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필톡
2017-11-24
"여러분~ 부~자 되세요." IMF 후유증이 채 가시기 전인 2001년 말, 카드광고의 이 카피가 큰 화제였다. 돈이란 무엇인가. 우리 인생사에서 돈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금은 언론에 도통 행보를 드러내지 않지만, 주식 투자 전문..
2017-08-24
나는 그 남자의 눈빛을 잊지 못한다. 내가 무심코 바라보았을 때 나의 시선과 마주친 낯선 이방인의 겁먹은 듯한 커다란 눈. 까무잡잡한 피부의 의기소침한 표정과 남루한 옷차림. 휴일 한 낮의 지하철은 승객이 많지 않아 자리가 많이 비었음에도 그 남자는 앉지 않았다...
2017-07-06
소유란 무엇인가. 우리에게 소유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상가 카를 마르크스는 “사치야말로 빈곤과 마찬가지로 큰 악덕이며, 우리는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풍요롭게 존재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찍이 선지자들도 소유의 위험성에..
2017-06-08
어제도 욱, 오늘도 욱, 내일도 욱? 나는 욱쟁이다. 걸핏하면 욱하는 성질 때문에 인생이 고달프다. 이건 아니잖아 싶으면 순간적으로 피가 머리로 쏠리면서 격하게 확 내질러버려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치고 만다. 폼페이를 순식간에 잿더미로 파묻은 베수비오 화산폭발..
2017-05-11
‘화양연화(花樣年華)-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검붉은 장미가 막 피어나는 5월의 이 봄날을 사는 사람들은 가장 아름다운 인생을 맞고 있을까. 내 인생의 화양연화는 언제였나. 냇 킹 콜의 감미롭고 나른한 ‘Quisas’가 아직도 귓전에 맴도는 영화 ‘화..
2017-04-13
언니 잘 지내? 그러고 보니 언니한테 처음으로 편지를 쓰네. 봄비가 오고 있어. 언니와 작별하던 날도 오늘처럼 비가 내렸지. 쥐똥나무엔 막 꽃이 피기 시작하고 민들레꽃이 대지를 노랗게 물들이던 봄이었는데, 그 날은 하루종일 줄기차게 비를 뿌려댔어. 핏기가 가신 파리한..
2017-03-15
싹둑싹둑싹둑. 20여년 전, 서른을 막 넘기려는 12월 첫눈이 펄펄 날리는 어느 날 난 삭발을 했다. 미용실 주인조차 화들짝 놀랄 정도로 짧은 머리였다. 일명 ‘밤송이 머리’. 그때 난 앞날에 대해 손에 잡히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다 직장생활에 대한 염증이 범벅이 돼..
2017-01-11
‘아니되옵니다’? 어림없는 소리야 이건. TV에 나오는 역사드라마를 보면 조정에서 대신관료들이 왕 앞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즈언하! 아니되옵니다아, 통촉하여 주시옵소서어~” 하는 장면이 나오잖아. 누울 자리를 보고 뻗으랬다고. 그것도 사람 봐가면서 해야지, 당신..
2016-12-14
나는 왜 여행을 떠나는가. 그것은 여행 자체를 위한, 여행의 즐거움을 위한 여행이다. 달리 말하면 여행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묻는 과정이다. 속박없는 삶! 그것이야말로 내가 꿈꾸는 목표 아닌가. 그래서 스스로 자유를 얻기 위해 여행을 하고,..
2016-11-17
고립무원(孤立無援). ‘고립되어 구원받을 데가 없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님의 상황이 이런 거겠죠.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요. 당신이 느끼는 이 처참한 감정은 처음이 아니었을 겁니다. 1974년 8.15 광복절 행사에서 어머니가 문세광의 총탄에 돌아가시고 79년 심..
2016-10-27
갑자기 여자가 밑도끝도 없이 남자의 가슴을 더듬는다. 여자의 표정은 진지하고 심각하다. 그녀의 손은 남자의 가슴을 탐색하듯 아주 차지게 주무른다. 남자의 당혹스러워 하는 표정엔 아랑곳 않고 마치 제 가슴인 양 떡주무르 듯 하는 게 예사 손길이 아니다. “기자님 가슴..
2016-09-01
패트릭 스웨이지와 데미 무어 주연의 영화 ‘사랑과 영혼’은 영혼의 불멸을 논할 때 아주 적절한 텍스트다. 감미로운 노래 ‘언체인드 멜로디’가 흐르는 안락한 가정이라는 공간에서 불행이란 단어는 찾아 볼 수 없는 사랑이 충만한 신혼부부에게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은 당혹스럽..
2016-08-11
한여름 곰탕 끓듯 푹푹 찐다.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지열은 철 지난 아지랑이를 마구 피워 올린다. 혀를 한 자나 빼문 개마냥 식전부터 늘어져 있다. 열기로 가득찬 비닐봉지 속에 머리를 집어넣은 것처럼 숨쉬기조차 힘들다.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이웃 할머니가 “여지껏 살..
