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호 소설-아웃터넷
2017-11-24
주곤중은 순원의 편지를 받고 뛸 듯이 기뻐했다. 플라워텔레스코프가 드디어 완성되었고 안면도 꽃박람회에 전시 가능하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다. 즉각 사무차장 제갈벽호에게 보고가 올라갔다. 제갈벽호는 회의를 소집했다. "마탁소 부장, 결재할 안건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
2017-11-21
카엘엠(KLM), 즉 로열 더치 항공사(Royal Dutch Airlines)의 에어버스는 순원과 나리코를 싣고 오사카 공항 활주로를 힘차게 박차고 올랐다. 해외여행이 처음이라고 말하는 나리코와 함께. 나리코와 이렇게 가까이 단둘이 앉을 수 있다니, 그것도 앞으로 11..
2017-11-17
마순원은 두 통의 메일을 보냈다. 한 통은 안면도 국제꽃박람회 조직위원회 주곤중 부장, 또 하나는 한국정신과학기술원 박원순 책임연구원 앞으로였다. 대전광역시 대덕연구단지 내 한국정신과학기술원. 푸른 잔디와 호젓한 숲의 분위기를 이루고 있는 향나무와 은행나무, 플라타너스..
2017-11-14
1. 헤이세이 (平成) 0년 3월 1일 (헤이세이 연호는 아키히토가 일왕으로 즉위한 1989년 1월 8일부터 시작된다.) "기계를 완성하였다. 감성뇌파전환기와 메모리장치, 그리고 플라워텔레스코프이다. 앞으로도 몇 가지 기기가 더 필요하다. 우선 언어를 파장으로 전환하는..
2017-11-10
나리코는 다시 일본을 찾은 순원을 진심으로 반갑게 맞았다. 후루마쓰도 절제하면서도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처음으로 순원은 나리코 및 후루마쓰씨와 함께 저녁식탁에 마주 앉았다. 나리코는 어디선가 김치를 구해 상에 놓았다. 순원에 대한 배려가 가슴에 살며시 스며왔다..
2017-11-07
일본을 거쳐 집으로 돌아온 마순원은 아버지와 어머니(송원희), 그리고 누이동생(수경)의 환대를 받으며 저녁 식탁에 앉았다. 모처럼 따스한 분위기였다. 가족이었다. 순원은 아버지와 소주를 나누며 자기 생각을 이야기 했다. "세상은 넓었습니다. 공부를 더 해야겠습니다. 우..
2017-11-03
마순원이 야마노아마고우치를 다시 찾은 때는 후루가와 마을이 이제 막 겨울의 초입에 들어서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몇 개월 전 짧은 만남에 이어 다시 보게 된 나리코와 순원은 서로 마치 오랜 연인의 재회처럼 반갑고 애틋한 감정까지 느꼈다. 나리코는, "아버지는 요즘 거의..
2017-10-31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 조직위원회 사무차장 제갈벽호는 박람회 개최일이 다가 올수록 숙제가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황금 꽃의 소재를 무슨 꽃으로 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마탁소 부장의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튜라프플리네스를 황금 꽃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그것은 아직 개..
2017-10-27
배상진은 독일월드컵 심포니 실행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프랑크푸르트 심포니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이자 단장인 막스 재켄이 그동안 여러 번 위원회를 열어 초안을 작성한 월드컵심포니 영상을 감상하고 있었다. 작곡 작업은 지독히도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했었다. 우선 첫 작업은 어떤..
2017-10-24
바벨탑을 쌓는 것을 보고 신이 인간의 능력이 두려워서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각각의 언어를 바꾸었다 라는 신화는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신이 영원불멸하다면, 그리고 바벨탑을 쌓았을 때 두려워했던 신이 지금도 그 신이라면 곧 인간은 멸망될 일이었다. 왜냐하면 지금 인간은..
2017-10-20
3년 반 만의 일이었다. 비란코 상이 이제 낯가림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비란코 상이 음악을 좋아하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불과 1년여 전. 후루마쓰는 비란코 상이 좋아하는 음악의 패턴을 파악하기 위해 음악의 선율과 박자 등을 전자파로 제공하여 비란코 상이 즐겨 듣는..
2017-10-17
아마노기 신사의 깊은 가을에 비가 내린다. 때로는 은실같이 가늘게, 때로는 가는 솔바늘 같이 뾰족하게, 시시때때 변하며 방울방울 신사의 지붕위에 떨어진다. 신단 앞에 손뼉을 치며 아침 참례를 하고 있는 후루마쓰의 옷은 새벽부터 내리는 빗줄기에 서서히 젖어갔다. 여느 때..
2017-10-13
마탁소는 순원으로부터 네덜란드에서의 생활을 아주 잘 하고 있다는 몇 가지 간단히 말과 함께 한달 정도 더 머무르면서 진학하고자 하는 대학에 미국대학만이 아니라 유럽의 대학도 추가해 보겠다는 글을 받았다. 순원이 라이덴 연구소에서 흥미를 느낀 점이 있었나보다 라고 짐작할..
