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강제로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나라 잃은 슬픔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학자 황현의 ‘매천야록’에 보면 엄격한 가정의 윤리도덕을 어그러뜨렸을 때 그 아비가 눈물을 머금고 자식에게 비밀리에 내렸던 도모지(塗貌紙)라는 개인형벌이 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도모지 사형이란 글자 그대로 얼굴에 종이를 바른다는 뜻에서 생긴 말이다. 용서받을 수 없는 부도덕한 짓을 자식이 저질렀을 경우에 아버지는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 자식을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 놓고, 물을 뿜은 조선종이, 즉 창호지를 얼굴에 몇 겹이고 착착 발라놓으면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말도 못하고, 종이에 물기가 말라 감에 따라 서서히 숨조차 쉬지 못하게 되어 죽게 하는 끔찍한 형벌이었다.
이처럼 보이지도 들리지도 못하게 하는 도모지형(刑)에서 비롯하였는데, 오늘날 우리가 아무리 해도 전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는 의미로 도모지>도무지라는 말을 쓰게 된 것이다.
송백헌 충남대 국문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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