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한 개정으로 ‘주차장’에선 법 적용 ‘모호’
대전에서 회사원를 다니는 이모(40)씨는 아침 출근을 위해 승용차에 탔다. 이씨가 차를 타고 시동을 걸자 블랙박스에서 ‘3건 이상의 주차충격이 녹화됐다”는 안내 음성이 들려왔다. 지난주 새로 차를 사 ‘애지중지’하는 터라 불현듯 좋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녹화된 화면에 버스 차량이 이씨의 차량을 살짝 부딪치는 장면이 포착됐다. 이 사고로 이씨의 차 범퍼 일부분이 살짝 상처나고 찌그러졌다.
버스를 운전한 가해자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채 도주했다. 이씨는 화가 나 경찰에 신고했다. 이달 3일부터 정차된 차량을 훼손한 채 그냥 도주하면 처벌받는다는 내용이 생각나서다. 하지만, 경찰은 박씨에게 “실제로 가해자가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어 처벌하기 쉽지 않다”며 “혐의를 밝혔다고 하더라도 범칙금으로 내면 그만이기에 주차뺑소니는 여전하다”고 설명했다.
주ㆍ정차된 차량을 훼손하고 도주하는 일명 ‘주차 뺑소니’법이 지난 3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가운데 벌써부터 법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처벌 수위가 낮아 그대로 도주하기가 일쑤인데다 부실한 개정 내용으로 주차장에서 법 적용이 불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15일 대전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3일 도로교통법이 개정돼 주·정차된 차량을 손괴하는 교통사고 발생 후 인적사항을 제공하지 않으면 처벌된다는 규정이 적용됐다.
물적인 피해가 있는 교통사고 후 인적사항 등 연락처를 제공하지 않고 현장을 이탈할 경우 20만원 이하의 벌금(범칙금)과 벌점 15점을 부과한다는 내용이다.
법 개정 전에는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아 뺑소니 혐의를 적용할 수 없어 차량 피해만 보상하면 처벌할 수 없었다. 때문에 가해자는 일단 도망치고 보자는 심리가 만연했다.
현실을 감안해 도로교통법 개정으로 처벌규정을 마련했지만, 처벌수위가 너무 약해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지적이다.
일선 경찰관은 “20만원 이하의 벌금은 처벌로는 너무 낮아 민원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와 함께 개정된 도로교통법은 정작 진가를 발휘해야 할 ‘주차장’에서 적용되지 못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개정된 현행법이 도로 위에서 발생한 주차뺑소니 사건은 처벌이 가능하지만 아파트·건물 주차장 등에서 발생한 경우에는 처벌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법 해석 상의 문제로 주차장은 ‘도로’에 해당하지 않아 일반도로에서 적용되는 법이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
대전청 교통조사계 관계자는 “주차 뺑소니가 사실 주차장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데 개정 법안이 일반도로상에서 발생한 경우에만 처벌이 가능해 실효성이 적다”며 “예외 조항을 추가할 필요성이 있다”고 전했다. 구창민 기자 kcm2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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