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사는 문제부터 시답잖은 연애 이야기까지 왁자지껄 떠들어댔다. 한 잔, 두 잔 술이 들어가자 취기가 올랐고, 목소리도 꽤 커졌다.
웃고 떠들다 보니 대화 주제가 정치로 흘러갔다. 대통령이 잘하느니 못하느니, 지방선거가 어쩌고 하면서 빈 술병이 늘어났다. 주제에 정치부 기자랍시고 이것저것 말하며 신이 났다.
그러나 흥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 친구에게 농담 반 진담 반 “정치를 해보라”고 권했다가 욕을 바가지로 먹으면서다.
당사자는 “나랑 원수 질 일 있느냐”며 씩씩댔다. 다른 친구들도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반응이었다. 서둘러 사과하고 벌주를 들이키면서 고조된 분위기는 누그러졌다.
술자리는 잘 마무리됐지만 왠지 마음은 편치 않았다. 슬쩍 꺼낸 한 마디에 불 같이 화를 내던 친구의 모습이 맘에 걸렸다. 정치 권유를 죄악시하는 다른 녀석들의 말과 눈빛도 신경 쓰이긴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이번 일로 한 가지 제대로 깨달은 게 있다. 청년들의 정치 불신이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거다.
물론 상황을 이렇게 만든 건 기성 정치권이다. 정치꾼들의 정치공학적 타협과 작전, 치열한 권력 다툼은 정치 불신을 불러일으켰다. 불신은 무관심으로 변해 정치는 바다 건너 딴 나라 일처럼 치부됐다.
정치권은 앞 다퉈 ‘청년 정치 활성화’를 주장하지만 공염불에 불과해 보인다. 청년들이 느끼는 삶의 문제에 무관심한 채 보여주기 식 이미지 정치에만 몰두해서다.
청년 활동은 당 청년위원회를 대상으로 진행되다보니 보통 청년들의 목소리가 들릴 리가 없다. 청년을 대표한다는 청년위원회마저도 실질적인 영향력이 있는지 의문이다. 예산은 큰일을 하기엔 턱없이 부족하고 주어진 권한도 한정적이다.
오죽하면 한 청년당원이 “당이 원하는 것은 선거 때 춤추며 유세하는 정도”라고 털어놓았을까.
허술한 청년 정치인 육성 시스템도 문제다. 체계적인 관리는 먼 나라 이야기고, 선거마다 인형 뽑기 하듯 맘에 드는 청년을 스카웃하는데 급급하다. ‘그들만의 리그’라는 지적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최근 각 정당은 청년들의 마음을 잡는데 혈안이다.
“쓴소리를 듣겠다”며 청년 간담회를 갖거나 토론회를 열며 청년 스킨십에 공을 들이고 있다. 청년 정치인 양성과 영입을 위한 ‘청년정치학교’도 잇달아 문을 열 예정이다.
표를 의식한 정치적 행동이겠지만 한 번 믿어보고 싶다. 인정하긴 싫으나 본질적 정치 개혁은 기성 정치권의 노력 여하에 달려있어서다.
친구들을 포함한 청년들에게도 감히 한 마디 한다. 금수저, 흙수저, 헬조선을 탓하기 전에 정치에 관심을 가지시라.
이제 정치는 우리 밥그릇을 챙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송익준 기자 igjunba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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