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독서의 해/앤디 밀러/책세상/2015-
얼마 전 종영한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이란 TV 프로그램에서 언급된 책들이 화제다. 서점에서는 ‘알쓸신잡’ 코너를 만들어 출연자이 출간한 책들과 언급한 책들을 함께 배치하고 있고 온라인 서점에서는 출간된 지 몇 년이 된 책들이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역주행을 하며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그 책들 중에서 박경리의 ‘토지’나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등과 같은 걸작들이 눈에 들어왔다. 누구나 이런 걸작들을 한 번쯤 읽어보리라 결심한 적이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몇 번 시도해봤지만 방대한 분량과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끝까지 읽기를 실패했었다. 여유가 생기면 읽어야지 하다가도 어느새 스마트폰이나 TV만 들여다보기 일쑤였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 외면했던 책들을 다시 읽어보자 다짐했을 때 본보기 혹은 의지가 될 만한 책을 발견했다.
‘위험한 독서의 해’ 저자 앤디 밀러는 영문학 석사 출신의 전직 서점 직원, 현직 출판 편집자다. 그는 어릴 적엔 책 읽기를 진심으로 좋아했지만 직장을 가지고 가정을 이루며 바쁘게 살다보니 업무용 이메일과 잡지 몇 권 만 읽을 뿐이었다. 반복되는 무미건조한 일상에 지친 어느 날 쇼펜하우어의 “책을 사는 것은 좋은 일일 터이다. 책을 읽을 시간도 함께 살 수 만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흔히 책을 사는 행위 자체와 책의 내용 습득을 혼동한다.”는 말을 떠올리며 책을 사는 것과 책을 읽는 것을 착각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껏 읽지 않았다는 게 창피하게 느껴지는 책을 정리해 5년간 10권을 읽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후 몇 년간 그 계획을 전혀 시도하지 않고 목록에 대해 자랑만 하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과 함께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그 동안 읽었다고 거짓말 하고 다닌 책 중 하나인 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구입해 읽은 뒤 책에 빠져버렸다. 그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바로 그때 내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 잘린 머리가 자갈 위로 굴러 나왔다는 대목을 마주한 순간, 나는 이 책을 끝까지 읽어보기로 결심했다. 일상생활은 며칠만 제쳐두자. 다만 내가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지 시도해보자.” 이렇게 독서의 즐거움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그러나 목록의 두 번째 책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를 읽으면서 곧 위기에 처한다. 책이 몹시 어렵고 끔찍했기 때문에 책 읽는 것만 아니면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말이다. 이 시점에 그의 아내가 현명한 조언을 해준다. “하루에 50쪽씩 읽어 내려가고 치워버려.” 그렇게 숙제를 해치우듯 ‘미들마치’를 읽다가 매력을 느끼며 서서히 빠져들었다. 그는 인내의 가치에 대해 새삼 깨달았고 시작한 일을 끝까지 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인생 개선 도서 목록’을 완성한 뒤 하루에 50쪽씩 1년 동안 작정하고 읽었다. 이 책의 부제인 ‘내 인생을 구한 걸작 50권 그리고 그저 그런 2권’을 읽으며 솔직하고 때로는 심술 맞은 평가를 한 진실한 기록이 바로 ‘위험한 독서의 해’이다.
저자의 독서에 대한 회고록이자 고백록을 읽고 나니 전부터 정말 읽고 싶었던 책, 어려워서 읽다가 포기한 책, 모두가 다 읽었다지만 아직 읽지 못해 부끄러웠던 책을 하루에 50쪽씩 목표로 두고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다. 그리고 나만의 ‘인생 개선 도서 목록’을 만들고 내 인생을 구할 걸작을 꼭 만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을 소개한다.
“우리가 좋은 책을 집어 들고 읽기 시작할 때마다, 내용에 흥미를 느끼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우리의 뇌에서 일어나는 시냅스의 재배치 작용을 그는 굳게 믿었다. 바로 그런 작용 때문에 우리가 책을 읽을수록 세계는 변화하는 것이다. 이거야말로 책의 영원한 기적이다. 우리는 다음 순간에 일어날 일은 스스로 선택한다.” 책의 기적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다.
김현미(송촌평생학습도서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