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타계한 고(故) 전철환 전 한국은행 총재는 한국 경제가 역사상 최고의 위기였던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벗어나게 한 일등 공신으로 꼽힌다.
주류에 속하지 않았던 그가 DJ정부 출범과 함께 총재에 취임할 당시 한은에는 의외의 일로 받아 들이기도 했다.
진보적인 재야 경제학자였던 그는 한은총재로 금융시장과 외환시장을 동시에 안정을 꾀해 IMF 당시 200억달러를 간신히 넘던 외환보유액을 2002년 퇴임시에는 1000억달러를 훨씬 상회하게 했다.
또 한은이 실질적인 금리정책을 펼 수 있게 된 법적인 토대 위에서 한은의 통화정책 독립성 확보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을 듣는다.
국내 경제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고인은 지난 76년부터 한은 총재에 임명되기 까지 22년간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해 대전과 인연은 남다르다.
그는 실물경제를 경제학이론에 접목한 실감나는 강의로 경제학과 학생들뿐 아니라 재학생들로부터 사랑을 받아, 고인의 ‘경제학 원론’강의는 항상 수강생들로 북적이기도 했다. 경제학과 79학번인 강기형씨(45·수석산업 대표)는 “옆집 아저씨처럼 소탈했으며 항상 ‘파렴치한 짓을 하지말라’고 강조하는 등 원칙을 존중하며 정정당당하게 살아왔던 분”이라고 회고했다.
그는 80년대 중반에 처음 구입한 소형자동차를 한은총재가 된 이후에도 바꾸지 않았으며, 업무시간 이외는 자신이 손수 운전하고 다닐 정도로 사리분별이 정확했다.
그의 검소함은 대전 문화동 상아아파트에 살던 시절, 찢어진 벽지를 교체하지 않았던 일화에서 뿐 아니라 금통위원시절 해외 출장을 다녀온 후 영수증과 함께 여비잔액을 반환했던 일, 한은 총재 시절 아들결혼을 주위에 알리지 않았던 일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또 80년 군사정부가 들어서자 교수시국선언을 주도해 교단을 잠시 떠나기도 하는 등 원칙을 중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몸가짐이외도 그의 학문에 대한 전문성과 경륜도 국내 경제학에 미친 영향은 지대했다. 좌우명인‘노동신성(勞動神聖)’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잘사는 사회’와 경제적 약자를 중시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 ‘사회정의와 경제의 논리’와 ‘한국 경제론’에는 이러한 그의 신념이 그대로 녹아있기도 하다.
약 력
▲61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68년 영국 맨체스터대 대학원 수료 ▲98년 명예 경제학박사(군산대) ▲60년 고시행정과 합격(12회) ▲63∼76년 경제기획원·교통부 등 근무 ▲76∼98년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91∼93년 동 경상대학장 ▲83∼89년 금융통화운영위원 ▲87년 대덕경제연구회장 ▲94∼96년 한국경제발전학회 부회장·회장 ▲97년 미국 뉴저지 럿거스주립대 초빙교수 ▲98년~2002년 한은총재 ▲2003년 공적자금관리위원회위원장
◇저서 ‘사회정의와 경제의 논리’ ‘한국경제론’ ‘한국화폐全史’ 등
◇역서 ‘불확실성의 논리’ ‘산업과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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