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철 변호사 |
법무법인 유엔아이 김동철 변호사
검사생활 경험 공안ㆍ형사사건 전문
“최대한 많이 들어주려합니다. 피고인이든 피해자든 법적으로 분쟁을 해결하려는 분들은 자신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신뢰해주는 ‘자기편’을 찾기위해 변호사를 찾는게 아닐까요?”
지난 2010년 18년간의 검사생활을 부장검사로 마무리하고 변호사로 옷을 바꿔 입은 김동철 변호사(56ㆍ법무법인 유엔아이)의 최대 미덕은 침착하게 ‘들어주는 능력’이다.
그도 그럴것이 ‘말을 유창하게 잘할 것이다’,‘언어의 마술사일 것이다’라는 편견을 가진 변호사와는 달리 김 변호사의 첫 느낌은 묵묵하다.
김 변호사는 충남 태안 안면도에서 태어나 대전고와 중앙대 법대를 졸업했다. 사법시험 31회(연수원 21기)에 합격해 지난 1992년부터 2010년까지 18년동안 검사생활을 해왔던 그다.
김 변호사는 검사시절 형사부와 공안부 등을 거쳤으며 주로 공안부의 업무를 맡아왔다.
성남지청에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전국 3대 공공노조였던 철도, 가스, 발전노조의 총파업이 있었다. 가스공사의 본사가 성남에 위치하다보니 작은 지청에서 혼자서 전국 상황을 컨트롤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중요한 상황이었다. 자칫 노조 파업으로 가스가 끊길 경우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2주 정도의 파업이 이어지는 동안 ‘살얼음’의 연속이었다.
김 변호사는 “다행히 마무리가 잘 됐지만, 중요한 문제여서 많은 공을 들였던 기억이 난다. 흉악한 범죄 사건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는 국민 불편과 직결되는 일을 무사히 불편없이 해결했다는 안도감이 컸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공안사건과 형사 전문으로 검찰 생활을 해왔던 덕분에 2010년 변호사 개업이후 8년째 형사사건을 주로 맡아오고 있다. 검찰 측에서 기소를 하던 자리에서 피고인들의 변호를 하면서 ‘역지사지’의 심정을 깨닫고 있다. 김 변호사는 “경찰도, 검찰도 들어주지 않던 피고인의 심정을 끝까지 공감해주며 들어주기만 해도 죄를 뉘우치기도 하고, 스스로의 화가 많이 풀린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한다.
오랜시간 검찰조직에 몸을 담고 있었던 김 변호사는 현재의 시스템과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그는 “밖에서 보는 검찰의 시각은 왜곡된 부분이 있다. 검사생활을 오랜시간 하면서 느낀 부분은 검사들이 어렵게 일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당시 검사 1인당 한달 처리해야 하는 사건수가 150~200여 건이었다”며 “업무와 시간에 쫓겨서 기계적으로 일하고 힘들게 일하고 있지만, 검사들이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검찰이 수동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는 구조는 제도적인 문제가 크다”고 말한다.
그에게는 발달장애를 가진 자녀가 있다. ‘행복감은 상대적’이라고 표현하는 김변호사는 아들과 함께 하는 여행시간도 산책하는 시간도 행복하기만 하다.
아들 덕분에 아직까지 지역에서 정착하지 못한 성년후견인 제도에 관심이 크다. 법률 행위, 경제적 판단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법원에서 후견인을 지정해서 도움을 주는 제도다. 가족이 없는 이들에게는 철저하게 무료 봉사자에게 의존해야 하는 제도이다보니 지역에서 나서서 활성화를 위한 활동에 동참하고 싶은 것이 그의 바램이다. 김민영 기자 min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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