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바롭스크역 전경. |
하바롭스크역에 도착한 시간은 열차 출발시간을 약 3시간 정도 앞둔 저녁 6시였다. 버스에서 개인 짐을 내려 다음 날 아침까지 사용할 일이 없는 물건과 옷가지를 캐리어 깊숙이 넣어두고 역에 도착하기 전 마트에서 산 물품들을 한 쪽에 잘 정리해 두었다. 지금 당장은 열차에 올라 사용 할 물건들이기 때문에 소중히 다뤘다.
밤 새 먹을 양식과 양치를 위한 생수 등등.. 그렇게 짐을 다 정리한 후 하바롭스크역을 천천히 둘러봤다. 역 바로 앞에는 하바로프 장군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역사와 주변을 구경하며 사진을 찍었다. 동상 주변으로는 편하게 앉아 쉴 수 있는 벤치가 많았는데 이미 여행객들이 차지하고 있어 그냥 바닥에 걸터앉았다.
▲ 역에 세워진 열차들. |
일행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열차에 오를 시간이 되었다. 약간의 돈이 들지만 수고스러움을 줄이기 위해 캐리어는 짐꾼에게 맡겼다. 미리 기차 객실을 알려주면 해당 객실 옆 플랫폼으로 배달해준다.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힘겹게 오르는 사람들을 보니 맡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차에 오르기 전 직원에게 표와 여권을 보여줬다. 직원은 열차에 오르는 사람의 여권과 실물을 꼼꼼히 비교하며 승차을 허락한다.
▲ 승무원의 꼼꼼한 검표로 플랫폼이 붐비고 있다. |
어렵사리 오른 열차는 더웠다. 출발하기 전까지 에어컨도 틀지 않고 더운 날씨에 장시간 세워져 있어 한증막과 같았다. 4인 객실은 나의 상상과 달리 매우 좁았다. ‘여기서 어떻게 4명이 잠을 잘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2층의 침대는 펼쳐져 있었고 가운데 조그만한 탁자가 놓여져 있다.
1층의 침대는 처음에 접혀져 있는데 옆에 있는 버튼을 작동시키면 펼 수가 있다. 객실안에서 4명이 동시에 옷을 갈아입거나 캐리어를 정리하는건 무리다. 그래서 두 명이 옷을 갈아입거나 짐을 정리하면 나머지 사람은 복도에서 기다려야 한다. 캐리어는 1층의 침대 밑에 넣어두면 된다. 1층 침대 밑으로 캐리어를 밀어 넣고 열차에 오르기 전 산 물건들을 탁자 아래와 위에 올려놓았다.
▲ 4인실의 내부 모습. |
좁은 공간에서 부산을 떨어서 그런지 땀이 났다. 열차의 한 량에는 양쪽에 화장실과 세면실이 위치해 있다. 4인실로 구성된 횡단열차는 24시간 화장실을 쓸 수 있는 반면 는데 누가 먼저 쓰기 전 잽싸게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안에는 좌변기와 세수를 비롯해 양치 등을 할 수 있는 세면대가 있었다. 세면대 가운데를 누르면 물이 나온다. 그러나 계속 나오지는 않는다. 다시 눌러야 나온다, 아마도 물절약 차원에서 그렇게 만든거 같다.
어떻게 씻어야 하는지 엄두가 나지 않아 세수만 하고 나왔다. 객실로 돌아오니 일행들도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난 상황이라 어수선한 분위기는 아니였다. 그렇게 1층 침대에 앉아서 땀을 식히고 여유를 찾는 동안 세면을 다녀 온 일행들이 마치 자신의 무용담처럼 씻는 방법을 공개했다. 그중 페트병 가운데를 잘라서 쓰는 방법이 제일 좋은 아이디어 같았다. 목욕은 불가능 하더라도 최소한 머리는 감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좁은 복도. |
밤 9시가 되자 열차가 목적지인 블라디보스톡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출발한지 약 10분 뒤 부터 에어컨이 나오기 시작했다. 열차에 어느 정도 적응도 됐고 시원하니 견딜만 했다. 일행들과 1층 침대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참고로 열차 안에서는 음주와 흡연이 금지돼 있다.
하지만 승무원에 따라 가벼운 음주는 눈감아주는 경우가 많고 문이 닫혀 있어 제재를 받지는 않았다. 바깥풍경이 깜깜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으니 저녁에 할 수 있는 건 잡담과 독서, 잠이 전부였다. 우리도 밤 12시 쯤 다음날 일정을 위해 취침에 들어갔다. 몇 시간 잠을 자고 새벽에 눈이 떠졌다. 창밖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잠을 포기하고 어제 보지 못했던 바깥풍경을 구경했다. 역시나 자작나무숲과 들판, 민가가 반복해서 나왔다. 하바롭스크역을 출발한 열차는 약 12시간 뒤 목적지인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했다.
▲ 목적지인 블라디보스톡역에 세워진 조형물. |
그사이 승무원이 밀가루로 만든 빵 같은걸 아침으로 주고 갔는데 우리는 입에 맞지 않아 그냥 그대로 두고 내렸다. 12시간 만에 열차에서 내려 기지개를 켜고 상쾌한 아침공기를 들이 마시며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체험을 끝냈다. 만약 누가 ‘시베리아 횡단열차 탈만해??’라고 물어본다면 일생에 한 번 또는 12시간 짜리는 탈만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성희기자 token77@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