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용철 벧엘의 집 담임 목사

원용철 벧엘의 집 담임 목사

  • 승인 2004-12-24 00:48
  • 원용철 벧엘의 집  담임 목사원용철 벧엘의 집 담임 목사
▲ 원용철 목사
▲ 원용철 목사
어느덧 한해를 마무리하는 세밑의 길목, 울려퍼지는 캐럴송의 축복만큼이나 따사로운 이웃사랑의 손길이 그리운 계절이다. 이에 본보는 대전역에서 7년째 노숙자들과 함께 지내며 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원용철 목사(40)를 만나 힘겨운 겨울나기에 허덕이는 노숙자들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벧엘의 집’을 운영하시는데 주된 역할은 무엇입니까.

▲거리 노숙인들의 쉼터 역할을 합니다. 또 무료 진료소를 통해 빈곤층의 의료문제를 담당하고 있어요. 빈민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희망센터를 운영하고 있지요.

거리 급식, 옷 나누기, 반찬 나누기를 비롯해 쉼터, 의료활동 등을 통해 빈민층의 자활사업을 돕는 겁니다. 궁극적으로 생산공동체를 만들려고 합니다.



-빈민 구제활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어떤가요. 아울러 공공기관의 지원책에 대해서도….

▲상당히 안좋습니다. 양심에 호소하듯이 하나 던져주며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이죠. 노숙자 중에는 한때는 열심히 일했던 사람도 있고 걸인으로 살았던 사람도 있지만 이들에 대한 인식이 지금은 폐지된 부랑인복지법을 통해서도 알 수 있어요. 앵벌이, 껌팔이 등을 사회적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인물들로 규정해놓았거든요.

빈곤문제는 사회적 정서와 밀접하죠.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한다고 하는데 개인의 사회안전망이 힘들고 자녀양육, 노인문제가 개인에서 사회문제로 바뀌어야 됨에도 개인 문제로 치부되는게 안타깝습니다. 아프리카에만 굶는 아이가 있는게 아닙니다.



-수혜자 입장에서 요즘 지원은 어떤가요.

▲작년에는 늘었으나 올해에는 줄었습니다. 추석때마다 쪽방에 쌀나누기 행사를 펼쳐왔는데 올해는 1000㎏의 쌀에 1000만원 정도 예산이 드는 쌀 나누기 행사를 못했습니다. 올 추석은 사과 1개, 떡 한덩이밖에 나눌 수 없을 정도로 썰렁했지요. 원조 물품이 가는 데만 가고 나눌 곳이 워낙 많다보니 중복되는 경우도 많이 발생합니다.

농협, 교회, 사회단체 등에서 쌀, 김장김치 나누기 등이 더 활성화돼야 하죠. 하나가 힘든 일도 둘이 모이고 셋이 모이면 됩니다. 작은 것이라도 해가는 삶이 변화될 수 있죠.

아쉬운 점은 봉사하면 끝까지 해줬으면 하는 겁니다. 봉사, 적선의 자세로 하다가 안하면 수혜자 입장에선 상처가 깊거든요. 제가 처음에 대전역에서 노숙자 생활을 시작할 때 “너도 언젠가는 떠날 것 아니냐”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전 그들에게 평생을 함께 하겠노라고 약속했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니 빈민층을 가까이 접하면서 어려움이 많으실텐데요.

▲빈곤층의 가장 큰 문제는 주거문제에요. 겨울이 그래서 가장 지내기 힘든 계절이죠. 열악한 주거환경에서는 따뜻하게 지내기가 힘들어요. 대전은 연탄을 때는 곳이 많지 않아 기름 보일러를 사용할 수 없는 곳들은 전기장판에 의지해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느 단체나 마찬가지겠지만 운영에 관한 어려움이 있지요. 즐겁게 하려고 시작한 일이 7년째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노숙자들의 삶을 바꾸고 싶어도 그동안 만났던 수천명의 노숙자들에게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과 대처의 길이 안보일 경우 판도라의 상자를 연 기분입니다.

70년대 넝마주이들과 살며 빈민선교하던 허병선 목사님의 고견을 듣고 이 일을 시작했는데 가장 어려운 것은 시간이 지나도 길이 안보이고 점점 좁아보이는 것입니다.



-부랑자, 노숙자들에 대한 해결책이 있나요.

