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2008-07-08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는데 개 한 마리가 주인을 말끄러미 쳐다본다. 개의 표정이 하도 진지해 “저 개가 이발기술 배우려나 보죠?” 하고 거들었다. 서당개 3년에 풍월 읊조린다는 말이 생각났던가 보다.
“아, 제가 간혹 면도하다 실수로 손님 귀를 베거든요.” 손님이 흠..
2008-07-03
서울 토박이들은 어디 갔다 오면 숭례문과 세종로에 선 충무공 동상을 둘러봐야 안심이 된다고들 한다. 그 서울의 대문은 어이없게 불탔고 호국충정의 이순신 장군 아래로 시위대 깃발이 펄럭인다. 한때는 서울역에서 내려, 숭례문을 지나 광화문까지 걸어가 장군과 마주해야 비로소..
2008-07-02
사랑에 빠지면 착해진다. 토르 뇌레트라네르스는 “남을 돕고 너그러워지는 건 그러한 행동이 섹시한 것으로 믿기 때문”이라 한다. 섹시하려면 상냥하고 너그러워지라는 말씀. 착한 사람들은 누군가와, 무언가와 사랑에 빠진 사람들 아니겠는가.
보령에서 서해안 주민 돕기 공..
2008-06-26
오류동 175-3번지. 중도일보 새 사옥으로 오늘 이전하면서 거의 무소유라는 생각으로 이삿짐을 꾸렸다. “제라늄 화분, 지붕에 비둘기가 있는 분홍 벽돌집”보다 “몇억원짜리 집” 해야 이해가 빠른 어린 왕자의 어른들. 그런 식 표현으로 1800만원어치는 버렸다. 버릴 책..
2008-06-25
제자백가는 전국시대에 활약한 모든 선생[諸子]들의 수많은 학파를 총칭한다. 유가, 도가, 음양가, 법가, 명가, 묵가, 종횡가, 잡가, 농가…. 여기에 소설가가 부록으로 덧붙여져 있었다. 말석에 낀 소설가는 놀랍게도 2000년 넘도록 살아 있다. ‘쇠고기 고시`를 둘러..
2008-06-19
사실이 아닌데 사실인 것, 모순과 일리가 공존하는 그것은 역설(逆說)이다. 안 될 일을 무리하는 억지와 달리, 모순으로 보이나 모순이 아닌 것이 우리 정치판에도 있다. 오뉴월 과수밭을 점령한 매미떼처럼 맴맴거리다 일시 잠복한 ‘형님 뉴스`는 그 전형이다.
장본인은..
2008-06-18
세계를 움직인 12권에 최초의 런던의 침침한 술집에서 만들어진 ‘축구협회 규정집`을 선정한 멜빈 브래그에 공감한다. A4 용지 한 장 분량도 안 되는 규정집이 민주주의 시발인 ‘마그나 카르타`, 자본주의를 연 ‘국부론`, 세계관을 뒤바꾼 ‘종의 기원`과 어깨를 견준 힘..
2008-06-12
10대들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늙은이`의 나이를 적게 했더니 평균 37살인 것도 상대성 때문이다. 평균수명 36세인 짐바브웨에서는 30살 넘으면 완전히 노인 취급을 당한다. 수능 준비로 정신없을 16살이 한때 우리에겐 무르익은 이팔청춘이었고 필자 나이엔 원로 행세를 했..
2008-06-11
포항 과메기, 강경 젓갈, 영덕 대게, 인제 황태가 유명하듯이 홍어 하면 목포와 흑산도다. 본고장에서 맛보는 홍어의 지리고 톡 쏘는 싸한 맛은 세포가 곧추설 듯하다. 서울이나 대전에서 먹는 홍어회는 홍어무침에 가깝다 할 정도로 강력하다.
홍어는 처음 먹기에 엄두가..
2008-06-05
강아지 키우는 사람들이 꼭 붙이는 말이 “자식처럼 속끓이지 않아서 얼마나 좋으냐”는 것이다. 진담 같은 농담이다. 어린 동물이 귀여운 이유는 인간이 자기 자식의 모습과 소리에 적절히 반응하도록 진화된 탓이라고도 한다.(콘래드 로렌츠) 동물 애호를 부성애와 모성애의 다른..
2008-06-04
사진 참 잘 나왔다. 실물에 가깝다는 말이 아니다. 생긴 얼굴보다 사진이 잘 받아 ‘포토제닉하게’ 나왔다는 말이다. 포커스고 앵글이고 간에 자기 눈이 질끈 감긴 단체사진을 보고 잘 나왔다는 사람 없다. 반면에 자기 얼굴만 잘 나오면 사진 잘 나왔다고 한다. 자신의 관점..
2008-05-29
뽕나무는 버릴 게 없다. 잎(상엽), 열매(상심), 가지(상지), 뿌리껍질(상근백피)까지. 뽕나무재(상시회), 뽕나무버섯(상이), 뽕나무이끼(상화, 뽕나무겨우살이(상상기생), 뽕나무좀벌레(상두충)까지도. 그래서 신목(神木)이라 불린 그 뽕나무가 부활하고 있다. ‘상전벽..
