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호 소설-아웃터넷
2018-02-20
상상이란 얼마나 자유로운 것인가. 꿈이란 얼마나 즐거운 것인가. 워싱톤 D.C.의 조지타운 대학에 객원연구원으로 첫발을 디뎠을 때, 앞으로의 1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의 답을 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가장 의미있는 1년을 보내기 위해 여러 가지 계획을 구상해 보았다...
2018-02-16
"형. 형 말대로 프리드리히 소장은 천벌을 받았어. 쓰나미로 연구소가 덮쳐져서 연구원 중에 3분의 1이 사망했다잖아. 연구소의 모든 실적과 자료는 바다 속으로 실종되고 말이야." "그러게 말이다. 그런 걸 말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는데.. 마음이 쓰라린다." "그렇다 하..
2018-02-13
대통령이 단상의자에 앉았다. 인터넷으로 국적을 초월한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의 참여자들이 마구 손가락을 놀리며 클릭하는 숫자가 계속 넘버링되고 있었다. 그와 비례하여 인터넷 대형 LCD화면에는 물감이 번지듯이 꽃과 화원이 수놓아졌다. 장관이었다. 조정재 자문역의 아이디어..
2018-02-09
"정말 후루마쓰 선생님은 열반에 도달하신 걸까요?" 나리코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이 처음이라는 나리코. 한국어를 그렇게 능숙하게 하면서 처음 밟아본다는 한국. 나리코는 서울에서 안면도로 향하는 길에 창밖의 풍경에 시종 눈을 못 떼었다. 그리고 드디어 안면도에..
2018-02-05
후루마쓰 메모는 읽기가 보통 난해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사용한 언어는 정연한 문법적인 것도 아니었고, 단어도 어느 한나라의 말만 사용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리코의 도움 없이 후루마쓰 노트를 해득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후루마쓰의 일기 사본을 가지..
2018-02-02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의 준비는 이제 모두 끝났다. 대통령과 세계 각국의 원예 관련 전문가, 주한 각국 대사내외, 꽃박람회의 공인기구인 AIPH 회장을 비롯한 회원국의 임원들, 그리고 국내외 귀빈들과 보도진이 참석하고 지켜보는 가운데 이제 화려한 개막을 하게 될 것이다...
2018-01-30
어머니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어머니의 아쉬움을 남기고 그러나 순원은 나리코와 일본으로 향하였다. 나리코를 혼자 보낼 수는 없을 것 같아서였다. 비행기 안에서 나리코는 별 말이 없었다. 내내 잠만 잤다. 순원도 마찬가지였다. 광풍이 몰고 간 한 차례의 악몽이었다. 제프는..
2018-01-26
푈더는 딜레마에 빠지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온 마순원은 조사를 해보았자 아는 것이 없었다. 고의로 범행을 부인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수사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더욱이 한국 대사관에서는 연일 순원에 대한 조사를 조속히 끝내고 신병을 인도하라는 압력이 계속되..
2018-01-23
예의바르게 송원희를 맞이한 나리코는 그렇지만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무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나리코도 의아하기만 했다. 더욱이 아들을 타국에서 체포당한 저 어머니의 심정이야 무슨 말로 다 할 수 있으랴. 나리코는 어제도 아버지 후루마쓰에게 이메일을 넣었지만, 어..
2018-01-19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아들을 보러 마탁소와 함께 라이덴 연구소를 찾은 송원희는 순원의 얼굴을 보자 그제서야 안심이 된다는 듯 한숨을 내쉬면서 가슴을 쓸어 안았다. 원희는 그때 나리코를 처음 보았다. 꿈에 보았던 그 이미지의 아가씨. 바로 그 아가씨였나 싶었다. 꿈을..
2018-01-16
낙 화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2018-01-12
코발트 색 파란 바다가 보이는 샌디에이고의 산타블루 연구소. 프리드리히 소장이 실종된 후 연구소는 시들어 버린 꽃같이 활기를 잃어갔다. 조형준 박사도 어디론가 떠나 버렸다. 연구소에는 니오스 호수에 관한 언급은 금기중의 금기가 된지 이미 오래다. 모두들 시윕스(SeaW..
2018-01-09
나리코는 안부 편지를 보내도 답장이 없는 아버지가 퍽도 이상했지만, 전화를 걸어 물어 볼 수도 없는 형편이어서 이번에는 긴 편지를 보냈다. 순원도 비슷한 내용의 편지를 한국으로 보냈다. 네덜란드의 겨울도 깊어갔다. 곧 새해를 맞이하게 된다. 한해도 저물어가던 12월 어..
