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온천수 공원인 1918년 최초의 유성온천호텔. 사진=유성호텔 제공. |
유성호텔의 발전엔 대전의 역사가 담겨 있다. 경부선과 호남선 철도가 개통되고 1915년 유성온천이 기계식 대규모 굴착에 성공하며 공주사람 김갑순이 1918년 충청 최초 근대식 유성온천호텔을 개관하고 온천과 호텔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유성 지역 최초의 관광호텔이 등장한 것은 1966년 유성온천호텔을 개축한 유성관광호텔(현 유성호텔)이었으며, 본격적인 온천휴양지로 개발돼 연간 1000만 명의 관광들이 다녀갔다. 유성구 봉명동 온천지구에 굴착된 온천공 중 시조공인 유성호텔 온천공은 온천의 보호와 효율적인 이용을 위해 온천수 공원으로 조성돼 보호받고 있다.
유성호텔은 지역의 굵직한 행사를 담당해왔다. 1986년 객실을 125실로 증축해 86년 아시안게임 대전 선수촌 호텔 본부호텔, 1988년 9월 88올림픽 대전 선수 본부호텔, 1993년 대전엑스포 본부호텔, 2002년 월드컵 미디어 본부호텔, 2005년 7월 동아시아 국제축구대회 본부호텔로 지정됐다.
유성은 국토에 가운데에 있어 유명 정치인들이 자주 들르는 곳이었다. 이상만 박사가 해방 후 미국에서 돌아와 부인 프란체스카여사와 유성호텔을 방문했으며,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정적관계에 있던 신익희, 조병옥, 장면 등도 유성호텔에 자주 들렀다. 당시 여권 인사였던 김종필 전 국무총리도 유성호텔을 좋아했고 큰 행사가 있을 때는 직접 아코디언을 연주하기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만년장을 선호했다고 한다.
유성 호텔의 보물인 유성온천의 역사는 백제와 조선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유성온천엔 백제 말엽 신라와의 싸움에서 크게 다친 7대 독자가 전상으로 고생하던 중 어머니가 하얀 눈으로 덮인 들판에 날개를 다친 학 한 마리가 눈 녹은 웅덩이 물로 날개를 적셔 치료하는 것을 보고 아들의 상처를 그 물에 담그게 해 말끔히 치료했다는 전설이 내려져 오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계룡산으로 왕궁터를 찾아온 태조 이성계 일행이 심신 피로를 풀기 위해 온천수로 목욕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태종 이방원이 임실현에서 군사훈련을 지도하다 한양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유성에서 온천수로 심신을 달랬다는 세종실록의 기록도 있다.
대전에서 유성호텔의 온천을 자주 이용하는 임희숙씨(64)는 "유성온천을 대표하는 호텔이 5성급으로 바뀌면 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없어지는 것 아니냐"며 "미리 사놨던 유성호텔 온천 이용권을 빨리 사용해야겠다"고 털어놨다.
실내 마스크 해제가 논의될 정도로 거리두기가 풀리며 유성호텔 상황은 외부의 우려와 달리 긍정적이었다. 유성 호텔 관계자는 "사업 방향 검토를 진행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정해진 건 없다"며 "코로나 거리두기 해제 이후 매출은 7, 8월엔 코로나 전보다 70%, 이번 달은 80% 가까이 회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유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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