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화 행촌학원 이사장님, 권희동 교장 선생님, 졸업생 등 200여 명이 저를 동산고 총동문회장으로 추대해주셔서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김기남 전 회장님의 뒤를 이어 대전동산고 총동문회를 잘 이끌고 가겠습니다.
저희 대전동산고는 1979년 개교 이래 1만6000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가운데 각계에서 활약하는 인재를 배출해 지역의 대표 사학으로 인정받고 있는 학교입니다.
저는 동산고 4기입니다. 제 모교인 외국어대의 대전충청 동문회장에 이어 이번에 동산고 총동문회 회장을 맡게 되어 어깨가 무겁습니다. 2년 임기 동안 전력투구해 많은 동문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체육대회와 산악회 등 각종 행사 참여를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독려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장학기금을 만들어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잘 전달할 것입니다. 우리 동문들 중에서 명사들을 초청해 동문 후배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시키고, 동문들과 재학생들의 유대를 강화할 생각입니다. 동문회 활동이 활발해지고 활성화될 것입니다. 국적은 바꿔도 학적은 못바꾼다는 말이 있지요. 동문회에 대한 무한 애정을 갖고 열심히 뛰겠습니다.
▲저는 66년 부여군 세도면 청송리에서 농협 우체국에 다니시고 이후에 신문지국을 하셨던 아버님과 어머님의 2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저도 아버님을 도와 새벽에 신문 배달을 했지요.
시골 가난한 집에서 학비 안 들고 갈 수 있는 학교로 육사를 가려고 했는데 시력이 나빠 포기하고 동네에 1년 선배 한양대 법대 다니던 선배로부터 ‘로마시대 이후에 법이 필요 없는 시대는 없었다’는 말을 듣고 외국어대 다니던 사촌 형 영향으로 외국어대에 진학해 졸업 후 신림동 고시원에 들어가 작심하고 공부해 96년 사법고시에 합격했습니다. 저희 동네에서 풍향 조 씨 성을 가진 66년 생 네 명이 모두 사법고시에 합격했습니다.
▲저는 동산고와 한국외국어대 법대를 졸업한 뒤 사법시험(38회) 합격 후 연수원(28기)을 거쳐 검사복을 입었습니다. 대전과 원주, 인천, 수원지검 등지에서 주로 근무하다 2007년 변호사로 개업했습니다. 검사 재직시절 강성 검사로 이름났던 저는 판사보다 역동적이고 큰 사건 사고 수사를 하고 싶어 검사를 지망했습니다. 그때 제 생각으로는 판사는 주어진 밥상에서 맛있는 밥을 먹는 사람이고, 검사는 밥상을 차리는 사람이라 훨씬 더 역동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조폭 담당이셨던 조승식 지도교수님 영향을 많이 받아 조폭 전담 검사가 되었습니다. 경직된 관료 문화에 거부감을 느끼고 김앤장이나 태평양 법무법인으로 떠나는 검사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검사 시절 기억 나는 것은 인천지방검찰청 근무 시절인데 3500만 원 사기 사건으로 구속돼 온 피의자가 위암 수술하고 실밥도 못 푼 상태로 구속돼 왔더군요. 영장실질심사 때 판사에게 말을 못하고 온 겁니다. 그래서 제가 풀어줬죠. 나중에 잘 소명하고 고소인과 잘 협의했습니다.
두 번째로 기억나는 사건은 수원지검 강력부에 있을 때인데 아들이 신부전환자라 콩팥 기능이 망가져 투석하지 않으면 안되는 피의자가 구속돼 왔습니다. 그래서 이 아버지가 아들에게 신장이식을 할 수 있도록 풀어줬습니다. 마약 전과 5범을 풀어주기가 쉽지 않은 일인데 마약 중독 상담을 꾸준히 받는 조건으로 구속 유예를 시켜주고 아들에게 신장이식 수술을 해주도록 했습니다.
검사 시절 히로뽕 주임검사와 발바리 주임검사로서 115건을 처리했습니다. 택시 기사가 주거 침입해 성폭력을 저지른 사건인데 무기징역을 받고 지금도 복역 중입니다. 그 뒤로 유사 발바리 사건도 많았지요. 모범검사상과 검찰총장상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검사는 2년마다 임지를 옮겨야 됩니다. 그래서 고민고민하다가 고향에 온 김에 변호사 개업을 하게 됐습니다. 마흔 두 살 되던 2007년에 개업했으니 올해로 16년째입니다. ‘조수연 법률사무소’로 시작해 ‘법무법인 청리’를 거쳐 사무실을 이전하면서 대전의 최고를 뜻하는 ‘법률사무소 프라임 한밭’으로 새출발했습니다.
