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희(음악평론가ㆍ백석문화대교수) |
대전예술의전당 2017 그랜드시즌 시리즈 가운데 세계의 오케스트라 부문 첫 초청대상인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지난달 23일 대전 무대에 섰다.
지휘자 미코 프랑크는 첫 곡을 시벨리우스 곡으로 선택했는데, 이는 다분히 핀란드 출신 지휘자의 자국음악가에 대한 애정과 존경의 발로다. 시벨리우스의 크리스티안 2세 모음곡 중 녹턴의 낭만적인 색채는 오케스트라 현의 풍성한 화음감으로 깨끗하게 표출됐으며, 목관악기 음색은 격조있게 울렸다. 피아노에서 포르테로 진행하는 음량의 변화 역시 과장되지 않고 신중했다.
그러나 이어진 거슈윈의 피아노협주곡에서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색은 예술적으로 순화됐다고 해도 때로 거칠게 펼쳐져야할 재즈적 특징을 지나치게 점잖게 표현했다. 마치 훌륭한 교양 교육을 받은 프랑스 귀족이 아무리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려고 해도 몸에 밴 교양이 중심을 잡고 있듯이 말이다. 반면 독주자로서 손열음은 거슈윈 음악에 내재된 역동적이면서도 톡톡 튀는 재즈의 리듬감을 탁월하게 들려주었다. 잘 조절된 악구의 처리능력은 명불허전이었다. 단지 오케스트라의 세련된 절제미와 대조적으로 더욱 과감하게 기발한 감성을 시도했어도 좋았을 것이다.
한편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자신들의 주특기인 프랑스 근현대 작곡가의 작품을 통해 진정한 라벨 음악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관현악곡 어미 거위 모음곡과 발레음악 다프니스와 클로에 모음곡 2번은 그 색채를 제대로 보여주기가 매우 까다로운 독창적인 작품이다. 개개악기의 개성과 음악적 울림이 오묘하고 섬세하게 전달되어야 하는 이 두 곡에서 미코 프랑크의 스타일은 품격 있었으며 음향 역시 호소력있게 다가왔다. 특히 다프니스와 클로에의 목관악기군이 들려준 우아하면서도 맑은 울림은 폭풍같은 금관의 흐름 속에서도 라벨음악의 생명력을 유지시켜준 일등공신이다. 프랑크의 지휘 하에 섬세함과 격렬함이 자연스럽게 이어진 발레곡은 그 실체를 온전히 드러냈다.
이렇듯 이번 연주회의 주인공은 바로 라벨이었다.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통해 라벨 음악의 기품과 근현대 프랑스음악의 본질인 음색을 탐미할 수 있었던 것은 가장 큰 소득이었다. 그런 라벨(Ravel)이 대전예술의전당 자막 이름에 Raver로 등장한 것은 뼈아픈 실수로 다가온다. 사소함이 이렇게 크게 느껴지는 것은 순전히 그 대상이 라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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