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독감, 광우병 논란, 불량만두 파동, 카드뮴 쌀 등 먹거리의 생산, 유통, 가공, 저장, 소비 과정 모두에서 허술함이 드러나 식품 안전에 대한 논란이 유난히 많았던 한 해였다.
소비자들 사이에 먹거리에 대한 불신이 커지자 보건복지부가 위해(危害)우려가 있는 식품을 신속히 처리할 수 있도록 불법행위에 대한 감시와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식품위생법 개정안을 마련, 지난 11월 9일 국무회의를 통과시켰다. 또한 PPA 감기약과 불량만두 파동으로 힘겨운 한해를 보낸 식품의약품안전청도 내년에는 ‘국민안심 부처’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등 식품의 안전성 확보를 위한 다양한 계획을 내 놓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발표에도 불구하고 부정·불량 식품이 줄어들거나 식품 유통전반이 개선될 것이라고 믿는 국민들이 많지 않다. 우선은 그동안 소비자들이 위해 식품에 너무 많이 노출되어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당해왔기 때문이다.
한편 식품 유통 환경이 크게 변화하고 있지만 체계적으로 처리방안을 연구하는 시스템 구축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이번에 내놓은 것도 땜질식 정책 중 하나 일 것이라는 생각을 국민들이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듯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과 수행 의지 부족이 위해 식품 사범(事犯)을 키웠다는 지적 또한 만만치 않다. 다음으로 식품 제조·유통업자들의 의식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부분이다.
불량만두로 인해 여론이 들끓고 있는 와중에도 버젓이 건강보조식품을 탁월한 치료 효과가 있는 약품인 것처럼 과대 포장하고, 공업용 화학제품으로 세척한 오리고기를 판매하고 있는 사업자가 있는 한 식품 거래 질서는 바로 잡아질 수 없다. 특히 소비자들의 단결된 힘이 지금보다 더 조직화되고 활성화되지 않은 이상 식품 소비자는 늘 피해자로 남겨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식품위생법 개정안이 하루 빨리 국회를 통과하여 식탁이 더 이상 위협받지 않도록 에너지를 모아야 하며 세부 시행 계획을 마련함에 있어 철저하게 유해 요소와 식품 범죄를 가려낼 수 있도록 세밀한 부분까지 살펴보아야 한다. 하지만 제도 개혁과 기준 강화에 앞서 중요한 것은 제조업자의 윤리의식과 소비자의 주인의식이다.
제조업자들은 먹을거리로 소비자를 기만하면 기업의 존립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의식을 가져야 하며, 그 의식은 소비자가 먼저 심어줘야 한다. 또한 소비자는 정부가 원산지 표시제도의 강화와 위험요소에 대한 적절한 조치, 유통 추적시스템 확보 등 식품안전대책을 강화하도록 주의를 촉구하는 역할 담당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갖가지 정책이나 제안보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식품에 유해 색소를 넣는 등 ‘차마 있을 수 없는 일’이 우리 주변에서 자행되는 이유가 ‘만남의 不在’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인식하는 일이다. 얼굴 없는 생산과 얼굴 없는 소비의 만남은 순간에 끝나는 만남이기에 관계가 성립되지 않고 관계가 없기에 서로를 배려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서로를 배려하지 않고 만남이 없는 사회에 불인지심(不忍人之心)이 있을 리 없는 것이다.
위해 식품으로 모두가 어렵고 힘든 한 해를 보낸 만큼 다가오는 2005년에는 정부와 지방 정부, 기업, 소비자 모두가 서로를 배려하며 진정한 ‘만남의 광장’을 마련해 명실상부한 식품의 안전성 확보 원년의 해로 만들어 가는데 힘을 모으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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