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소득이 5000달러에 진입하던 70년대 후반, 식품 수요가 양과 질에서 폭발적으로 높아지면서, 충치(우식증: DMF) 발생율도 커졌습니다. 때맞춰 국민건강보험이 도입되어 고통을 덜고 구강건강을 증진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의 달러 가치를 환산하면 지금 중국이 그 단계를 통과하는 것 같은데, 불량식품 보도가 그치지 않고, 의료의 질과 국민의 위생의식은 소득증가를 따르지 못하는 듯합니다.
건국과 동시에 교육에 올인한 초대 대통령과 박통시절 산업화에 따른 소득증가에 한 발 앞서가는 의료정책을 추진한 결과, 우리나라 건강보험은 가격 대비 성능 면에서, 세계가 부러워하는 성공사례입니다. 물론 아직도 미진한 부분이 많고 그동안 의료계의 기여와 희생도 있었지만, 의료환경도 경제적인 조건과 국가정책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인구 노령화가 가파르고 소득은 3만 달러 벽을 넘지 못하는 형편에, 스케일링과 노인(65세 이상)의 틀니와 일부 임플랜트 보험적용은 또 하나의 선구자적인 기적이 아닐까요?
먹방(먹꺼리 방송)이 대세입니다. 이제 식도락을 즐기는 단계지요.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해서 일본어가 우리말보다 우수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씹는 맛 즉 식감(食感)을 표현하는 일본어에는 두 손을 들었습니다. 바로 ‘하 고타에(齒應)’, 즉 치아의 응답입니다. “음식은 좀 짭쪼롬 해야지”라던 ‘맵고 짜고 시고 쓰고 단’ 음식자체의 맛을 넘어, 바삭·아삭·쫄깃·톡 터지는·팍 부스러지는, 한마디로 깨무는 감각을 음미하는 것입니다. 이 뿌리(齒根)는 막(齒根膜)에 둘러싸여 뼈(齒槽骨)속에 고정됩니다. 치아에 가해지는 압력은 치근막이 완충작용을 해주며 막 안에 있는 고유수용체가 그 감각을 읽어냅니다. 식감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강한 식감을 너무 즐깁니다. 마른 오징어 멸치도 그러하지만 실은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나물에도 질긴 재료가 많습니다. 무말랭이 호박꼬지는 또 어떻습니까? 치아는 누르는 힘에는 완충도 하고 저항력이 높습니다. 그러나 옆으로 흔들고 비트는 힘(lateral force)에는 장사가 없습니다. 고깃덩이를 한 번에 꿀꺽 삼키는 호랑이는 어금니가 약하고, 초식동물의 어금니는 크고 잘 발달되어 있습니다. 소처럼 계속 갈아대면 치아가 닳는 것은(attrition) 물론 치주조직이 못 견딥니다.
적당하게 질긴 음식은 치주조직을 자극하여 건강을 주지만, 학대(abuse) 수준이 되면 치아상실의 원인이 됩니다. 치아결손 율이 높고 브릿지(계속가공의치)나 임플랜트 같은 보철물 수명이 짧으며 틀니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이 세 가지 현상의 상당부분이, 바로 한국인의 식습관과 상관관계가 깊습니다. 나이가 드신 분 중에, 펄펄 뛰는 생선을 갓 썰어낸 회나 세꼬시가 생고무처럼 질기다고 느끼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치아의 응답을 즐긴다는 일본은 사시미를 길게는 12시간 숙성하여 입안에서 살살 녹지요. 이제는 우리나라도 세 시간 쯤 뜸(?) 들인 회를 즐기는 인구가 꽤 늘었습니다. 나물도 연하게 조리합시다. 돼지 오돌뼈를 아득아득 깨물고 육포나 질긴 등심을 즐기는 것도 맛있는 식도락이긴 하지만, 타고난 치아와 보철물을 더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중요한 노후대책의 하나라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임철중 전 대한치과의사협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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