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부 송익준 기자 |
제20대 총선 당시 옛 새누리당 후보들은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상대는 대한민국, 계약 내용은 대한민국을 위한 5대 개혁과제 법안 발의였다.
5대 개혁과제로는 갑을개혁, 일자리규제개혁, 청년독립, 4050 자유학기제, 마더센터 등이었다.
이행일은 서명일로부터 1년 뒤인 올해 5월 31일까지로 못 박았다.
계약 불이행 조건도 명시했는데, “1년 치 세비를 국가에 기부 형태로 반납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계약엔 후보자 56명이 서명했고, 신문에 전면 광고까지 내며 공언했다.
이들은 광고에 ‘국민 여러분, 이 광고를 1년 동안 보관해 주세요’라는 문구를 붙였다.
자르는데 편리하고, 보관에 용이하도록 절취선까지 넣는 배려도 선보였다.
이런 노력에도 새누리당은 참패했다.
과반에 못 미치는 122석을 얻는데 그쳤고, 16년 만의 여소야대(與小野大) 구도에 직면했다.
계약 서명자들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56명 가운데 31명만이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선거 결과야 유권자 판단이니 과정은 제쳐두고, 계약 이행 상황이 궁금했다.
29일로 만기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지만 계약 이행률은 형편없었다.
5대 과제 중 ‘청년기본법’만 발의됐고, 나머지는 깜깜 무소식이다.
청년기본법 통과를 위해 애쓴 흔적도 찾기 힘들었다.
당장 ‘약속한대로 세비를 반납하라’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국회의원 연봉은 약 1억3000만원으로, 이들이 세비를 반납하면 30억이 넘는 돈이 모인다.
하지만 이마저도 약속을 어길 공산이 커 보인다.
서로 ‘나 몰라라’ 하며 책임을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당은 ‘새누리당 시절 일이고, 계약은 의원들이 한 것’이란 입장이다.
반면 의원들은 ‘당 차원 문제가 아니냐’며 발끈한다.
계약 서명자들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갈라진 상황도 애매하긴 마찬가지다.
당과 의원들의 나 몰라라 행태에 속 터지는 건 국민들이다.
이러다간 ‘샤이(shy·수줍은) 보수’가 아닌 ‘셰임(shame·부끄러운) 보수’가 늘어날 게 뻔하다.
19대 대선에서 국민들은 자유한국당에 24%라는 적지 않은 표를 줬다.
다른 후보가 싫거나 이념적 차이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한 표엔 ‘앞으로 잘 하라’는 경고의 뜻도 담겨있다.
보수는 ‘지켜야 할 것을 지켜내자’는 사상이다.
그리고 지켜야 할 것엔 국민들과의 약속도 당연히 포함된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고집을 부린다면 수구(守舊) 낙인을 피하기 어렵다.
자유한국당은 무엇을 잘못했고, 지켜야하는지 고민할 시점이다.
그 시작은 계약 불이행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행동이다.
국민과의 계약은 장난이 아니다. 송익준 기자 igjunba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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