2008-05-28
패스트 세컨드(Fast Second). 콘스탄티노스 마르키데스는 ‘재빠른 2등 전략`을 주창한다. 최초의 시장 진입자가 되지 말고 적절한 시점에 시장을 통합하라는 것. 적절한 시점이 최초인 경우는 드물다. 혁신은 시장을 창조하나 완성하지 못한다는 것으로 블루오션 전략과..
2008-05-22
“의원이 환자의 상처를 빨아 그 고름을 입에 담는 것은 환자에게 혈육의 정을 느껴서가 아니라 이익을 보고 하는 일이다.” 말로만 지방을 챙기는 위정자를 보며 한비자(韓非子)를 떠올린다. 서울과 지방은 한 켤레 신발 같아야 한다. 지방은 밑창이 아니다. 어질(語質)이 중..
2008-05-21
쌍화점에 쌍화 사라 가고신댄/ 휘휘(回回)아비 내 손모글 주여이다./ 이 말 싸미 이 점 밧긔 나명들명/ 다로러 거디러 죠고맛감 삿기광대 네 마리라 호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긔 자리에 나도 자라 가리라/ 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
2008-05-15
The entire carcass of cattle not inspected and passed for human consumption is also prohibited unless the cattle are less than 30 months of age, or th..
2008-05-14
·자기의 시선을 갖게 된 응시자에게 눈은 인간적인 힘을 투사하는 기관이다.
·내가 바라보는 모든 것은 나를 바라본다.
·세계는 보이고 싶어하고 항상 눈을 뜬 채 적극적인 호기심 속에서 산다.
―가스통 바슐라르 『몽상의 시학』
각막 이식 수술 얘기가 아니다. 그러..
2008-05-08
세월에 변해버린 날 보면 실망할까봐
오늘도 나는 설레(이)는 맘으로
화장을 다시 고치곤 해
―왁스 「화장을 고치고」 (최준영 작사)
양귀비, 초선, 왕소군, 서시. 미색으로 천하를 뒤흔든 그녀들의 이름은 요리 속에도 남아 있다. 미꾸라지 두부가 ‘초선 두부’, 복..
2008-05-07
바람이 분다→모래가 날린다→모래가 눈에 들어간다→장님이 많아진다→(장님에겐) 고양이 가죽으로 만든 샤미센(三美線)이라는 악기가 필요하다→고양이가 줄어든다→쥐가 늘어난다→쥐가 나무통을 갉아먹는다→통 주문량이 많아진다→통 장수가 돈을 번다.
‘바람이 불면 통 장수가..
2008-05-01
보리밭. 물결치는 그 초록바다, 바람의 깊이를 가늠하고 싶은 욕구가 일렁인다. 음양이 조화로운 5월. 고창 학원농장 청보리축제(∼12일)에라도 한번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에 두어 뼘 남짓 되는 보리밭의 추억을 더듬는다. 쑥쑥 자라라, 빛나는 보리밭아.
미국화를 세계화..
2008-04-30
대략, 전 세계 인구의 3할은 포크와 나이프를, 3할은 젓가락을 쓰고 4할은 맨손으로 밥을 먹는다. 유럽 중세 상류사회에서도 숟가락(스푼)과 손가락 식사가 식탁예절이었고 포크의 일상화는 16세기에 이르러서다.…
숟가락은 중국과 일본에서는 보조 용구지만 우리에겐 각별..
2008-04-24
요새 젊은이들은 사치를 너무 좋아해. 버릇이 없고 권위를 무시해. 어른을 공경하지 않고 교훈 대신 잡담을 좋아하지. 젊은이들은 또 부모 말을 듣지 않고, 손님 앞에서 떠들고,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고, 선생 앞에서 횡포를 부리거든. (소크라테스)
성폭행범에 대한 솔직..
2008-04-23
소를 해체하는 모습을 보고 입을 쩍 벌리는 문혜군에게 포정은 강의한다. 능숙한 백정이 매년 한 번씩 칼을 바꾸는 것은 뼈를 ‘자르기’ 때문이라고, 보통 백정이 매달 한 번씩 칼을 바꾸는 것은 뼈를 ‘쪼개기’ 때문이라고. 포정의 칼은 19년 동안 수천 마리의 소를 잡고..
2008-04-17
지금 우주에 있는 이소연씨는 하루 16번 해 뜨는 것을 본다. 우주정거장이 90분마다 지구를 한 바퀴 돌기 때문.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명제가 그곳에선 더 이상 ‘참’이 아니며 경험이 낳은 귀납적 명제에 불과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많은 일출을 보는 눈은..
2008-04-16
자신의 지성이 신석기 시대의 지성이라고 말한 레비스트로스. 오늘의 인류는 신석기의 과학 전통을 계승해서 진정성을 유지한 채 문명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는 ‘신석기 시대의 역설’. 오늘 아침, 그 역설이 살아났다.
전한(前漢)의 유안이 빈객들과 쓴 『회남자(淮南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