▲아들은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서든캘리포니아대학(USC) 컴퓨터과를 졸업할 예정입니다. 딸은 둔산여고 졸업 후 서울대 의대 본과 1학년입니다. 장인 어른은 실크 속옷 회사인 한국 와코르 회사 사장을 12년간 역임하셨습니다. 제 사무실의 한문 현판인 ‘誠實辯論’(성실변론)은 제 아버님이 써주신 글씨입니다. 제 좌우명이자 저희 집 가훈은 ‘무한불성(無汗不成)’입니다. 땀 흘리지 않고는 어떤 일이든 이룰 수 없다는 뜻이지요. 땀 흘리지 않고 실패하면 서운해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죠. 노력하지 않고 안되는 것은 서운해하지 않습니다. 항상 아버님의 가르침대로 성실변론의 기본자세를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오는 내담자의 80%는 거의 우울증 환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고소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 분노조절장애에 우울감으로 잠도 못 자고 괴로워하다가 우울증 환자가 되기 쉽죠. 머리가 좋은 사람이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유전자가 행복한 사람이 있죠. 우울증이 노력한다고 고쳐지는 것은 아닙니다. 호르몬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라 호르몬 투여가 필요합니다. 우울증도 신체질병입니다. 그래서 저는 내담자들에게 항우울증 처방을 받도록 신경정신과 안내를 해드리죠. 분노조절장애, 화병, 우울증은 약을 먹고 치료를 받아야 됩니다.
▲사람들은 정치인을 비난하지만 정치 없이는 살 수가 없는 게 세상입니다. 사람은 다 정치적인 동물입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문재인 정부 때 중국에 대한 저자세와 김정은에 굴종하는 모습을 보면서 헌법의 근간인 자유민주주의가 심각하게 훼손당하고 주체사상파가 집권하고 사회와 정치구조가 왜곡되는 모습을 보면서 도저히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정치에 뛰어들게 됐습니다. 지난 선거 때 서구갑에서 정치적 도전장을 냈는데 공천을 받지 못해 좌절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후 경선을 치러 국민의힘 대전 서구갑 조직위원장이 되었지요. 제가 조직위원장이 된 배경은 검사 출신으로, 모범검사상과 검찰총장상 등 능력과 인품을 갖췄고, 탁월한 친화력을 기반으로 한 뛰어난 조직 장악력과 청렴한 사회생활 등의 장점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또 충남도와 대전시 행정심판위원,대전변호사회 감사,검찰 상고심사위원,한국연구재단 감찰위원, 대전 중구청 인사위원,국민의힘 법제사법위원회 정잭자문위원,대전시당 윤리위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왕성한 사회활동과 성실한 정당 생활을 이어왔다는 평가를 받았지요. 책임당원 증가율이 높아 당 대표로부터 모범 당협으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력하면서 윤 대통령 당선을 도왔고 시장과 구청장과 시의원 3석 전원 당선을 도왔습니다. 이제 착실하게 유권자에게 다가가 1년 남은 총선 출마 준비를 최선을 다해 할 생각입니다. 저희 지역구인 관저, 가수원, 도안동 인구가 10만여 명입니다. 관저동에 제3시립도서관을 짓고, 둔산동 나올 때 차가 많이 막히기 때문에 고속버스 간이정거장 터미널도 만들고 싶습니다. 서대전 IC 근처에 만남의 광장도 추진해보고 싶습니다. 일류 경제도시 대전에 삼성반도체를 유치할 수 있도록 해서 대전의 먹거리를 확실히 하고, 1인당 GDP가 전국에서 상위권인 도시가 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그리고 147만 인구가 200만이 될 수 있도록 일류 경제도시 대전을 만드는 일을 최선을 다해 돕고 싶습니다. 지방선거 출마 후보를 발굴하고 유대감을 강화해 선거 승리에 기여하겠습니다.
대담, 정리 한성일 편집위원(국장) hansung007@
▲1966년 충남 부여군 세도면 청송리 출생. 부여중, 동산고, 외국어대 법학과 졸업. 사법시험 합격(38회), 사법연수원 수료(28기), 대전 원주, 인천, 수원지검 검사, 전 대전시 행정심판위원, 전 충남도 행정심판위원, 전 대전교도소 수용자 징벌위원회 위원, 전 대전지방충남경찰청 징계위원, 전 대전변호사협회 감사, 현 국민의힘 법제사법위원회 정책자문위원, 현 국민의 힘 대전서구갑 당협위원장. 대전검찰청 검사를 지낸 뒤 현재 법률사무소 프라임한밭 대표 변호사로 활동 중. 충남도와 대전시 행정심판위원,대전변호사회 감사,검찰 상고심사위원,한국연구재단 감찰위원, 대전 중구청 인사위원,국민의힘 법제사법위원회 정잭자문위원,대전시당 윤리위원장 등 역임. 모범검사상과 검찰총장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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