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기억은 건물과 함께 남는다. 당사자들이 떠나거나 소멸한 뒤에도 주변을 떠도는 공기나 복도에 스며 있다. 그것은 현재를 사는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쓰라린 역사다.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는 누군가 겪어야만 했고 여전히 경험하고 있는 슬픔ㆍ고통ㆍ비극을 함께하며, 그 기억이 공간화되고 건축화된 현장으로 걸어 들어가는 여정의 시작이다. 조금이라도 타자(他者)의 고통을 이해하고 아름다움의 근원을 헤아려보기 위함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누군가는 아픔이 깃든 공간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무치는 공감의 장소가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책은 세부분으로 나뉜다.
첫번째 ‘이해하기’, 두번째 ‘걷고 생각 나누기’, 세번째 ‘정리하기’다.
‘이해하기’는 공간, 건축 그리고 도시의 공간과 건축에 대한 글로 구성돼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공간, 건축, 도시의 의미와는 사뭇 다른 흥미로운 내용들을 이론적으로 약간 깊이 있게 다뤘다.
‘걷고 생각 나누기’에는 시민과 함께 방문했던 고통의 현장에 대한 이야기다. 또 고통을 대하는 태도에 관해 나눴던 시민들의 생각이 담겨있다.
1장은 남영동 대공분실과 경동교회 이야기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과거 인권유린의 고통스런 흔적이 남겨진 역사의 현장이다. 김근태가 전기고문을 당하고 박종철이 물고문을 당했던 곳이다. 경동교회는 해방전 ‘선한 사마리아 사람 형제단’이라는 이름으로 빈민을 돕다가 해방 후 선린형제단 전도관을 설립한 강원용 목사에 의해 세워진 건물이다.
2장에서는 평화의 소녀상,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을 방문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타자의 비극이 어떻게 공간으로 형태화됐는지를 살폈다.
3장에서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다룬다. 근대적 일망감시 체계인 ‘파놉티콘(원형감옥)’의 형태와 옥사에서 사형장에 이르는 건물 배치를 상세히 설명한다. 이후 서소문 순교성지를 둘러보며 이 일대가 조선시대 행형장의 중심이 됐던 유래를 되짚는다. 동학 지도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이 참수됐던 비극의 장소가 특정 종교에 의해 대표돼서는 안 되며, 역사의 현장으로서 이 땅의 무늬와 결을 고스란히 되살려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베를린에 있는 ‘유럽의 학살된 유대인을 위한 기념비’를 상세하게 다루며 서울도서관 3층에 있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공간도 빼놓지 않는다. 총 4장에 걸쳐 여덟개의 공간을 소개하는 책은 공간의 구조와 배치, 동선 등이 상세히 서술하면서도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공감의 메시지를 잊지 말아야 함을 강조한다. 김명식 저 | 뜨인돌 | 1만5000원. 박수영 기자 sy87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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