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과학부 최소망 기자 |
어느 분야든 한 기관의 수장이 갖는 의미는 크다.
국가의 ‘백년대계(百年大計)’로 불리는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더욱 그렇다.
최근 대덕연구개발특구 내 국가수리과학연구소(이하 수리연) 박형주 소장이 사임 의사를 밝혔다.
박 소장은 사임 이유를 “내년 브라질에서 열리는 국제수학자대회의 공식 주무집행위원 업무와 수리연 기관장 업무의 병행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제수학연맹 본부가 베를린에 있는 만큼 행사를 위해 자주 출장을 가야하고, 그러다 보면 연구소 업무에 소홀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과학계 안팎에선 사임 이유에 대해 석연치 않은 눈초리를 보낸다.
박 소장은 지난 임기 1년 9개월 동안 ‘출장 왕’으로 불렸다.
더불어민주당 김성수 의원실에 따르면, 박 소장은 취임 이후 약 1년 동안 200여 일을 외부일정(국외출장 12회ㆍ국내출장 89회ㆍ외부강연 18일)으로 보냈다.
이런 박 소장이 출장을 이유로 임기 중 돌연 사임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쉽지 않다는 반응이다.
재임 기간에 내부 현안을 등한시한 게 아니냐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실제 박 소장과 수리연 노동조합 사이에는 끊임없는 갈등이 이어졌다.
김동수 전 소장 때부터 논란이 된 비정규직 정규직화, 부당해고자 복직 등 현안이 산적했지만,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고 상황이 악화됐다는 게 노조 측의 입장이다.
물론 박 소장이 수리연에 몸 담은 동안 수학과 산업의 연관성을 널리 알리고, 한국 수학계의 위상을 높였다는 평도 있다.
수리연 관계자는 “지금까지 소장들 중 ‘내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연구소를 살려야겠다’는 의지가 강했던 소장은 없었다”며 “연구소에 애정이 있는 기관장이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이번 박 소장의 사표에 연구소 내부는 상당히 동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연구소의 존립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마저 돈다고 한다.
이렇듯 한 기관의 수장은 기관의 운명까지 좌지우지한다.
문재인 정부가 20일 인사추천위원회를 본격적으로 가동하면서 공공기관장 인사혁신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과학기술계 ‘관피아’, ‘정피아’ 등을 강하게 비판했던 인물인 더불어민주당 문미옥 의원도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으로 임명됐다.
이번 정부에서 유능한 과학기술계 수장 인선이 이뤄질지 기대해 볼만한 대목이다.
연구현장의 과학기술인들이 마음 놓고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유능한 수장이 줄지어 오길 바란다. 최소망 기자somang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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