▲노동청 지원으로 장애인을 고용하듯이 노숙인들을 위한 취업 프로그램을 지원해야 합니다. 재교육은 의미 없어요.

자격증을 따는 교육은 필요없고 기관과 연대해 사업장을 만들어 지방정부, 중앙정부에 납품할 수 있도록 하는게 필요해요. 영국의 경우 노숙인들이 만드는 홈리스자활공동체 제품을 구입해주고 있잖아요.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한 지혜가 있을까요.

▲이 사회가 가난한 사람들을 끌어안지 않으면 평화가 깨질 것입니다. 한국도 할렘가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 속에 있는 분노를 표출할 길이 없어요. 나눈다는게 많은 것을 나누는게 아닙니다.
농촌의 보릿고개 시절 꽁보리밥을 나누면서 함께 살아가던 시절이 있었죠.

이 사회에 바라는 것은 작은 삶을 나누고 이들을 인정해주고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인정하고 통합되고 따뜻해지려면 숟가락 하나 더 놓고 김장 한포기 더해 홀로 사는 이웃에게 나눠주는 마음이 필요한거죠.



-노숙자는 지난 1997년 말 IMF 이후 급격히 증가했는데 지금은 어떤가요.

▲98년도 당시 대전역 노숙자가 200여명에 달했습니다. 그 이후 2002년에 50여명으로 줄었다가 2003년도 말부터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올 가을에 특히 늘어났지요. 연도별로 20, 30여명씩 늘어나다가 지금은 대전역 노숙자가 100여명 정도 됩니다. 효동 빈공장, 다리밑, 대전역 중심으로 계산된 숫자입니다.

10대, 20대를 비롯해 가출한 청소년들도 많습니다. 20대 중에도 사회적으로 사회성이 결여된 경우가 많아요. 일자리가 부족해 어디도 갈 수 없고 부모가 가난해 다른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죠.



-빈민, 빈곤,노약자층의 공통점이 있을 것 같은데요.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일탈하고 사회가 굴러가는 톱니바퀴에서 견디지 못해 튕겨져 나온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환자입니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이들은 많은 복지기관을 통해 취업하고 사회 시스템 안에 들어가보지만 견뎌내지 못하고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순간 적응한 것 같아보이다가도 순간적으로 무너져 내려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상황이 많이 발생합니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일탈’이죠. 3년전 제가 발표한 연구논문이 있는데 과거 실태조사를 해보니 가난한 사람 대부분이 이전에도 가난해 가난의 대물림이 소리없이 시작됨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밑바닥 인생들이 대부분 거기에 머물러 있는거죠. 희망을 버리고 막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대전역에서 한달을 노숙해보니 그런 사람들이 이해가 가더군요. 성경에서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돌을 쳐라’라는 말씀이 와닿았습니다.
인간쓰레기이고 감추고 없애고 싶은 부분이라 생각하는데 과연 누가 이들을 정제할 수 있겠습니까.



-보람이 있다면요.

▲삶을 포기한 사람들이 자기 문제를 고민하고 해결하려 노력할 때 인생을 헛살지는 않았구나 하고 보람을 느끼게 되죠.

벧엘의 집이 대전에 있는 쉼터중 제일 열악해도 이 곳을 찾는 노숙자들이 많은 것은 이 곳에서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고 싶기 때문일 것입니다.

앞으로도 평생 이들의 자립을 위해 온 몸과 마음을 바쳐 일할 것입니다. 가족들에게 미안하지만 희망진료센터에서 간호사 일을 하며 도와주는 아내가 이해해주기에 힘을 얻어 일합니다.

생활공동체를 구성해 빈민, 노숙자들이 삶의 희망을 얻는 구심체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약력

▲당진군 송악면 기지시리 출생 ▲목원대학교 신학대학 신학과와 동대학원, 한남대학교 지역개발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졸업▲사이버공동체 참여넷 대표, 대전실직노숙자 대책위원회 사무국장 역임▲대전참여자치 시민연대 복지포럼 운영위원, 대전경실련 상임집행위원, 전국실직노숙자대책종교시민단체협의회 운영위원 역임▲대전시 쪽방상담소장 역임▲대전용두동 철거민 대책위 집행위원, 대전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이사, 실업극복연대 일어서는 사람들 이사,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대전지회 집행위원, 참여자치연대 복지포럼 집행위원, 동구 복지만두레 자문위원.



정리=한성일 기자 / 사진=이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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