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도안동-2007 |
강렬하다. 그리고 절박하다. 사진 속 그곳은 전쟁 아닌 전쟁터다.
단순히 찍고 찍히는 사진이 아닌, 이전에도 앞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역사적 기록과 같은 사진집이 나왔다.
이강산 작가의 ‘집-지상의 방 한 칸’은 15년간 전국 35군데 철거 현장을 직접 답사해 그 현장을 촬영한 휴먼다큐흑백사진집이다.
▲서울 아현동1-2011 |
대전·충청권에서 도록 형태로는 다수 나왔지만 본격 아날로그 흑백사진집이 나온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일 정도로 희귀하다.
왜 하필 철거 다큐였을까. 작가는 “내 집 밖의 ‘집’을 향해 처음 셔터를 누른 게 지금의 일산 신도시인 경기도 고양시 행신리 철거지역이다. 1991년 1월, 한겨울이었다. 이후 행신리를 닮은 수많은 철거지역을 떠돌았지만, 지금도 철거 소식만 들리면 카메라 배낭을 챙긴다. 그냥 ‘운명’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 책에 수록된 사진들은 흑백필름을 사용해 대상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고 철거현장과 철거민의 애환을 사실감 있게 다뤘다.
특히 폐허가 된 철거촌과 그 뒤로 높이 솟은 타워팰리스를 한 프레임에 담아 극적인 대비를 줬으며, 자신의 집 앞에 쭈그려 않은 노부인의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은 그보다 더 깊은 삶의 고뇌를 담은 듯 인상적이다.
1991년 경기 일산의 다닥다닥 줄지어 지은 일명 ‘개집’ 모습, 2011년 서울 아현동에서의 건물 한쪽 벽면이 다 허물어져가는 빌라의 처참한 모습(당시 그곳은 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2009년 서울 용산의 유가족 눈물까지…. ‘차라리 이 땅에 나를 묻어라(2007년 경기 평택 대추리의 벽화)’는 외침이 가슴을 울리면서 카메라 앵글에는 미처 담기지 않은 그들의 이야기가 문득 궁금해진다.
▲서울 청량리(588)-2017 |
우리나라 철거재개발사업은 대부분 주거환경개선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일부 철거현장은 이를 반대하는 주민들의 거센 저항과 반발에 부딪치기도 한다. 이유는 보상이 따르기는 하지만 대다수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고향을 떠나야하기 때문. “세종시에서도 3년을 찍었다. 제2의 수도를 만든다고 했을 당시 주민들이 보상 문제로 한창 싸울 때였다. 이 사람들에겐 생존이 달린 문제였다. 그냥 내버려두면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사람들이 한순간에 도시빈민이 되는 거다. 그러니 목숨 걸고 끝까지 싸우는 거다”
작가는 “지금도 곳곳에서 개발이란 미명아래 삶의 터전을 뺏고 빼앗기는 처절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래도 ‘희망’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나는 철거 다큐 사진집을 내면서 간절하게 희망한다. 현재 진행형인 철거재개발이 그 인과적 당위성을 떠나서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아름다운 나눔의 건설’이 되길 희망한다. 나의 사진은 오로지 그 희망을 향해 집중될 것이다” -책 표지의 ‘작가의 말‘에서
▲ 휴먼다큐흑백사진집 ‘집-지상의 방 한 칸’ |
다음은 작가와의 일문일답.
-‘오리지날 아날로그 흑백사진집’이란 어떤 것인지 구체적인 설명을 해달라.
▲오리지널 아날로그 흑백사진집이란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뒤 포토샵 등으로 흑백 전환해 만든 것이 아닌 흑백필름으로 촬영해 암실에서 직접 현상, 인화한 사진 작품을 말한다. 이번 작품은 거기에 더해 일체의 수정, 조작 없이 촬영한 필름 그대로 수록한 ‘스트레이트 포토’ 작품집이다.
