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야 국문학자 한원영 박사 |
일제 강점기와 군사정권을 지나며 언론 권력이 된 거대 신문사의 ‘과거’를 말하는 것은 한때 금기였다.‘한국 신문 한세기 개화기편’에 이어 3년 만에 ‘근대편’을 펴낸 재야 국문학자 한원영 박사(80). 자택을 찾아 언론학자조차 집필이 힘든 ‘한국 언론사’에 천착한 얘기를 들었다. <편집자주>
-‘한국신문 한세기’는 신문이 이 땅에서 뿌리내려 걸어온 발자취를 그대로 그려내고 있는 장편 서사시와 같습니다.언론사를 정리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지요.
▲후학을 가르치는 교육을 천직으로 안 국문학자로서 신문에 연재된 소설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연구를 시작하면서 각 신문사의 연재소설은 물론 당시 시대별 신문들에 대한 자료도 모아지더군요.
이를 바탕으로 ‘신문연재소설연구’를 비롯해 ‘한국 개화기 신문연재 소설연구’, ‘한국 현대 신문연재소설연구’ 등을 출간했습니다. 책을 출간후 남아있는 자료들 역시 충분한 가치를 갖고 있다고 판단해 ‘한국신문 한세기’를 집필하게 됐습니다.
신문의 역사를 시대별로 그대로 전하는 작업은 아직 진행 중 입니다. 혹자는 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왜 신문의 역사를 정리하느냐고 묻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엄청난 자료준비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세기 동안의 흔적을 일일이 찾아 나서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막상 오래된 신문을 찾아도 종이가 삭아 사진기로 직접 찍어 자료를 확보해야 했습니다.
몇 년전 ‘개화기 신문연재소설 연구’를 집필하던 중에 자료수집 차 이름 있는 도서관들을 찾아갔지만 당시 신문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해방 직후 관리자가 도서관 정리 차원에서 과거에 발행된 잡지와 신문을 모두 저울에 달아 고물상에 팔았다고 하더군요.
또 한번은 일제하에 나온 신문을 찾기 위해 모 신문사를 찾았습니다. 신문을 찾았으나 언론사에 불리한 내용은 이미 삭제되고 없었습니다. 일제시절 사실을 곡필하고 훼절했던 친일행위가 자사의 치부로 기록되는 것을 은폐하려 했던 거죠.
가장 트이고 밝게 처신해야 할 신문사가 과거의 일에 대해 막힌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것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이런 이유들로 상당부분 자료 수집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최근 출판한 ‘한국신문 한세기-근대편’의 주된 내용은 무엇입니까.
▲‘근대편’은 ‘개화기편’을 펴낸지 3년만인 지난해 12월에야 출간했습니다.원고 집필에만 2년의 시간을 보내고 2003년 5월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으나 해를 넘기고야 완성된 책을 받아 볼 수 있었습니다.
돈이 안되는 책을 출간하는 입장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었죠. 더욱이 작업 자체가 일일이 수작업으로 이뤄지고 한문이 많아 보통 3~4번이면 끝나는 교열을 무려 6차례에 걸쳐 했습니다.
근대편은 1910년 한일합병에서 조국이 광복된 1945년까지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발행된 일간지들의 투쟁적 성장 과정과 수난사, 사회 변천과 주변 상황의 역학적 인과 관계 등을 담았습니다.
일제 36년 식민지 치하에서 발행된 전체의 신문을 ‘근대신문’으로 이름 붙였습니다. 이와 함께 일제의 탄압에 의해 민족 지조를 버리고 변절, 훼절하는 등 일부 민간지에 대한 비판과 각계에서 바라는 희망의 메시지도 담았습니다.
-앞으로 출판하게 될 ‘한국신문 한세기’의 완결판인 현대편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질 예정입니까.
▲솔직히 한국신문 한세기의 개화기와 근대편은 신문의 과거사로 서슴없이 이야기 할 수 있었지만 현대편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용이고, 계속해서 진행되는 일들을 집필해야 하기에 어려움이 많이 따를 것으로 보입니다.
나름대로는 현 시대의 신문을 ‘이념을 중시하는 신문’으로 주제를 잡고 전개할 계획입니다.
지금은 1946년 미군정에 대해 신문사들이 취했던 입장들을 정리해 나가고 있는 단계입니다. 현재의 시점이 가까울수록 마무리에 대한 고민을 다시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개화기, 근대편, 현대편에 이은 ‘한국신문 한세기’ 저서가 어떻게 활용되길 바라시는지요.
▲사실상 개인의 자격으로 신문의 역사를 정리한다는 것은 방대한 작업입니다. 신문연재소설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한국신문사를 저술하게 됐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개화기를 시작으로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기록이 담겨있는 이 자료가 신문을 연구하는 후배 학자들이나 현업에 종사하는 언론인들의 자료로 쓰일 수 있다면 더 큰 보람은 없겠죠.
개화기와 근대편은 민족을 계몽시키기 위해 신문을 창간한 개화기를 시작으로 일제시대 탄압에 대항한 신문의 항거와 곡필,암흑시대에 진행된 사실들을 담았습니다. 이제 언론의 지사적 성격이 없어지고 자본의 지배를 받는 현대편을 집필 중입니다. 한세기를 잇는 신문의 역사를 되짚어 볼 때 신문의 역할과 미래의 발전상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리=박은희 교육문화부 기자 / 사진=이중호 기자
한원영(韓元永) 선생은
삭풍이 유난히 심하던 날 자택 서재에서 만난 선생은 팔순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정정했다.선생은 “몇 해 전만해도 봄날 창밖은 복숭아와 사과?배나무 꽃으로 근사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6년여에 걸친 개화기와 근대기 ‘한국신문 한세기’ 저술 작업.그 어려운 집필을 택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선생은 시종일관 말을 아꼈다.“언론학자가 아닌 이상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이 돌아온 답이다.
‘사실 저술’,그것은 기자의 취재 근간인 ‘사실 보도’와 같은 뜻 아닌가? 일제하에서 태동한 민간지를 다룬 ‘한국신문 한세기-근대편’을 최근 출간한 그는 해방이후 현재까지의 ‘현대편’ 집필에 들어갔다며 깨알같이 쓴 원고를 내보였다.
본인조차 ‘미련스런 작업’이라고 말하는 ‘한국언론사-현대편’은 햇볕 따사로운 서재에서 세상에 나올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3년 후 ‘현대편’ 출간 때 다시 뵙겠다”는 기자의 말에 老학자는 “대기자가 되길 바란다”고 화답했다.
▲1926년 홍성 출생
▲서울대 사범대 졸업(문학박사)
▲문교부 장학관(인문과학 편수관)
▲청주전문대학장
▲주성대학장
▲교육부 중. 고 국어교과서 심의위원장
▲교육과정 심의위원
▲저서=‘한국개화기 신문연재소설연구’,‘한국근대 신문연재소설연구’,‘한국현대 신문연재소설연구’,‘한국신문 한세기-개화기편’,‘한국신문 한세기-근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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