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 대흥동 인근 슈퍼 2~3년 사이에 곳곳서 폐점
하루 매출 정산도 민망한 수준 … 재고 정리에 더 바빠
정부의 골목상권 살리기 공약 빠른 제도와 정책 필요
“대형마트 때문에 안돼. 저 모퉁이 슈퍼도, 저 왼편 슈퍼도 문 닫았어. 슈퍼는 다 사라질겨.”
대전 중구 대흥동 골목의 한 슈퍼. 가지런히 정리된 생필품과 어울리지 않게 손님 하나 없는 쓸쓸한 모습이다. 손님이 아닌 TV와 마주 보고 있는 주인 할머니는 파리 한 마리 없는 썰렁한 슈퍼를 지키며 간간이 방문하는 손님을 맞고 있었다.
주인 할머니는 “요즘 어때요?”라는 기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형마트 때문에 슈퍼가 사라지고 있다고 손사래 쳤다.
실제 대흥동 주변 골목상권의 슈퍼는 최근 2~3년 사이 하나둘씩 정리되고 있다. 규모가 그나마 큰 할인판매점은 겨우겨우 버티고 있지만, 할머니의 슈퍼처럼 소형상점은 하루 매출을 손꼽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슈퍼가 사라진 자리는 회전율이 높은 음식점과 커피숍으로 바뀌었고 프랜차이즈 편의점이 들어선 곳도 있었다.
“잘 나가는 물건? 날짜 지난 상품 정리하는 게 일이야. 담배가 그나마 잘 나가는데, 가격도 올리고 혐오 그림까지 박혀 나와서 영 안나가. 여름이니까 물, 아이스크림이 나가긴 하지만 별 볼일 없어.”
대형마트의 골목상권 침투는 꽤 오래된 이야기다.
마트가 들어설 부지가 마땅치 않은 대전의 경우 대형마트가 골목상권을 크게 옥죄는 형국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대형유통마트가 저렴한 가격대의 슈퍼마켓 상권을 지역 곳곳에 조성하면서 유통시장판이 급변하고 있다. 대형마트에 접근하기 어려운 중장년층까지 유입할 수 있고 슈퍼형태라는 이점을 살려 확장세에 가속이 붙고 있다. 최근 백화점 세이에 문을 연 이마트 노브랜드가 대표적인 예다.
“대흥동이 주택상권이라 해도 손님이 없어. 다들 차 끌고나가서 대형마트로 가니까. 신선하고 뭐 하나 덧붙여 주고 얼마나 좋겠어. 내가 슈퍼를 하지만 마트에 갈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점은 너무 잘 알아.”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는 지난 5월 출점 점포의 등록제를 허가제로 전화할 것과 주변 상권에 대한 사전영향평가제를 도입해줄 것을 정부에 주문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경제대책단은 골목상권 활성화 공약과 10대 약속을 발표했지만 아직까지는 현실성 있는 제도는 전무하다.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한 골든타임은 이미 오래전 지났다. 새 정부가 보여줘야 할 대책안은 골목상권의 희생이 아닌 상생이 기반돼야 함은 자명한 사실이다.
작은 슈퍼의 주인으로 53년 한평생을 살아온 할머니는 인터뷰 내내 골목슈퍼는 사라진다고 되뇌었다.
“나야 50여 년 평생 슈퍼만 했고 자식들 다 키웠으니 그만해도 소원이 없어. 이거 하나 바라보고 사는 젊은 사람들은 어쩌면 좋아. 밥줄이 사라지면 자식들은 어찌 키울고.” 이해미 기자 ham7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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