내무위원장, 4대에는 행정도시위원을 지냈으며, 지역민에 귀를 기울이고 현안을 찾아 개선함으로써 지역민들에게 인기가 높다.
‘가수원 토종’ 이상구씨(38년생·가수원동)는 2대 의원에 당선됐다. 자유총연맹 서구운영위원과 가수원동 신협감사 등을 거쳐 의회에 진출한 그는 96년도 예산결산위원장을 지내는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임종빈씨(58년생·가수원동)는 사단법인 한국음식업중앙회 대전시지회 서구지부장을 지낸 뒤 2대 서구의원에 도전장을 내 당선됐다. 그는 의정활동을 하면서 날카롭고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쏟아내 집행부를 곤혹스럽게 했다.
공무원 출신의 송달영씨(29년생·기성동). 그는 기성면 지역방위협의회 위원장과 갱생보호회 대전지부위원, 흑석 새마을금고 이사장 등을 지낸 후 2대 서구의회에 입성했다. 내무 및 사회건설위 위원을 지냈으며, ‘토착 일꾼’으로 주민화합과 지역개발에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정정순씨(42년생·정림동)는 정림동 바르게살기위원장과 정림동 자율방범대 후원회장 등을 거쳐 3대 서구의원에 당선됐다. 지역개발과 지방자치 실현을 위한 의정활동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가수원동 새마을지도자협의회장 등을 역임한 신흥균씨(45년생·가수원1동)는 3·4대 서구의회에 진출한 재선의원으로, 지역에선 ‘마당발’로 소문났다. 조용한 성품의 그는 지역발전을 위한 일이라면 발벗고 나선다.
이기준씨(54년생, 정림·기성동)는 3·4대 서구의회에 입성한 재선의원. 기성중 운영위원장과 서구 의료보험조합 운영위원 등을 거치면서 그는 ‘부지런한 일꾼’으로 정평이 났다. 4대 후반기 부의장으로 왕성한 의정활동을 펼치고 있다.
3·4대 재선의원인 강선구씨(49년생·월평1동). 재향군인회 서구지회 운영이사와 한마음봉사회 사무국장, 서부 의용소방대 월평지역대장 등을 지낸 그는 3대 전반기 사회건설위원회 간사를 역임했다. 4대 전반기 사회건설위원장을 지냈으며, 지역현안에 열성적이다.
황웅상씨(59년생·갈마1동)는 갈마초등학교, 대신중, 대신고, 충남대를 졸업한 뒤 갈마청년회장과 서구 볼링연합회 사무국장을 지낸 후 4대 의원에 당선된 초선의원. 지역에선 ‘의리의 사나이’로 불리고 있으며, 현재 갈마도서관 운영위원과 서구 새마을문고 후원회 이사로 역임하는 등 모범된 의정활동과 왕성한 사회활동을 펼치고 있다.
혜천대 기성회 위원 등을 지낸 박희창씨(52년생·도마2동). 4대 의원에 당선된 초선의원으로, 현재 도마2동 주민자치위원회 도솔 청소년육성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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