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택시 운전사'의 한 장면. |
배우 송강호는 2000년대 들어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물론 지금도 장동건, 정우성, 강동원 같은 미남 배우들이 스타로 활약합니다. 하지만 90년대 말부터 우리는 전형적인 미남이 아니라 최민식, 설경구, 송강호 같은 개성 있는 배우들을 한국 영화의 주인공으로 만납니다. 그들은 확실히 어느 먼 별에서 온 것 같은 환상성보다는 평범한 우리를 닮은 친근함을 보여줍니다. 그 중에서도 송강호는 더더욱 평범함과 친근함을 느끼게 합니다.
1980년 광주 민주화 항쟁을 다룬 <택시 운전사>에서도 송강호는 평범한 소시민으로 등장합니다. 사우디 건설 현장에서 돌아와 개인택시를 몰고 있습니다. 평범한 애국심과 일상의 소소한 욕망, 가족의 안위와 밀린 사글세 걱정을 지닌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소시민의 범위를 넘는 거대 서사에 휘말리면서 새로운 차원의 깨달음을 경험합니다. 이른바 ‘소시민의 각성’이라 할 것입니다. <살인의 추억>(2003), <효자동 이발사>(2004), <괴물>(2006) 등에서도 그랬듯이 말입니다.
‘소시민의 각성’과 함께 송강호의 필모그래피에서 발견되는 중요한 모티프는 ‘실패한 아버지’입니다. 앞의 <효자동 이발사>, <괴물>과 더불어 <우아한 세계>(2007), <설국열차>(2013), <관상>(2013), <사도>(2014) 등에서 그는 슬프고 괴로운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택시 운전사> 역시 부인을 잃고 혼자 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아버지의 힘겨움이 드러납니다. 실상 ‘소시민의 각성’과 ‘실패한 아버지’는 별개가 아닙니다. 근대 산업화와 핵가족의 상황 속에 힘겹게 살다가 어느 순간 시대와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맞닥뜨린 한국인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택시 운전사>에서 만나는 그는 한결 깊어진 주름과 눈매로 광주의 아픔을 표현해냅니다. 위대한 배우는 이처럼 시대의 얼굴이 되기도 합니다.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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