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살아 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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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살아 보세∼"

  • 승인 2005-01-05 00:00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신문
▲  최충식 논설위원
▲ 최충식 논설위원
사 시무식의 끝 순서는 '잘살아 보세' 합창이었다. 총무부장의 제안으로 60년대식 '건전가요'를 부른 것이다. '넉넉하다 산다'는 뜻 그대로 경제적인 측면이 강조된 것이고 정권과 언론이 앞장서 보급해 앵무새처럼 부르던 노래였지만 오랜만에 불러보니 마음을 덥혀 준다. "잘살아 보세. 잘살아 보세.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

'잘산다'는 것도 보편 타당한 기준만은 아닐 것 같다. '아름답다'라는 말 자체가 '앎(知)'과 연관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예를 들어 벌과 나비 눈에는 비행기 활주로를 밝힌 조명처럼 둥그런 무늬가 꽃 중심에 보인다. 그게 꽃의 성기처럼 보일지는 모른다. 만일 장미꽃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장미꽃이 꼭 아름답지만은 않을 것이고 산사의 선승(禪僧)에게는 잘먹고 누리며 사는 물질의 풍요가 물거품처럼 허망한 것일 수도 있다.

여기서 어느 문학행사에서의 '체험'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교과서에서나 만날 법한 명사들과 밥 먹고 절 구경 다닌 것 이상의 큰 수확은 기타와 피리 산조의, 기타와 해금의 멋들어진 어울림에 대한 첫 경험이라 해도 좋다. 축하공연에서 생긴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해프닝 덕이었다. '그 저녁 무렵부터 새벽이 오기까지'를 연주하던 도중 그만 해금 줄이 끊어져버린 것이다.

한참 새벽으로 치달으며 '필'이 꽂힐 무렵이었다. 그때 기타리스트가 잽싸게 마이크를 잡더니 "여러분의 열기가 너무 뜨거워 명주실이 끊어졌다"라고 유연하게 위기를 넘겼다. 박수 갈채가 따랐음은 물론이다. 해금 줄을 새로 가는 사이에 장구 연주가 계속되었고 시보다 아름다운 덕담도 끊이지 않았다. 황금찬 시인은 차례가 되니 "앞으로는 기타를 좋아해야겠다"며 음악 뒤에 나오면 손해라는 말도 했다. 뒷순서인 문효치 시인 역시 "거목(巨木) 다음에 나오면 손해"라는 겸양을 잊지 않았다.

자존심을 버리면 행동이 편해지고 욕심을 버리면 호주머니가 편해진다던가. 그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힌트였다. 전통과 현대, 보수의 진보, 노와 소의 갈등을 푸는 해답이 모두 들어 있었다. 거기에 정치적 극단주의나 과격상업주의(선명한 과격함을 팔아 세력을 유지하는 것)가 틈입할 여지는 없었던 것이다.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은 '경제문감'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찌하여 당이 없는 것을 옳다고 말하고 당을 가진 것을 그르다고 말할 수 있으랴.'

그렇기는 하다. 그렇지만 극단적인 편가르기와 줄서기는 이 순간도 시파(時派)와 벽파(僻派) 같은 것을 무수히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칼 대신 붓으로 이룩한 수준 높은 권력투쟁의 측면은 쏙 빼놓고 당쟁의 폐습만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것처럼도 보이는 우리 정치다. 개 한 마리가 짖으면 온 동네 개가 큰일난 양 떼거리로 따라 짖는 형국이다. 주인을 위해 몸바치겠다는 충복은 많지만 주인을 똑바로 모시는 충신이 드문 것도 문제다.

입은 적을 만들고 귀는 친구를 만든다 했다. 새해 새 화두는 상이한 의견을 일단 접고 공통분모부터 찾는 '구동존이(求同存異)'여야 한다. 동지가 아니면 적으로 내치는 해묵은 '당동벌이(黨同伐異)'는 버리자는 것이다. 아래서 보면 위가 위태하고 위에서는 아래가 불안한 이분법도 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탄광 속 카나리아로 비유되는 우리 경제도 구할 수 없다.

기타와 국악기인 아쟁, 기타와 사물놀이에나 어울릴 것 같던 장구의 절묘한 어우러짐을 다시 생각한다. 우리도 매서운 겨울바람 같은 갈등을 녹이고 도란도란 민주주의 밥을 끓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이것은 국민의 목마른 염원이며 논설위원 4년차를 맞는 필자의 어떤 다짐이기도 하다. 결론은 평이하면서도 간단하다. 못살거나 막살지 말고 '잘살아 보세'다. 지나치게 유심론보다 유물론이 지배해서도 안 되겠지만, 그래야 올 한해가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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