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 소나무에는 개화 전에 비닐봉지가 씌워졌다. 딴꽃가루로부터 순결을 지킨 뒤 사람처럼 길일을 택해 꽃가루를 수정하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봄바람을 타고 날아드는 꽃가루는 심술궂은 총각들처럼 그 출처를 알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식물은 다종다양한 아버지들을 가진 모계중심사회(母系中心社會)라 일컬어진다. 심지어 꽃과 나무가 사랑을 하고 오르가슴을 느낀다는 견해가 있다.
예를 하나 들어 백합의 암술머리는 꽃이 성숙함에 따라 촉촉해지다가 꽃가루가 묻으면 점액이 증가해 끈끈해진다. 더 심한 경우에는 월경이나 해산 전의 그것처럼 ‘이슬’이 맺히기도 한다. 분꽃의 얼룩무늬는 곤충을 꼬이려는 유혹이라 한다. 또, 벌・나비에 의해 꽃가루받이를 하는 식물들이 목적을 이루면 꽃잎이 시들고 향기 또한 사라지는 현상도 예사롭지 않다.
무릇 자연계는 이처럼 심오하고 미묘하다. 귀찮은 송화가루도 자연상태에서 수정하기 위한 몸짓인 것이다. 황사도 참는데, 자동차가 좀 더럽혀지더라도 참아야 한다. 솔방울은 열에 쉽게 터지므로 산불이 나더라도 스스로 씨를 흩뜨려 번성하므로 소나무가 나라의 나무, 국수(國樹) 대접을 받는지 모른다.
그간 정이품송의 주치의 노릇을 맡아 온 ‘나무의사’ 강전유씨에 따르면 “나무도 아프면 아프다고 한다”는 것이다. 나무 종합병원을 운영하는 그의 진료과목은 외과(벌레먹었거나 썩은 나무를 수술), 내과(뿌리 또는 줄기에 생긴 병을 치료), 예방의학과(미리 병해충을 막음) 등을 망라하고 있다. 나무에 대한 의인화가 정겹기만 하다.
진위 여부를 가릴 것 없이, 왕의 가마를 통과시킨 나무가 셋째 품계인 정이품(正二品) 벼슬까지 얻은 일도 우리 조상들의 유장(悠長)하고 풍류스러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요, 대추나무 가지에 돌을 끼워주며 나무 시집 보내던 마음처럼 곱기는 마찬가지인 것이다.
지금 노환에 시달리는 소나무에 영양제 투입과 치료를 하는 정성, 혼례를 치르기에 앞서 좋은 가지를 골라 꽃가루를 채취하는 손길에서도 똑같은 풍모가 느껴진다.
이것은 우수한 혈통을 지키기 위한 인공수정 이상의 큰 의미를 지닌다. 그 솔방울에서 씨앗을 얻고 노쇠한 정이품송을 닮은 소나무가 태어난다고 한다. 부디 신랑 정이품송과 신부 준경릉의 꽃가루가 잘 만나 만고풍상 함께 견딜 옥동자(?)를 낳기만을 조심스레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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