2018-01-05
산중의 겨울은 세속보다 더 빠르고 깊다. 산에 내리면, 내리는 것은 눈이 아니고 빛이었다. 내리면서 얼어서 반짝반짝 빛나는 빛 조각들은 푸르고 푸른 소나무 이파리 위에 달칵 걸리고 다시 차갈색의 땅으로 떨어져 서서히 사라진다. 무성한 소나무에 빛들이 사각사각 쌓인다...
2018-01-02
미 국방성 펜타곤의 임마뉴엘 소령은 출근하자마자 커피를 한 잔 마시며 보고서를 읽기 시작했다. 엔디코프 요원이 프리드리히 박사에 관해 쓴 보고서였다. 몇 개월에 걸쳐 작성된 보고였다. 보고서에는 프리드리히 박사의 산타블루 연구소에서의 연구 경위와 내용, 그리고 그의 사..
2017-12-29
후루마쓰 별실의 연구실에 지진이 났다. 새벽 참례를 마치고 돌아온 후루마쓰에게 식물들은 일제히 아우성을 치며 파장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었다. 마치 강진이 발생하였을 때, 지진계가 그려내는 흉포한 그래프와 같이 100여개의 플라워텔레스코우프에서 넓은 파장의 웨이브가 계속..
2017-12-26
딸 수경이도 없는 토요일 저녁 마탁소는 실로 오래간만에 아내 송원희와 단 둘이 저녁식탁에 앉았다. 송원희는 소주를 와인 잔에 따라주었다. 그리고 자기 잔에는 백포도주를 부었다. 분위기를 살리고 싶어 한다는 것을 마탁소는 알아차렸다. "오늘 아침에도 내가 숙소를 나오면서..
2017-12-22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 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 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
2017-12-19
순원이 네덜란드의 쉬뢰더씨에게 한국의 기(氣) 소개한 편지는 즉각 적극적인 호응을 받았다. 그들은 모두 네덜란드에서 모두 함께 운명의 합일을 기다리며 각자의 길을 떠났다. 일본에서 출발한 마순원과 나리코, 그리고 한국에서 떠난 한국정신과학기술원의 방휘곤 원장과 박원순..
2017-12-15
대한항공(KAL) 1등석의 등받이에 몸을 뉘이며 배상진은 꿈만 같았다. 아내 엘리자베스와 함께 한국을 여행한 것이 몇 년 만인가. 월드컵 개막식 때 연주되는 월드컵심포니로 인해 배상진은 일약 한국뿐 아니라 FIFA의 VIP로 부상했다. 이번 여행은 한국의 유명 잡지사의..
2017-12-12
"형, 우리가 무슨 짓을 한거지? 나는 아직도 다리가 후둘후둘 떨려." "말도 마라. 나는 지금까지 오줌도 안 나온다." "형 나 무섭다." "그래. 너 자리를 옮겨라. 지금 있는 곳이 샌디에이고니까 LA가까운 파사데나의 칼텍(캘리포니아 공과대학)으로 옮겨라. 포스트닥..
2017-12-08
"그렇습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니오스 호수의 참사와 산타블루 연구소는 확실히 모종의 커넥션이 있습니다. 자료를 보십시오. 최근 6개월간 니오스 호수의 수면 상태에 관한 보고서가 일지 형태로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현구와 형준이 임마뉴엘에게 기술하는 내용은 자신..
2017-12-05
3시간의 시차. 샌디에이고. 토요일 오전 프리드리히는 산타블루에서 25마일 떨어진 레드포드 고급 주택가에 작년에 새로 구입한 저택에서 임마뉴엘의 전화를 받자, 자신의 애마 벤츠 960을 게라지에서 꺼내 연구소로 향했다.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2017-12-01
임마뉴엘 칼 존. 펜타곤 해군성 소령. 형준과 현구가 보스톤과 워싱톤의 중간 지점인 델라웨어의 어느 한적한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만난 사람이었다. "파일은 어딨소?" "우리의 안전이 보장되는 곳에." 현구를 노려보던 청자색 눈이 말했다. "어디까지 알고 있소?" "내가..
2017-11-28
보스톤. 미국 북동부의 작은 도시. 메사추세츠 주의 주도. 세계에서 보스톤만큼 인종문제에 너그러운 주민들은 없을 것이다. 보스톤에 사는 사람들은 성별은 말할 것도 없고, 인종이나 국적을 떠나 보스톤에 거주하는 주민들에 대해 차별은 커녕 외경심마저 가지고 있다. 하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