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지희(음악평론가, 백석문화대교수) |
지난 7일, 베토벤 운명교향곡을 타이틀로 무대에 선 대전시립교향악단은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었다. 무엇보다도 현대음악 작곡가 리게티의 ‘라미피카시옹’(Ramifications 분기들)이 서곡으로 채택된 것은 기존의 대전시향 작품 목록에서 찾아보기 힘든 참신한 시도다. 대전시향이 현대음악이라는 새로운 레퍼토리 개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방증이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12개의 현악기 조합이 만들어낸 리게티의 작품은 마치 곤충이 웅웅거리는듯한 울림을 내며 아주 작은 음량부터 큰 음량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현악기가 낼 수 있는 상상의 영역을 뛰어넘는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관객은 예측불가능한 현대음악의 음향을 초집중해서 듣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오히려 늘 듣던 음악과 다른 낯선 울림에 신선함을 느꼈다. 작품에 대한 이해 여부와 별개로 현대음악에 대한 매우 고무적인 반응이었다.
한편 객원지휘자 세이쿄 김과 바이올리니스트 얀 므라첵의 베토벤 협연(op.61)은 독주자의 뛰어난 연주력과 지휘자의 분석력, 오케스트라의 3박자가 제대로 맞아떨어진 호연이었다. 섬세하고 정교한 세이쿄 김의 해석은 독주자를 깔끔하게 받쳐주었고 과장되지 않은 반주의 흐름은 므라첵의 자연스런 베토벤 해석과도 일치했다. 정확한 음정과 깨끗한 음색은 전성기 때의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를 연상시켰다. 특히 2악장에서 지휘자는 협연자에게 충분한 여유를 주어 선율의 서정적인 흐름을 관객과 교감할 수 있도록 배려했으며, 3악장에서 독주자가 보여준 탁월한 기교는 베토벤 음악의 진가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한편 베토벤 운명교향곡은 대전시향의 향상된 기량을 재차 느낄 수 있었던 연주였다. 따따따 딴이라는 운명의 리듬은 전 곡을 지배하는 중요한 동기이다. 이 동기를 모든 악기가 정확한 박자와 높이로 제대로 소리낼 수만 있다면 연주는 성공적으로 해낸 것이다. 대전시향의 음악은 무르익어야 온전히 소리가 나올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시켜주었다. 맞춤옷을 입은 듯 운명교향곡을 다룬 단원 개개인의 능숙한 연주력이 세이쿄 김의 입체감있는 지휘와 합쳐져 역동적이고 흥이 넘치는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이렇듯 이번 연주회는 작품, 지휘, 독주, 오케스트라의 특성이 서로 잘 맞아 이상적인 효과를 보여준 음악회였다. 상대적으로 낯선 현대음악에 대한 시도와 친숙한 베토벤 교향곡이 보여준 대조적인 시너지효과 역시 큰 수확이었다. 단 무르익음은 익숙함을 동반하고 이는 곧 타성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추구해야 될 때가 왔음을 시사한 연주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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