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출신 헌재 재판관 송인준씨 |
대전지검장 시절 잦은 대형사건 기억남아
봉사에도 열심 ‘인간미’있는 법조인 되길
송인준 재판관(59)은 냉철한 판단력으로 시시비비를 정확하게 가려내는 법조계에서 몇 안되는 강력 수사통이다. 송 재판관은 제 10회 사법고시에 합격후 공군법무관과 서울지검 검사로 출발, 검사시절에는 공정함과 기민한 수사 지휘력을 인정받아 오늘의 자리까지 이르게 됐다. <편집자주>
“법은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적용되고 존엄성이 유지돼야 그 존재가치가 있는 것입니다."송인준 재판관의 법철학이다. 송 재판관은 법조인으로서의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격식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인간미를 풍긴다.
송 재판관이 지금까지 현직에 있으면서 공정한 사건처리의 명수로서 검찰조직 내외로부터 두터운 신망을 받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마디로 말해 힘없는 약자를 보호하고 대변하면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법조인으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가장 훌륭하게 실천해온 법조인으로 정평이 나 있다.
무엇보다 그는 어려운 일에도 앞장서는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있다.
지난 98년 대전지검 검사장 재직시 IMF 위기로 인해 경제적 사정이 어려울 때 ‘소년소녀 가장돕기 장학재단(한마음 장학재단)'을 설립해 ‘결식 아동돕기'를 하는 등 사회 봉사활동을 펼쳐 주변으로부터 많은 칭송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엉뚱한 오해를 받은 일이 있어 당시에는 난감했다고 그는 회고했다.
당시 대전의 한 조직 우두머리인 모씨가 자신도 결식아동돕기에 동참하겠다고 사람을 보내 의사를 전달해 왔지만 정중히 사절한 적이 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모씨가 전임 검사장실을 예방해 함께 찍은 사진을 모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내보내는 바람에 후임으로 간 자신의 잘못으로 와전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상관인 고검장을 욕되게 하기 싫어 그 당시에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 후 모씨는 자신이 사망하기 얼마전 송 재판관에게 ‘누를 끼쳐 대단히 송구스럽다'는 말을 한 언론을 통해 밝혔다고 전했다.
송 재판관은 대전 지검장 시절 참으로 수난의 연속이었다며 오랫동안 감춰 놓았던 말을 풀었다. 혈액암 환자를 비롯해 장애인 돕기행사를 하는 것과 관련, 모 정보기관에서 자신을 음해하는 엉뚱한 정보를 청와대를 비롯해 상급기관에 올렸다는 것이다.
또 때마침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가 정부대전청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기관장들에게 대전 지검에서 좋은 일을 하려고 장학재단을 설립했으니 도움을 줬으면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참석했던 청장들이 자신들의 월급에서 일률적으로 일정금액을 떼서 계좌에 입금해 줬는데 그 역시 지검장이 지위를 이용해 불순한 동기로 강제 모금했다고 허위보고를 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송 재판관이 하고 있는 봉사활동 역시 순수한 목적을 갖고 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지역정당인 자민련에서 공천을 받아 대전시장 내지는 국회의원을 하기 위한 위장술에 불과하다는 보고가 올라갔던 것이다.
그 보고서로 인해 당시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도 많은 질책을 받았다고 했다.
이밖에도 송 재판관은 이종기 변호사 법조비리 사건을 비롯해 자민련 대전시지부 사무실과 이원범 전 의원 지구당사무실 압수수색사건, 조폐공사 파업사건 등 적지않은 사건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고 회고했다.
송 재판관은 지난 12일 일부 인사들이 헌법재판소에 신행정수도특별법과 함께 추진위 활동중지 가처분 신청 헌법소원에 대해 “사업이 추진중인 점을 감안해 법안이 들어오면 추진위 활동중지 가처분을 가장 먼저 급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평의에서 “이유 없다는 기각과 이유 있다는 가처분을 내릴 수 있으며 가타부타 유보해 놓는 결정 등 세가지 방법이 있다"며 "그러나 국가 중대사인 만큼 신속히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 재판관은 또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이 헌법소원을 했는지가 중요한 만큼 충분한 검토를 미리해야 할 것"이라며 지적했다.
이와함께 송 재판관은 “적법요건을 갖췄으면 9명 전원 재판부에 사건을 회부해 평결을 내리게 된다"며 “이렇게 될 경우 적어도 1∼2주내에 처리하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심판소추에 대해 송 재판관은 “막판에 재판관들의 논쟁이 치열했으며 대다수 국회의원들이 탄핵결정을 한 사안을 두고 엇갈린 이견들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정치에 대한 뜻을 묻자 송 재판관은 “이미 90년대 초반부터 여러 곳에서 의향을 물어왔지만완곡하게 거절했다"며 “법조인으로 남겠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17대 총선전에도 자민련 김종필 총재가 여러차례 요청했지만 정치적 성향이랄까 정강정책이 달라 고려할 부분이 아니라 거절했다"며 “그러나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조그만 일이라도 기여할 수 여지는 있다"고 정치권 진입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송 재판관은 현실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관현악을 지휘하는 사람처럼 조율과 조정을 잘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권위주의 시대의 명령과 복종체제와 민주화 시대의 투사형, 반독재 투쟁형 지도자 시대는 종식됐다"고 규정했다.
송 재판관은 “한국사회의 기본구조는 서열구도가 극명하고 앞서 달리는 주자에게만 모든 특권과 특혜가 집중되는 1인 승자, 다수 패자의 게임"이라며 “한 줄의 종대형 종대열 구조 사회를 횡대열 구조 사회로 바꾸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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