-전국 35곳의 철거현장을 직접 찾아다니셨는데, 촬영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철거 현장은 위험성과 보안성을 이유로 철거 공사 관계자, 업체가 현장 접근을 불허하는 경우가 많다. 또 세입자나 영세민, 또는 대대로 거주해 온 원주민들은 철거에 따른 실향의 아픔이 깊은 상태여서 충분한 교감 없이는 인물 촬영이 불가할 정도. 더불어 초상권 문제도 있어 사진 발표와 사진집 수록은 극히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수많은 사진 중 일부를 선정하기가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듯한데, 책에 담을 작품을 선택할 때 어떤 점에 중점을 뒀는지.
▲다큐사진의 특성상 사실과 기록성에 충실한 작품을 우선 선정했으며, ‘파괴와 건설’ 양자의 의미를 극대화할 수 있는 작품, 철거민의 애환·절망적 모습과 더불어 철거재개발 이후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사진까지 고려해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선정, 편집했다. 또 다큐사진집임에도 사진의 완성도, 즉 ‘사진미학’도 염두에 뒀다.
-흑백사진은 시선을 사로잡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칼라가 아닌 흑백으로 담은 이유는 뭔가.
▲철거와 철거민의 기록사진이라는 ‘휴먼다큐사진’의 주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어서다. 흑백사진은 철거에 따른 실향의 아픔, 이주의 고통 등을 포함해 우리민족 전통적 정서인 ‘한(恨)’의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는 양식으로, 사진 촬영자 및 감상자에게 강렬한 인상과 울림이 큰 감동을 준다. 또한 아날로그 흑백사진만이 대상(피사체)의 질감과 깊이를 입체적으로,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형식이라는 믿음이 컸다.
-가장 애착이 가는 사진이나 스토리가 있다면.
▲‘서울 상도동.2010(사진집 57쪽 수록)’작품은 겨울에 산꼭대기 언덕 빙판길을 미끄러지면서 세 차례 촬영한 사진인데, 평소 주민이 살고 있다면 언덕길에 연탄재를 뿌려 미끄럼을 방지할 수 있지만 대부분이 철거한 상태였고 소수의 철거반대 주민만 거주하고 있어 언덕길이 빙판이어서 어렵사리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또 ‘경북 성주.2006’ 파노마라 작품(사진집 25쪽 수록)은 소위 ‘알박기’라 불리는 사진이지만, 집 뒤에 조상 분묘가 있어 집 주인이 떠나지 않는 상태였다. 그래서 그 집 한 채만을 남겨두고 주변을 철거, 토지를 깎아내려 섬처럼 공중에 떠있는 상태를 세 차례 답사해 대형 파노라마 수동카메라로 촬영해 애착이 깊다.
-작가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인가.
▲‘집’이란 단순히 ‘거주지’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집에 대한 소유욕, 그 희망은 모든 인간 개개인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며, 인간 존재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다. 또한 삶이라는 거대한 나무의 뿌리이며, 궁극적으로 인간의 사랑, 자유, 희망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계획은.
▲‘시간을 쌓아 이룬 업적은 시간이 존중하는 법이다’(어거스트 로뎅)가 인생 좌우명이다. 다큐 사진은 보통 한 주제를 가지고 10년 이상을 촬영해야 한다. 현재 15년째 겨울마다 산, 섬, 오지에서 명상기행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후년쯤에 사진집을 출간할 계획이다. 내년에는 두번째 소설집을 출간할 계획이다. ‘행복 25년’ 계획을 이미 다 세워놨다. 75살 때까지 해마다 어떤 일을 할지 계획이 서 있다. 하나씩 착착 이뤄가고 있는 중이다.
현옥란 기자
▲ 이강산 작가 |
■이강산 작가=1959년 금산에서 출생. 2007년 ‘휴먼 다큐 흑백사진.1-가슴으로 바라보다’전(展)을 시작으로 ‘휴먼 다큐.2-사람들의 안부를 묻는다’(2012), ‘휴먼 다큐.3-어머니’(2015) 등 4차례의 개인전과 수차례의 그룹전을 가졌으며, 현재 자유사진가로 활동 중이다.
1989년 ‘실천문학(시)’, 2007년 ‘사람의 문학(소설)’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물속의 발자국’, ‘모항母港’, 소설집 ‘황금비늘’ 등이 있다.
대전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금 및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상했으며 현재 ‘대전작가회의’와 ‘한국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