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책읽는섬/2017-
이 책은 시인 신경림이 60년 시인의 길을 동행하며 감동 받았던 글들로 채워져 있다. 시는 선집의 형태로 많이 접할 수 있지만 이렇게 여러 작가(또는 작가가 아닌)들의 산문 글을 한권의 책에서 다양하게 접할 수 있다는 건 우리에게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최인호, 류시화, 정지용, 박목월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문학인들부터 종교인, 사회운동가, 화가, 언론인 등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이들을 포함한 사십 여명의 글들로 풍성하게 엮어놓았다. 구성은 1부 품속에서 꺼낸 삶의 한 잎, 2부 길 위에서 만난 꽃송이, 3부 사람, 늘 그리운 나무로 구분하여 글들을 싣고 있다. 사실 이러한 구분은 굳이 의미가 없다고 느낄 정도로 어떠한 글을 잡아 읽어도 크고 작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처럼 어떠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문장으로 쓴 수필들로 담아낸 이 책은 한 사람의 감성이나 상황, 시선들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각기 다른 상황과 인물들 가운데 자신의 일기장처럼 또는 편지처럼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다. 마치 좋은 분들의 이야기를 나지막하게 듣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다양한 이들만큼이나 각각의 글에서 펼쳐진 시대, 배경이 다르고 주제 또한 제각각이지만 담담하고 편안하게 뱉어내는 그 짧은 글 하나하나에 그들의 인생이 녹아있음을 느낀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가슴 아픈 순간, 가난의 현실에 힘겨워하던 기억, 가족과 헤어지던 순간의 슬픔, 같은 시간을 보냈던 벗과의 그리움…. 대부분 자연과 사람, 가족, 이웃을 그리워하고 소중하게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이 담아내는 모든 문장들을 온전히 이해하고 공감하지는 못할지라도 조금은 낯설어도 그 안에 담긴 감정은 결국은 살아가는 일상 속의 평범한 것들이기에 그들이 묘사해내는 것들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게 된다. 이렇게 다가오는 문장들은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 같으면서도 글속에 묻어있는 그 표현과 감성은 가슴 한 구석에 특별하게 와 닿는다. 바로 가슴을 울리는 이 무언가의 특별함을 신경림 시인은 ‘뭉클’이라는 단어로 정리해주고 있다. 우리가 살면서 무심코 스쳐지나가기 쉬운 장면들이 이토록 아름답고 또는 먹먹한 모습이었는지…. 신발, 햇빛, 매미, 꾀꼬리, 눈, 연탄, 개, 꽃, 어머니 등 우리에게도 지극히 평범한 것들이 이들에게는 멈춰진 시간이 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듯하다. 마치 삶의 본질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옆에 펼쳐진 자연으로부터 그리고 함께 살아가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배워나가야 되는 것임을 알려주는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평범하고 익숙한 주위 모습이 조금은 다르게 느껴진다. 곧 다가올 또 한번의 여름날, 도시의 많지 않은 녹음 속에 시끄럽게 울어대는 매미 소리가 이제는 최서해님의 글처럼 불 같은 볕발이 이글이글하는 여름 한낮에 듣더라도 새벽에 마신 맑은 이슬을 뿜어놓은 것 같이 들릴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젊음에 가깝다고 말하고 싶지만 조금씩 나이가 들어감을 느끼는 이 순간, 바쁜 일상과 반복되는 시간들 속에 잊고 있었던 크고 작은 감정들이 한 편 한 편 책장을 넘길 때마다 제 각기 다른 이유로 감동시키고 또 뭉클하게 다가온다. 무조건 아름다움을, 사랑스러움을 또는 슬픔을 이야기 하지 않기에 더 가슴이 시리기도, 따뜻하기도 한 것 같다. 점차 짧은 글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오랜만에 긴 호흡의 글을 통해 가슴 한 구석의 작은 뭉클한 울림을 함께 느껴보면 좋겠다. 삶에 지치거나 잠시 쉬어가고 싶을 때 조용히 함께하기에 더 없이 좋은 책이다.
함혜련(대전학생교육문화원 사서)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