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둘. 수습기자 시절 여러 출입처를 사나흘씩 체험했다. 선배가 지시하는 취재 내용을 이해하고 기사를 써내는 게 과제였다. 당시 행정에 출입하던 선배는 내게 유성복합터미널 조성이 소송으로 미뤄지고 있으니 현장에 가 인근 분위기를 살펴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현충원역과 구암역 인근 부동산 문을 열심히 두드렸다. 공인중개사들은 하나같이 “부동산 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 “첫 삽 뜨기 전까지는 조성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대학시절 내내 꿈꾸던 일이 실현되기까지 제법 어려울 것이란 예감이 스쳤다.
저마다 어떤 공간이나 물건에 얽힌 사연이 있듯 위의 풍경들은 유성복합터미널을 떠올렸을 때 그려지는 나의 이야기다. 첫 번째 풍경은 비단 나 혼자만의 기억은 아닐 테다. 좁은 정류소를 빠져나가던 버스가 위협적이라고 느꼈던 이들이라면, 술 마신 저녁 문고리가 떨어져 나간 화장실을 불안하게 이용했던 이들이라면 저마다 비슷한 장면을 간직하며 새 터미널을 기대했을 것이다.
정작 현실은 두 번째 풍경에 가깝다. 올 하반기 착공하겠다는 대전시의 말을 믿기보다 ‘첫 삽’ 뜨는 모습을 봤어야 했다. 당초 2019년 조성될 수 있었을 것으로 예상됐던 유성복합터미널의 미래가 처참하다. 대전도시공사가 사업자인 롯데컨소시엄에 협약해지를 통보했고 새 사업자를 구한다고 한다. 굴지의 대기업도 사업성을 이유로 손 놓고 있던 차에 누가 관심을 보일지 모르겠다. 대전시와 도시공사는 여러 유인책을 고심하겠다고 하는데 결국 시민의 혈세를 붓는 것 아닌가 싶다.
대중교통은 그 도시의 수준을 평가하는 단면이다. 20일 유성시외버스정류소에서 만난 40대 인천시민은 “군(郡) 단위에서나 볼 수 있는 터미널 같다”고 했다. 인근에서 활동하는 택시기사는 “(유성시외버스정류소) 버스에서 내린 승객들이 정류소 보고 한마디씩 하면 내가 죄송하다고 하고 만다”고 말했다. 도시의 수준이 나아지는 데 걸리는 긴긴 시간이 더 더디게 느껴진다. 기대 속 터미널을 볼 수는 있는 걸까.
임효인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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