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법 위배한 조례는 개정하면서도 상인 보호 장치 없어 고심
상인회 측, “지역실정에 맞게 운영할 수 있는 해법 필요”
▲ 대전 중앙로지하상가 내부 전경 |
지하상가 ‘전대와 권리금 거래’는 전국적인 문제다.
대부분 수익형 민자사업(BTO) 방식으로 건설한 지하상가는 엄연한 공유재산이다. 때문에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 아니라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이 적용된다.
공유재산 중에서도 행정재산에 속해 양도ㆍ양수는 금지돼 있다. 사용수익허가권을 얻은 상인만 장사할 수 있다. 사정상 영업을 중단할 경우 권한을 반납하면 되고, 자치단체 또는 자치단체로부터 관리운영권을 위탁받은 ‘상인회’ 등은 다른 상인에게 허가권을 주면 된다.
그러나 대전을 비롯해 전국에서 공유재산관리법을 적용해 지하상가를 운영한 곳은 거의 없다.
물론 사용수익허가권을 받은 상인은 허가권 반납 없이 권리금을 받고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이런 거래가 수십년간 이어지면서 권리금 거래는 당연시돼왔다.
또 허가권을 받은 상인이 직접 매장을 운영하는 곳도 있지만, 상당수는 허가권을 제3자에게도 전대해 수익을 올리고 권리금까지 받아왔다.
엄밀히 말하면 모두 불법이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자체 거래질서가 형성돼 해법을 두고 갈등이 첨예한 상황이다.
서울시는 상인들이 권리금을 받고 점포를 넘기지 못하게 하는 조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1998년 제정한 조례에는 ‘관리인의 허가를 받아 조례에 따른 권리와 의무를 양도할 수 있다’고 규정했지만, ‘타인에게 양도해선 안 된다’고 개정했다.
상위법(공유재산관리법)에 위배된다는 감사원과 행정자치부의 판단에 따른 조치다. 상인 간 임차권의 양수ㆍ양도가 수억원대에 달하는 불법 권리금을 형성하는 문제도 불러왔다.
인천시도 조례개정을 위해 2월부터 상인들과 협의를 시작했는데,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갈등조정 전문가까지 참여해 5월 첫 회의를 열었지만, 마찬가지다.
인천시 관계자는 “전대가 금지되고 권리금도 받을 수 없어서 반발이 크다”고 했다.
▲ 대전 중앙로지하상가 분수대 |
광주시 금남로 지하상가도 마찬가지다.
금남지하상가 관계자는 “수천만원을 들여 인테리어를 한 상인이 사정이 생겨 그만두면 투자비를 권리금 형태로 받는 건 기본”이라고 말했다.
제주도는 2009년 관련 조례를 제정해 일정 부분 양도ㆍ양수를 허용해왔다.
‘부득이한 사유로 영업이 불가능한 경우와 지역상권 발전과 금융권 안정을 위해 채권자의 요구가 있을 때, 상인회에서 심의 결정해 회장이 요청한 때’에는 양도ㆍ양수할 수 있다.
하지만, 공유재산관리법에 적용받는 행정재산인 점을 고려해 제3자 양도는 ‘다른 법률에서 상속인에 대한 양도가 가능한 경우’로만 한정했다.
그러자 중앙지하도상가조합은 지하상가를 양도와 양수가 가능한 일반재산으로 변경해 달라고 요구하며 맞서고 있다.
대전시는 타 지자체와 달리 조례 자체가 없다. 방치하면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만든 셈이다.
외환위기 때 위탁운영하던 시공사들이 부도나면서, 시는 중앙로지하상가 관리와 운영을 상인회에 위탁했다. 사실상 손을 떼고 전적으로 상인회에 맡겨두면서 전대가 횡행했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권리금 거래도 걷잡을 수 없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정인수 중앙로지하상가상인회장은 “수십년간 시장흐름에 따라 거래되며 나름대로 형성돼온 운영방식을 무시하고 관련법만 강조해선 해결할 수 없다”며 “지자체 실정에 맞게 조례를 통해 운영하도록 상위법 개정 등의 해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희진 기자 heej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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