2016-07-28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몇 년 전부터 죄책감 비슷한 게 생기기 시작했다. 오래된 일이건만 그때의 기억은 트라우마가 되어 시간이 지날수록 새록새록 떠올라 먹을 수 없게 됐다. 하지만 그것이 몸에 좋다는 걸 경험한 적이 있다.
객지에 나와 직장생활 하면서 혼자..
2016-07-06
“1인분은 안 팔아요.” 내가 사는 동네(용두동)엔 오래된 시장이 있다. 예전엔 제법 크고 번성했으나 재개발로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많이 위축됐다. 그래도 아직은 시장으로서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어 있을 만한 건 다 있다. 철물점, 떡집, 생선가게, 열쇠집, 한의원, 계..
2016-06-15
초등학교 5학년때 신체검사를 받는 날이었다. 1년에 한번씩 키, 몸무게, 앉은키, 가슴둘레 등 기초발달상황을 학교 전체적으로 교실에서 검사하는 행사였다. 남자 아이들은 웃통을 벗고 여자아이들은 메리야스만 입고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순서대로 교실을 이동해가며 체크하는..
2016-05-26
내 오랜 친구는 종종 얘기한다. 그때 네가 차려준 밥상을 잊지 못한다고, 봄 햇살 잘 드는 조그만 방에서 너랑 마주앉아 밥먹던 그날이 그립다고. 15년 전이었을게다. 서울에서 직장다니는 친구가 대전에 온다길래 밥 한끼 해줘야겠다 싶어서 집으로 초대했다. 아욱국, 돌나..
2016-05-05
‘학원에 가고 싶지 않을 땐/이렇게/엄마를 씹어먹어/삶아 먹고 구워 먹어/눈깔을 파먹어/이빨을 다 뽑아 버려/머리채를 쥐어뜯어/살코기로 만들어 떠먹어/눈물을 흘리면 핥아 먹어/심장은 맨 마지막에 먹어/가장 고통스럽게’
작년 이맘때 논란이 됐던 동시 ‘학원 가기 싫..
2016-04-21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노력하며,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여 국회의원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의원님들, 이게 뭔지 아시죠? 네, ‘국회의원 선서’입니다. 저 역시..
2016-04-07
몇 년 전 초여름에 속초에 갔을 때였다. 저녁 먹을 곳을 찾아 헤매다가 간신히 눈에 띄는 허름한 식당에 들어갔다. 손님은 나 혼자였다. 그때 된장찌개를 시켜 먹었는지 육개장을 먹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뜻밖의 가슴 훈훈한 만남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늦은 저녁이라..
2016-03-24
『충청도의 힘』이란 책이 있다. 개나리꽃 색깔의 표지가 눈에 확 띄는, 내게는 밥같은 책이다. 한번 읽고 책꽂이로 직행하는 다른 책과는 달리 『충청도의 힘』은 자기전에 이불 속에서 꼬물거리며 자주 펼쳐드는 책이다. 족쇄같은 ‘밥벌이의 지겨움’에 저당잡혀 전쟁같은 하루..
2016-03-10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 한여름 오후의 나른함에 취해 있던 고3 국어시간. 국어 선생님은 갑자기 윤동주의 ‘서시’를 열정적으로 읊더니 책상을 탕 치며 일갈했다. 윤동주는 20을 갓 넘은 나이에 이런..
2016-02-25
뼈가 앙상한 11세 소녀가 동네 슈퍼마켓에서 빵을 훔쳐 먹다, 아버지가 초등생 아들을 폭행해 사망하자 시신을 훼손해 냉장고에 보관하다, 목사 부부가 중학생 딸을 때려 숨지게 하고 미라 상태로 집에 방치하다, 엄마에게 맞아 죽은 7살 딸이 백골상태로 발견되다, 10개월..
2016-02-11
수치와 모멸감이라고 했다. 경영진의 억지와 치졸함에 기가 차고 분노가 치민다고 했다. 말도 안되는 구실을 만들어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는 친구는 몸을 부르르 떨며 분을 삭일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화장실도 맘대로 갈 수 없어 방광염까지 걸릴 뻔한 열악한 근무조건에서 뼈..
2016-01-28
목욕탕 가서 목욕하는 걸 꽤 좋아한다. 더구나 추운 겨울 뽀얀 김이 피어 오르는 따뜻한 탕 속에 몸을 담갔을 때의 기분은 뭐라 말할수 없이 짜릿하다. 여행가서도 찜질방에서 자곤 한다. 하루종일 걷고 또 걷느라 녹초가 된 몸을 뜨거운 물에 담그고 얼굴에 땀이 맺혀 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