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22세때 사법고시 패스, 6번째 여성변호사
판사시절 꼼꼼한 기록 검토 변호에도 큰 도움
드라마틱한 사건이었다. 정갑생 변호사는 충남의 한 지자체장이 뇌물수수 혐의로 1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선고 받은 사건을 맡게 된다.
선거법을 위반한 사건의 유일한 증거는 공범으로 기소된 A씨의 진술이었다. A씨는 교도소에서 자신의 부인과 이야기를 하면서 메모지를 통해 증거 위작 지시를 한다. 교도소 면회실은 녹음과 녹화가 되는 곳이었고 부인이 메모지를 읽는 내용이 고스란히 녹음되면서 위증 지시 내용이 드러나게 된다.
‘기록속에 답이 있다’를 진리를 알고 있던 정 변호사는 수사과정에서 조사되지 않았던 교도소 접견 내용을 직접 신청했고 그 과정에서 이같은 사실을 밝혀낸다. 유일한 증거였던 A씨의 진술은 증거 위작 지시한 내용이 밝혀지면서 진술의 효력을 잃게되고 이 지자체장은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게 된다.
통상 드라마나 영화속에서는 검찰이나 변호사가 직접 사건을 수사하고,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이 그려진다. 현실은 불가능한 내용이지만 정 변호사는 직접 수사를 통해 무죄를 밝혀낸 드라마같은 일화가 아닐 수 없다.
정 변호사는 1964년 12자매의 막내로 경남 함양에서 태어났다. 진주여고와 한양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1명의 언니들의 사랑을 받으며, 시골에서 공부에 매진하던 정 변호사는 1986년 만 22세의 나이에 사법고시에 패스(사법시험 28회, 연수원 18기) 한다.
그가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로 진출했을 때는 전국의 여성 변호사가 5명에 불과한 시절이었다. 정 변호사는 6번째 여성변호사로 이름을 올린다.
사법연수원 300명 중 여성은 8명에 불과했고, 남편도 연수원에서 만나 함께 변호사 생활을 하다 현재는 외국어대 로스쿨의 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정 변호사는 연수원 졸업후 11년간 변호사 생활을 했다. 서울지역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며 기반도 잡고 명성과 경력도 쌓은 상태였다.
‘변호사일이 힘들다’고 느낄때쯤 어느 신문에 난 경력법관 모집 광고를 우연히 보게된다. 정 변호사는 지방근무가 예상 되고 자신이 닦아온 기반을 옮겨야 했지만, 법관의 길을 선택한다.
서울의 잘나가던 변호사가 법관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감수하고 잃어야 할 것이 많았지만, 그는 판사의 길을 선택했다.
자녀를 3명이나 키우는 엄마로서, 법관으로서 몇가지의 역할을 해야 했지만 법관 생활은 보람됐다.
그는 “변호사 시절에는 한쪽말만 듣고 한쪽의 주장만을 해줬다. 하지만 판사는 양쪽의 진실을 밝혀내야 했고 진실을 알 수 있는 방법은 기록이었다”고 말한다.
‘기록을 잘 보면 선반 위에 올려진 진실이라는 보물을 까치발들고 찾아내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정 변호사는 판사시절 꼼꼼한 기록 검토로 유명하다.
기록을 다 읽지 못하면 재판을 연기하고, 밤을 새워 기록을 보면서 진실을 찾아내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그런 노력들은 꼼꼼한 판사로,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하는 판사로 기억되고 있다.
정 변호사는 민사, 형사는 물론 가정법원 지원장을 지내 가사 사건도 많은 의뢰가 오는 편이다. 이혼 재산분할과 상속재산분할, 소년사건 등이 주사건이다.
그는 “형사 사건에서 무죄를 다투는 사건들에 특히 심혈을 기울이게 된다.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정 변호사는 대전을 사랑한다.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같이 호흡해 주는 동네였다.
그는 “대전 사람들은 직설적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헤아리고 짐작하는 것을 좋아한다. 많이 배우게 된다”고 말한다.
대전에 와서 많이 받은만큼 지역사회에 억울한 사람을 대변하는 봉사를 하고 싶다는 정 변호사는 지역 변호사계의 대모다운 모습이다. 김민영 기자 min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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