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정 대전작가회의 회장 |
내가 업으로 선택한 문학에도 여러 단체에서 상을 제정했다. 실제로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200개가 넘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런 상에 상금이 따르는 경우도 있지만, 상금 없이 그의 문학적 삶을 존경한다는 의미를 담아 주는 상도 있다. 한국작가회의 젊은 작가들이 선배들에게 주는 상이 그런 경우다. 문학을 하는 후배들(40세 이하)이 돈이 있어 기금을 만들 수도 없는 일이다 보니 상만 수여하고 있다. 이 상을 받은 문인들은 그 어떤 상보다 의미가 있다는 수상소감을 이구동성으로 하는 것을 보게 된다. 나처럼 욕심을 떨쳐버리지 못한 문인은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존경의 의미도 담고 상금까지 얹어 있다면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두 배의 기쁨을 만끽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나는 아직 내가 걷고 있는 문학동네에서 주는 상을 단 한 번도 받지 못해서 수상자의 마음을 깊게 헤아릴 수는 없지만, 상을 받는 주변의 선·후배들을 보면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우려스러울 때가 있다. 선후배가 상을 받으면 박수부터 치는 것이 도리이고 그런 정도의 품성은 갖추었다는 소리를 들어야 할 텐데 아직 그런 수양이 덜 되어 이것저것 따지는 편이라 상을 받는 분들께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몇 달 전 내가 소속되어 있는 문학단체(한국작가회의)에서 친일문인(독재자 찬양)을 기르는 상에 대한 토론회가 있었다. 논쟁이 있었고 결론을 내지 못해 이사회까지 올라온 안건은 네 시간이 넘는 난상토론으로 이어졌다. 결과물은 10월 이사회에 가면 문건(성명서)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상을 받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임이 분명하다. 내가 하고 있는 분야에서 인정을 받는다는 기분도 들어 마음속에 뿌듯함도 있다. 그런데 수상자라면 이 상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도 생각했으면 좋겠다. 상금이 수천만 원이 되고 상을 받으면 약력 한 부분에 쓸 수도 있어 매혹적인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을 준다고 하면 무조건 받는 것도 작가의 명함을 달았다면 고려해야 할 때다.
일제강점기에 부역을 하고 독재자를 미화하는 일에 앞장선 문인의 이름을 딴 상을 만든 단체도 문제이지만 나에게 그런 단체가 상을 준다고 앞뒤 크게 생각하지 않고 받는 것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 단순하게 생각해 보아도 자신의 작품을 사랑하는 독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역사적 실체 앞에서 작가정신(2017년 7월 28일 금요일 중도일보 칼럼, 「허공에 뿌려진 명함」 참고)을 의심 받을 수 있는 일이다. 작가는 독자가 없으면 외로울 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의미도 약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하다 보면 물질적으로 궁할 수밖에 없는 것도 문인들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런 현실 앞에 서면 수천만 원의 상금이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유혹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먼저 독자들을 생각해 보자.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친일문인을 기리는 상을 받았다는 것을 알면 독자들은 작가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200개가 넘는 상이 제정되어 문학을 하는 나로서는 상을 제정한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하지만, 상의 의미를 퇴색하게 만들고 역사적 사실 앞에 죄를 짓는 상의 제정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더불어 작가들도 어떤 상을 받을 때 고민을 많이 하겠지만 한 번 정도 더 사려 깊은 고민을 하고 상을 받아도 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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