2017-10-10
조형준 박사는 연구실에 파묻혀 나올 줄을 몰랐다. 그가 교양과목에서나 접했던 용어들은 그를 학창시절로 돌아가 숙제에 매달렸던 괴로운 추억을 되살리곤 했다. MIT라는 지옥세계. MIT학부생들은 숙제와 공부라는 유황불의 시련을 겪어내야 졸업이 가능하다. 산타블루 연구소...
2017-10-05
펜타곤의 임마뉴엘이 프리드리히 소장을 찾아온 것은 이틀 전 방문 전화를 하고 나서였다. 해양 실험을 위해 캘리포니아 만에 띄워 놓은 요트를 타고 임마뉴엘은 혼자 찾아왔다. 햇빛의 온기가 바람 사이로 기분좋은 쾌적함을 느끼게 해주는 가을의 중엽이었다. 늘 그렇듯이 임마뉴..
2017-10-03
마순원이 제프를 방문했을 때 그는 해양연구실 모니터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시윕스 (SeaWiFS: Sea-viewing Wide Field-of-view Sensor)' 광역해양측정위성이었다. 제프는 순원을 보자 모니터를 얼른 껐다. 순원에게 제프는 늘 새로운..
2017-09-07
[최민호 소설] 아웃터넷(OUTERNET) 28. 그들의 불가사의
제프는 지나가면서 가볍게 순원에게 물었다. 천진하게 웃으면서 던지는 물음들은 비록 가벼웠지만, 듣고 나서 생각해보면 순원에게는 화두처럼 무겁게 다가와 그 의미를 되새겨보곤 했다.
“순원, 식물은 물을..
2017-09-05
보잉기는 스키폴 공항에 착륙하기 위해 암스테르담 상공에서 몇 번을 선회했다. 순원은 비행기의 창문 밖으로 네덜란드의 땅을 내다보았다.
직사각형의 반듯 반듯 구획 지어진 밭과 들.
밭과 밭 사이에는 운하가 바둑판같은 모양으로 직각으로 흐르며 밭의 경계가 되고 있었다...
2017-09-01
동이 텄다.
순원은 후루마쓰 부녀의 집에 3일 정도 머물렀다. 별 일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후루마쓰가 하루 더, 하루 더 하면서 오히려 순원을 잡아 둔 때문이었다.
드디어 순원이 네덜란드로 떠나는 날.
아침 일찍 나리코가 순원의 방에 들어섰다.
그..
2017-08-29
아침을 일찍 먹고 난 후, 순원은 별채가 있는 후루마쓰의 연구실로 걸음을 옮겼다.
며칠 이곳에 있으면서 여러 가지 호기심을 해소하고 싶었다.
나리코와의 시간도 가지면서…….
그러자면 후루마쓰에게 직접 부딪혀 허락을 받는 것 밖에 없다.
부딪쳐 보는 거다. 이런..
2017-08-25
[최민호 소설] 아웃터넷(OUTERNET) 24.후루마쓰의 신목
이제 막 청년기에 들어선 젊은 남녀들에게 자존심과 열정이란, 한 숲에 사는 사자와 토끼 같아서 번갈아 나타날 뿐 동시에 나타나는 법은 없다.
상대방이 맘에 들어도 사자와 같은 자존심이 고백을 허락지 않..
2017-08-22
[최민호 소설] 아웃터넷(OUTERNET) 23. 후루마쓰의 연구실
나리코가 방문을 두드리기 이전부터 주곤중과 마순원은 이미 깨어 있었다.
후루마쓰의 집 분위기는 알 수 없는 신비감이랄까 수수께끼를 안고 있는 분위기여서 사실 깊은 잠에 빠질 수는 없었던 것이다.&..
2017-08-18
사무차장 주재 회의가 끝나고 마탁소가 주곤중을 무뚝뚝하게 불러 세웠다. 차나 한잔 하자는 것이었다.
마탁소는 52세, 주곤중은 42세.
당연히 사석에서는 형님같이 대하는 선배지만 마탁소가 좀 까다롭다고 할까 괴팍한 구석이 있어서 그리 친하게 지내지는 못하고 있는..
2017-08-15
[최민호 소설] 아웃터넷(OUTERNET) 21. 부녀는 말이 없고
후루마쓰의 집은 야마노아마고우치 산의 기슭에 넉넉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대부분의 일본 집이 앞마당을 정원으로 꾸며져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후루마쓰의 집은 이층 목조 집으로 앞마당이 없고 후정이..
2017-08-11
[최민호 소설] 아웃터넷(OUTERNET) 20. 마탁소의 부탁
막스 쉬뢰더는 한국의 마탁소로부터 온 편지를 열어보았다.
편지는 영어로 씌어 있었다.
‘… 튜라플리네스의 유전자 합성이 어느 정도 진전이 되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지난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