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해미 경제과학부 기자 |
지난 1일 AI특별방역대책기간 종료와 위기경보가 관심으로 하향 된 지 하루만의 일이었다. 제주에서 시작된 AI 공포는 하루 이틀 사이 군산과 양산에서까지 감염이 확인됐다.
성격 급한 한국인은 감당키 어려운 느린 인터넷 속도에 스마트폰이 태국 날씨처럼 뜨거워질 때까지 한국 뉴스를 확인하고 또 했다. 그때마다 늘어가는 감염 지역과 농장의 수. 곧 살처분 될 닭과 오리들의 운명에 달콤한 땡모반(수박쥬스)을 마시고 있어도 씁쓸함은 커져만 갔다.
세계 관광객이 모여드는 동남아 대표 관광지 태국의 주요 음식에는 계란과 닭이 주 재료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해산물도 풍부한 나라지만, 계란과 닭이 들어간 메뉴는 어느 식당을 가더라도 흔하게 접할 수 있다. 길거리 음식의 대표 주자인 팟타이부터 게와 커리의 환상궁합 뿌빳뽕커리는 계란이 음식의 맛을 살려주는 신의 한 수와 같은 비법의 재료다.
‘한국에 돌아가면 당분간 먹지 못할 거야.’라는 심리적 부담 때문이었을까. 길거리에서, 혹은 호텔 조식으로 너무 흔해서 미처 손이 가지 않았던 계란요리를 평소보다 많이 먹었다.
치앙마이를 떠나오던 마지막 비행기 기내식까지도 계란이었다. 써니사이드업 계란이 올라간 닭볶음밥이었다.
닭과 계란이 풍족하다 못해 흔한 태국에서의 일주일은 AI 사태가 일어난 고국의 현실과는 너무나 이질적이라 만감이 교차했다.
AI가 처음 발병했다는 제주에서만 4개 농가의 닭, 오리 1만 2790마리가 예방적 차원에서 살처분 됐다. AI 발병 12일 차. 앞으로 살처분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겨울철에만 주로 발병해왔던 AI가 여름철 이례적으로 발병한 탓에 피해규모는 더욱 걷잡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전통시장을 비롯한 유통시장에서는 생닭 판매가 금지됐다. 이 상황이라면 설 전후로 발생했던 계란대란이 우려될 수밖에 없다. 당초 9월쯤에는 산란계의 수가 안정적이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변수가 된 6월 AI로 이마저도 확신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겨우내 괴롭혔던 AI 여파가 가라앉기도 전에 설상가상의 형국이다. 곧 보양철을 앞둔 터라 닭과 오리 농가의 막막한 심정은 그 누구도 헤아릴 길이 없다.
정부는 태국 계란 수입을 서두르고 있다. 수입위생평가가 마무리됐고 선박을 이용하면 일주일 내 국내로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태국 계란 원가는 1알에 70원 꼴.
한국 뉴스를 보며 먹먹하게 삼켜야 했던 태국 계란이 국내 유통시장으로 들어온다. 소비자로서, 기자로서 안심해야 하는 맞는 것일까.
이해미 경제과학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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